20년 간의 1막을 마친 콜드플레이, 그 마지막 이야기
콜드플레이의 결성부터 4번째 정규 앨범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지난 2개의 글에서 이어지는 콜드플레이 20년 역사의 1막 마지막 장입니다. 콜드플레이라는 밴드의 스토리가 궁금하시거나 이 글을 조금 더 재밌게 읽으시려면 이전의 글을 선독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콜드플레이의 역사와 커리어의 전환점이 된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의 가장 큰 성취는 밴드의 사운드에 다양한 색감을 부여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전까지는 건조한 무채색에 가까웠던 밴드는 비로소 다양한 컬러의 잉크로 죽음, 사랑, 진실, 상실, 분노, 환희 등 다양한 삶의 감정들을 그려냈습니다. 향후 밴드의 사운드와 콘셉트를 더 확장시킬 수 있는 변곡점을 성공적으로 넘은 밴드는 다음 앨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콘크리트를 뚫고 자라는 빛나는 장미
새 앨범의 콘셉트에 대해 크리스 마틴은 "사랑과 중독, 강박장애, 당신이 원치 않는 누군가를 위한 노동과 탈출"이라고 밝혔습니다. 새 앨범은 <Mylo Xyloto>라는 타이틀의 코믹스로 그 세계관이 공개가 됐지요.
아이독스(Irdoks)라는 인종이 소리와 색을 통제하는 경찰국가 사일런시아(Silencia). 마이너스 소령(Major Minus)의 지휘 하에서 군중을 통제했던 비밀 경찰관 마일로(Mylo)는 음악적인 메시지로 군부에 맞서는 저항군 스파커(Sparkers)의 그라피티를 접하고 저항군에 합류하는데...
<Mylo Xyloto>는 수록곡들의 가사도 사일런시아의 탈주병이자 저항군인 마일로의 이야기를 다룬, 앨범 전체가 하나의 스토리와 세계관으로 진행되는 콘셉트 앨범입니다. 코믹북의 프리퀄은 앨범의 킥오프 트랙인 <Hurts Like Heaven>의 뮤직비디오에 담겼습니다.
<Hurts Like Heaven> M/V Link : https://youtu.be/C8KV0mzqTXY
이미 락의 역사에는 The Who의 <Tommy>, Savatage의 <Streets : A Rock Opera>, Extreme의 <Pornografitti>와 같은 소년의 각성, 흥망성쇠 등을 다룬 걸작들이 있었습니다. 기시감 있는 서사 구조에 콜드플레이가 취한 차별점은 '빛과 색'이었습니다. "Color is Crime"이라는 억압에 저항하는 빛나는 색, 'Musical Color'가 키워드였지요.
통제된 세계에서 음악의 빛을 밝히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앨범의 사운드는 어땠을까요. 이는 곧 새 앨범의 첫 싱글 <Every Teardrop is a Waterfall>을 통해 울려 퍼졌습니다.
저항군의 그라피티를 담은 재킷의 화려한 컬러는 이 노래의 사운드와 일맥상통합니다. 신시사이저가 포문을 열고 목소리 어쿠스틱 기타,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와 드럼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이 노래의 사운드는 그야말로 찬란합니다. 이 노래를 통해 곧 발매될 새 앨범의 지향점도 예측할 수 있었지요. <Every Teardrop is a Waterfall>이 나왔을 때 제 지인은 이렇게 의견을 물어왔습니다.
"노래는 참 좋은데, 이런 노래도 락 밴드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이런 장르의 노래는 드러머의 역할이 너무 작은 거 아냐? 역할이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데 멤버들이 동의하는 걸까?"
