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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호 Oct 03. 2023

<토피카 – 토포스에 관한 논구>

Aristotle

<아리스토텔레스의 토피카 - 토포스에 관한 논구>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김재홍 번역/해설, 서광사

  <범주론>, <명제에 관하여>에 이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논을 구성하는 <토피카 – 토포스에 관한 논구>를 읽었다. 사실 <분석론 전서>, <분석론 후서>를 한국에 유일하게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 선집>에 나온 발췌역으로 읽어보았지만, 발췌역의 한계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토피카 – 토포스에 관한 논구>를 읽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논과 <정치학>,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으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가 세운 범주와 명제에 따른 원칙들을 책 속에서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설명하려는 개념의 유와 종, 그리고 개별자를 명백히 구별하고, 설명의 순서를 지키면서 체계적으로 글을 구성하였다. <토피카 – 토포스에 관한 논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변증술에 관한 내용은 1장에서의 소개와 8장에서의 구체적인 적용 방법을 통해 비교적 간략히 이야기하고, 나머지 2~7장에서는 변증술을 위한 도구인 토포스에 대해서 깊게 설명한다. 이처럼 그는 자신이 설명하려는 주제의 기본 요소들을 깊이 있게 설명하고, 8장에서 이들을 종합함으로써 논리의 체계를 지켰고, 변증술을 공부하는 독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을 썼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서 궁금한 독자는 해제를 통해서 충분히 음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역자는 <토피카>의 내적인 내용, 특히 엔독사와 토포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섬세하게 설명한다. 게다가 철학적 저평가를 받았던 시대와 그 이유, 철학적 의의, 현대에서의 적용 등 책 외적인 내용까지도 다루고 있다. 비교적 길지만 하나같이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다만 여기서는 책의 큰 줄기를 이루는 내용을 설명하고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술은 통념에서 출발해서 그에 모순되지 않는 논의를 탐구해 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통념이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바와 같이 비판적으로 여겨지는 생각이 아니라, 말 그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또는 어떤 분야에서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술은 질문자와 답변자 두 사람이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 문답적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그의 변증술을 문답을 통한 변증술적 논의라고 부른다. 질문자는 통념을 질문의 형식으로 던진다. 그리고 답변자의 대답을 입론으로 하여 답변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변자의 대답을 듣고 그 대답을 토대로 다시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일련의 논의를 통해 답변자가 입론과 반대되는 대답을 하게 만드는 것이 질문자의 목표이다. 반대로 답변자는 자신의 주장을 옹호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결론적으로 질문자가 승리한다면 답변자의 입론의 부정을 수반하는 답변을 끄집어낸 것이고, 답변자가 승리한다면 그의 답변은 애초의 입론과 정합적(무모순적)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문답을 통한 논의에서 공격자는 상대방이 제시한 견해를 논박하는 역할을 맡고, 방어자는 모순 없이 자신의 견해를 내세우는 역할을 맡는다.”1)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8장 4절에서 질문자와 답변자의 구실을 논하면서 앞서 정했던 역