밴드에서 기타를 치는 제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고 합니다. 당시 밴드에서 연주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콜드플레이의 새 노래에 대해서는 이견이 꽤 있었습니다. 파격적이었던 전작과 비교해서도 이번엔 일렉트로닉 사운드 쪽으로 더 깊게 방향타를 설정했기 때문이었지요. 제 생각에도 이 노래는 전형적인 락 밴드의, 그것도 영국 출신의 락 밴드의 노래에서 예상되는 결과물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콜드플레이가 <Yellow> 같이 미니멀하지만 서정적인 힘이 강한 노래를 부르지 않으리라는 우려와 반발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석하기 나름일 수 있으나, 저는 이런 사운드가 역설적으로 멤버 전원이 100% 합의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마추어 밴드들도 자기 파트가 드러나지 않으면 싸우기 십상인데 전 세계를 호령하는 초대형 밴드의 멤버들은 어련할까요. 파트와 역할 갈등으로 깨진 선배 밴드들이 너무나 많지요. <Every Teardrop is a Waterfall>에 대한 지인의 질문에 전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런 사운드와 구성의 노래일수록 멤버들이 완전히 찬성했다고 생각해. 그게 인간적인 교류 건, 상업적인 이유건 간에 이건 프로듀싱 방향에 모두가 100% 동의한 연주인 것 같아. 그렇지 않다면 곧 해체하겠지?"
곡이 시작되고 윌 챔피언이 3분 여간 베이스 드럼과 하이햇만 밟지만, 이는 밴드에서 드러머의 역할이 축소된 것이라기보다는 한 순간 임팩트가 폭발하는 이 곡의 구성요소였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1분간 윌은 정력적인 비트를 연주하고 솔로 드럼 브레이크로 힘차게 마무리 하지요.
이런 그들의 변화에 불호도 있었지만, 그들은 일렉트로닉과 팝의 날개를 달고 비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전까지의 콜드플레이의 노래가 담지 못했던 총천연색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 노래는 절망의 벽을 넘어 희망을 이어가겠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Don't want to see another generation drop
I'd rather be a comma than a full stop"
글라스톤베리, 롤러 팔루자 등의 페스티벌에서 새 앨범의 몇몇 수록곡들을 선보였던 밴드는 2011년 10월 마침내 새 앨범을 공개합니다.
<Mylo Xyloto>는 30여 개 넘는 국가들의 차트를 정복하고 800만 장의 세일즈를 기록한 성공작이지만, 이 앨범에 대한 평은 갈리는 편입니다. 콘셉트 앨범으로서의 방향성은 좋은 반면 곡들 간의 유기적인 연계가 잘 되지 않고 산만하다는 평도 있고, 싱글곡들의 퀄리티에 대한 불만들도 있더군요.
저는 <Mylo Xyloto>를 아주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일렉트로닉과 인더스트리얼을 좋아하는데, 콜드플레이 전체 앨범 중 이 앨범의 사운드가 제겐 가장 좋습니다.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베이스, 드럼, 일렉트릭 기타와 신시사이저가 합심해 빛을 발하는 에너지가 참 마음에 들어요. 콜드플레이가 일렉트로닉과 팝으로 전향하며 어쿠스틱 사운드를 버렸다고 폄하하는 일각의 평들도 있는데, 콜드플레이 사운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방적인 비난이 아닌가 싶습니다. 콜드플레이에게 어쿠스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운드의 근간이었고, <Mylo Xyloto>는 전작에 이어 이런 근간 위에서 이종 장르를 잘 구현해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음악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겠다는 메시지도 좋습니다. <Charlie Brown>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Be a bright red rose come bursting the concrete"
콘크리트를 뚫고 자라는 빛나는 붉은 장미. 이 가사들은 빛을 발하는 사운드를 타고 생명력을 얻습니다.
<Mylo Xyloto> 앨범이 산만하다는 평도 어떤 측면에서 그런 비판이 있는지 이해가 갑니다. 콘셉트 앨범임에도 수록곡들이 아주 좋은 흐름 하에서 상호보완적으로 구성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히트한 싱글과 매력적인 앨범 수록곡들 모두가 강한 자기주장을 하며 나열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유기적 구성보다는 히트곡들을 꾹꾹 담은 '베스트 앨범' 같은 느낌이지요. "아, <Paradise> 다음에 바로 <Charlie Brown>이 나오네. <Every Teardrop is a Waterfall>이 벌써 나와?"
이는 역설적으로 모든 수록곡들의 발하는 빛이 뛰어나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Paradise>, <Charlie Brown>과 같은 히트곡은 물론, 앨범의 시작점과 피니시 라인에서 대구를 이루며 질주하는 <Hurts Like Heaven>, <Don't Let It Break Your Heart>, 중독적이고 락킹한 리프의 <Major Minus>, 잔잔하고 서정적인 <Up in Flames>, <UFO>까지 거를 타선이 없습니다. 여기에 과거의 콜드플레이라면 어울릴 거라 생각조차 못했던 팝 스타 리한나(Rihanna)와 함께한 <Princess of China> 역시 앨범의 킬러 트랙이지요. 지루하지 않고 듣는 재미가 확실한 앨범입니다.
스케일 업을 거듭하던 콜드플레이의 라이브 공연은 <Mylo Xyloto Tour>를 기점으로 만개하고 공연계의 레전드에 등극합니다. 이때부터 콜드플레이의 투어를 '인생 공연'으로 꼽는 전 세계의 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요. 멤버들의 복장과 악기를 수놓은 화려한 그라피티가 뒤덮은 무대의 조명과 특수효과 규모는 전에 비할 바 없이 커졌습니다. 지금은 콜드플레이 라이브의 상징이 된 자이로 밴드는 이 투어에서 최초로 등장했고, 덕분에 관람객 모두의 손목이 빛나는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쇼로 거듭났습니다.
<Mylo Xyloto Tour>를 통해 전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공연 매출을 기록한 밴드는 라이브 앨범 <Live 2012>를 CD와 DVD로 출시합니다. 이 앨범은 스튜디오 앨범의 퀄리티를 압도하는 연주와 셋리스트로 가득합니다. 저도 이 앨범 DVD를 보고 '콜드플레이 공연 보러 외국이라도 가야겠는걸...'이라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이전에도 기운 넘치는 프론트맨이었던 크리스는 한층 더 열정적인 모습으로 종횡무진합니다. 밴드의 다이내믹한 사운드의 현신과 같은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지요.
Hurts Like Heaven, Live 2012 : https://youtu.be/xADDYZ1UmnM
영화 <A Head Full of Dreams>에는 이렇게 큰 성과를 거둔 <Mylo Xyloto> 앨범과 투어 활동에 대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성공적인 투어를 했지만, 많은 페스티벌과 공연에 멤버들이 지쳤다는 내용이 오히려 더 부각이 되어 좀 의아했습니다. 실제로 <Mylo Xyloto> 투어 중 멤버들은 향후 3년간의 휴식을 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비단 바쁜 스케줄 때문에 이들이 지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Ghost Stories
크리스 마틴과 기네스 펠트로는 2014년 3월 이혼에 이르렀습니다. 기네스 펠트로는 의식적인 결별(Conscious Uncoupling)이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세상에 소식을 알렸고, 이별에 이유에는 갖가지 추측이 많았지만 결국 남녀 간의 일은 두 사람만 아는 법. 두 사람은 결국 각자 다른 삶의 길로 향했습니다.
영화 <A Head Full of Dreams>에는 새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크리스와 밴드의 침울한 분위기가 담겨있습니다. 작곡, 연주, 프로듀싱 전반에 걸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프론트 맨은 큰 상심에 빠져 있었고, 멤버들은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기네스 펠트로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악화된 지난 시간의 괴로움이 이어지는 나날들이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도 밴드는 신곡의 작업을 계속해나갔습니다. 2013년에 영화 <헝거게임 : 캣칭 파이어(The Hunger Games : Catching Fire)>의 수록곡인 <Atlas>를 출시했는데, 간만의 신곡이라 많은 기대를 했지만 꽤나 실망스러웠습니다. 이후에도 다시 들어봐도 사운드 퀄리티가 그럭저럭 괜찮다는 걸 확인할 뿐 여전히 좋은 곡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뭔가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닌지 싶었고, 크리스의 심난함과 상실감이 밴드 사운드의 하향 평준화로 작용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2014년에는 싱글 <Magic>이 출시됐습니다. 새 앨범의 첫 싱글이었는데, 개인적으로 <Magic>도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런 어정쩡한 노래가 첫 싱글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이스를 중심으로 한 은은한 리듬 라인은 나름 그루비했고 악기 어레인지도 섬세했지만 멜로디도, 곡의 분위기도 차게 식은 음식처럼 손과 귀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이후 공개된 싱글 <Midnight>도 섬세한 앰비언트 사운드 퀄리티는 좋았지만 몇 번을 들어도 마음에 남거나 귀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새 앨범에는 더 좋은 노래가 수록됐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긴 했지만 이전 앨범들이 출시될 때의 흥분은 온데간데없었지요. 이렇게 차게 식은 기대 속에 새 앨범 <Ghost Stories>가 출시됐습니다.
이번 앨범 역시 콘셉트 앨범으로, 과거 타인들과 살아가며 행했던 나의 모든 일들이 삶의 유령처럼 내 곁에 존재하며 현재와 미래에 어떤 영향들을 끼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크리스 마틴의 심리가 완전하게 투영된 앨범이었지요.
저는 이 앨범이 '유영하는 심해어'처럼 느껴집니다. 수록곡들 대다수가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며 좀처럼 햇볕이 비추는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웅크린 채 나지막이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에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다루는 내공이 깊어진 멤버들과 프로듀서들이 만들어낸 앰비언트 사운드 자체는 좋았지만, 사운드의 그릇에 담긴 곡들의 내용물은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가볍고 산뜻하게 정돈됐지만 이전 앨범 곡들에 비하면 힘을 확 뺀 노래인 <Ink>가 앨범에서 가장 튀는 매력을 보유했을 정도로 조용하고 가라앉은 앨범이지요.
<Ghost Stories>는 앨범 전체를 들으면 결국 한 순간의 희열과 쾌감을 만날 수 있는데 심해에 가라앉아 떠오를 줄 모르던 앨범의 정서가 <A Sky Full of Stars>에 이르러 한 순간에 붕 떠올라 폭발합니다. 상승의 미학을 담은 <A Sky Full of Stars>의 한 순간을 위해 앨범 전체를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들었나 싶기도 합니다. <A Sky Full of Stars>는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와 전 세계 아이튠즈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는 등 이 앨범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됐습니다. 이 노래는 진정성이 결여된 의도적인 상업적 사운드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가사부터 앨범에서의 위치, 사운드까지 종합해보면 부당한 비난은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노래이긴 하나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노래네요.
힘든 시기에도 밴드는 <Ghost Stories Tour>를 이어갔고, 라이브 앨범인 <Ghost Stories Live> 앨범도 출시를 했습니다. 사실 <Ghost Stories> 앨범에는 크리스 마틴의 이별의 그늘이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어 굳이 이런 이겨내지도 못할 자아가 가득한 앨범을 낼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밴드가 투어를 이어가고 라이브 앨범까지 출시하는 걸 보니 크리스 개인과 밴드 전체가 어떻게든 이겨내 보려고 힘쓰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역시 자본주의 때문인가 하는 양가적인 생각도 들더군요. 앨범의 퀄리티가 아주 좋았다면 이런 여러 가지 생각도 할 필요 없었을지 모르겠네요. <Ghost Stories>는 여전히 제겐 귀와 마음이 잘 가지 않는 앨범입니다.
A Head Full of Dreams
밴드는 <Ghost Stories Tour> 중간부터 새로운 앨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작정하고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곡 작업을 한 형태는 아니었고, 신곡들의 스케치 아이디어부터 시작했지요. 영화 <A Head Full of Dreams>에는 이 시기의 크리스 마틴이 여전히 슬픔에서 벗어나지는 못했고, 그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묵묵히 나아가는 멤버들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당시 크리스와 멤버들은 각기 따로 떨어져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곡의 멜로디가 나왔지만 편곡 방향이 당최 잡히지 않아 고민하던 조니는 크리스를 찾아 고민을 나눕니다. 크리스는 그 곡의 편곡 방향이 복잡해질 필요 없이 보다 심플한 오리지널 라인을 그대로 살릴 것을 제안하고 마침내 조니는 해법을 찾아냅니다. 이 노래는 새 앨범의 첫 싱글이자 인상적이고 원초적인 생동감이 넘치는 리프가 일품인 <Adventure of Lifetime>이었지요.
새 앨범의 작업은 크리스 마틴과 멤버들의 회복 과정 같았습니다. 밴드는 런던, 할리우드, 말리부의 6개 스튜디오에서 레코딩을 진행했습니다. 새로운 앨범의 수록될 곡들에는 이전보다 많은 조력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이별의 상흔을 이겨내고 좋은 친구로 남게 된 기네스 펠트로가 함께하고(<Everglow>), 페스티벌을 거치며 친해진 비욘세(Beyonce)가 코러스에 힘을 더해주고(<Hymn for the Weekend), 브릿팝의 역사이자 치프인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가 기타 솔로를 연주했습니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전 미국 대통령의 목소리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멤버들은 새 앨범이 이전 앨범과는 완전히 다른 사운드일 것이라 예고했습니다. 조니는 이전 앨범과 새 앨범의 관계를 "night to the day"라고 표현했고, 크리스는 컬러풀하고 신나는 "shuffle your feet"의 사운드를 담고 있을 거라 밝혔습니다. 7번째 앨범이라 7부로 끝난 해리포터(Harry Porter) 시리즈의 마지막 같을 거란 인터뷰로 밴드의 한 챕터가 마무리될 거란 뜻도 내비쳤지요.
영화 <A Head Full of Dreams>에는 앨범의 수록곡을 정하는 멤버들의 미팅 과정이 담겨있습니다. 작업한 곡들의 리스팅을 놓고 필 하비까지 모여 앉아 전원 합의된 곡들만 앨범에 수록될 수 있지요. 20여 년의 세월을 함께하며 이제는 가족과 같은 멤버들이지만 끝없는 토론과 지적, 합의의 과정이 콜드플레이의 구심점이자 힘이라는 점을 멤버들은 강조합니다.
마침내 2015년 12월 새 앨범 <A Head Full of Dreams>가 발매됩니다.
전작에 이어 새 앨범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조니의 표현대로 <Ghost Stories>와 <A Head Full of Dreams>는 완전히 다른 대척점에 있습니다. 음울함이 가득한 앨범을 냈던 밴드가 낸 바로 다음에 낸 앨범이라고 믿기 어려운 차이였습니다.
<A Head Full of Dreams>는 콜드플레이의 전체 앨범 중에서도 가장 밝고 팝적입니다. <Mylo Xyloto>의 연장선 상에 있지만 밝은 면이 더 극적으로 부각된 앨범이지요. 이 팝적인 사운드에 대해서 "대책 없이 순진무구한 앨범", "아이디어가 고갈된 지루하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물론 차트의 순위와 앨범 판매량은 준수했고 앨범의 수록곡들과 싱글에 대한 좋은 평도 많았지요.
개인적으로는 팝-락 사운드를 잘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Hymn for the Weekend>처럼 인상적인 코러스 라인의 팝 넘버를 필두로 잔잔하고 무겁지 않은 편곡으로 듣기 편한 멜로디를 담은 <Everglow>도 좋습니다. 초창기 앨범의 발라드 곡들이 가졌던 진지하고 인상적인 멜로디를 능가한다고 주장하긴 어렵겠지만, 그때의 콜드플레이가 연주한 곡들과는 다른 산뜻하고 준수한 곡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콜드플레이를 잘 모르지만 <Everglow>라는 노래가 참 좋다고 얘기하는 지인들도 늘어났습니다.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앨범부터 다층적인 장르와 사운드 대한 시도를 계속 이어갔던 이들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평이 많이 갈렸습니다. 매너리즘과 작곡 기량의 저하 등의 지적은 단골손님처럼 따라다녔고, 과거의 팬들 중에도 그들의 일렉트로닉, 팝 사운드로의 전향에 배신감을 표하며 돌아선 이들도 많지요. <A Rush of Blood to the Head>와 <A Head Full of Dreams> 중 어느 앨범이 더 낫냐에 대해 저도 <A Head Full of Dreams>가 낫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운드를 좋아하느냐에 따라 답이 갈릴 수도 있지요. 확실한 건 이 밴드가 7장의 앨범들에 대한 팬들과 평단의 취향과 선호가 갈리도록 많은 시도를 해왔고, 모든 이들이 찬사를 보내지는 않아도 그들의 결과물은 전 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위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앨범의 프로듀싱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A Head Full of Dreams>, <Up&Up>과 같은 곡들은 사실 앨범으로만 들었을 때는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라이브에 다녀오고 나서는 이 노래들에 빠져서 살았거든요. 황홀한 라이브를 통해 얻은 추억 보정일 수도 있으나, 어정쩡하게 좋은 노래로 이렇게까지 깊은 감흥이 오래 가진 않겠지요. 2017년 4월 콜드플레이의 잠실 공연을 함께했던 지인들이 공통적으로 "<A Head Full of Dreams>가 이렇게나 좋은 노래였는데 왜 그동안 몰랐지?"라는 감탄을 많이 했습니다.
전자 악기의 활용도가 높아지며 노이즈의 활용도도 높아졌는데, 이 앨범에서는 멤버들이 연주하는 기타, 베이스, 드럼과의 사운드 레벨과의 밸런스가 아쉬웠습니다. 밴드 사운드가 더 부각된 마스터링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런 점이 더 보강됐다면 <A Head Full of Dreams>에 대한 평이 좋아졌을까요? 전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높은 평가를 얻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A Head Full of Dreams>를 콜드플레이 최고의 앨범으로 꼽기는 어려워도, 이 앨범 전체를 채우는 충만하고 진취적 기운은 기분이 좋습니다. <Adventure of Lifetime> 같은 노래를 들으면 밴드가 이 앨범을 즐겁게 만들었다는 게 느껴져요. 긍정적이고 담당한 회복의 의지들이 담겨 있는 가사들도 좋습니다. 콜드플레이 노래로 신나게 기분 내고 싶을 때 손이 가장 먼저 가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2016년에는 북미권에서는 최고의 스타들만 오르는 슈퍼볼 하프타임 쇼(Super Bowl Half Time Show)에서 비욘세, 브루노 마스(Bruno Mars) 함께 공연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공연은 많이 아쉬웠습니다. 무대 구성과 시간대 모두 콜드플레이 라이브 특유의 화려한 연출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고, 어딘가 산만한 공연이었습니다. 이 공연에서 얻은 건 콜드플레이가 이젠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오를 정도로 북미에서도 큰 인기를 얻는 팀이 됐다는 점이었지요.
밴드는 체인 스모커즈(The Chainsmokers)와 함께한 싱글 <Something Just Like This>를 발표합니다. 체인 스모커즈의 비트 위에 이질감 없이 잘 녹아든 이 노래의 사운드는 그간 콜드플레이가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공존하는 역량을 얼마나 잘 쌓았는지 보여줍니다. <Something Just Like This>는 빌보드 핫 100의 3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콜드플레이는 2년여간에 이르는 <A Head Full of Dreams Tour>를 시작합니다. 남미와 북미, 유럽, 동남아 등 그간 밴드가 가지 않았던 지역까지 포함해 수많은 도시를 커버하겠다는 투어 계획 덕분에 드디어 서울에서도 콜드플레이 라이브를 경험할 수 있게 됐지요.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이후로 잠실 주경기장을 매진시키는 해외 아티스트는 처음이었고, 심지어 이틀째까지 모두 매진시켜 티켓팅 전쟁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10만 석을 매진시킬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콜드플레이의 인기가 높았는지 의아하기도 했지만 이미 벌어진 현상이었지요. 10만 명이 모두 콜드플레이라는 팀의 오랜 팬이거나 잘 알지는 못해도, 그들의 노래의 세례를 받아온 사람들임은 확실했습니다. 게다가 잠실 주경기장 이틀이 정말 매진됐다는 언론의 기대감까지 더해지며 공연 당일까지 불타는 티켓 전쟁이 가라앉을 줄 몰랐지요.
2017년 4월 15일, 16일 양일간 콜드플레이의 서울 공연이 펼쳐졌고 저는 이틀째 공연에 다녀왔습니다. 수년간 그들의 공연을 DVD와 유튜브로 셀 수 없이 많이 봐왔기에 익숙하고 신나는 공연이 될 걸로 예상했던 제 생각은 첫 곡인 <A Head Full of Dreams>에서 산산이 깨졌습니다. 이건 그냥 거대한 콘서트가 아니라 모든 감각을 열어주는 경험이었습니다. 함께 갔던 친구와 끝없이 "우리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라는 감탄을 외쳤고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이 공연이 끝나지 않길 빌었지요. 폭발과 추모, 위로와 흥겨움, 잔잔함이 뒤섞인 두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의 투어에 함께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저와 같은 잊을 수 없는 감정을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 <A Head Full of Dreams>는 전 세계의 투어를 돌며 백스테이지와 무대에서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멤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거대한 투어를 가장 즐겁게 다닌 셈이고, 그 에너지는 관객들이 느낄 수 있었지요.
이들은 투어의 마지막 여정이었던 2017년 10월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의 공연을 라이브 앨범으로 출시합니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콜드플레이는 휴식에 들어가게 되고, 영화 <A Head Full of Dreams>를 통해 콜드플레이의 20년, 1막이 종료됐음을 전합니다.
20년의 1막이라. 참 긴 세월입니다. 한 밴드, 집단, 기업, 사회의 흥망성쇠를 논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요. 이 긴 세월 동안 밴드는 많은 노래를 불러왔습니다. 너무 좋았던 순간도 있었고 아쉬운 순간도 있었지요. 마음에 들지 않아 꺼내지 않는 노래들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건 비단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대한 마음에 그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여정에 대한 소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여정 내내 그들의 음악은 떠나지 않고 함께해줬습니다. 때로는 <The Scientist>의 가사처럼 모든 걸 새로 시작하고 싶기도 했고, <Fix You>처럼 절대적인 위로를 받고 싶기도 했습니다. 이기기 어려운 상실감에 <In my Place>에 매달리기도 했었지요. 광장에서 <Viva La Vida>의 순간을 맞아 환희에 차기도 했고, 큰 수술을 앞두고 혹시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잊기 위해 <Up&Up>의 가사에 마음을 의지하기도 했습니다.
그 많은 순간들에 함께해준 그들의 노래는 제 안에 남아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되겠지요. 그들의 음악에 감사하며, 제 삶의 여정도 누군가에게 그들의 음악처럼 남아 빛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이번 주말에 마침내 콜드플레이의 새 싱글 두 곡이 공개됐습니다. <Everyday Life>라는 타이틀의 새 앨범은 2019년 11월 말 최초로 <Sunrise>와 <Sunset>의 더블 앨범으로 출시될 예정이고, 각 앨범에서 한 곡씩 공개됐지요. <Orphans>와 <Arabesque> 두 곡 모두 기존의 콜드플레이 사운드와는 꽤 다릅니다. 그들은 또 어떤 사운드와 메시지로 우리에게 다가올까요. 새 앨범의 메시지를 엿볼 수 있는 <Arabesque>의 가사로 글을 마칩니다.
* 본 글에 인용된 에피소드는 영화 <A Head Ful of Dreams>와 영문판 Wikipedia, <Rolling Stone> 매거진, Coldplay 공식 홈페이지 등에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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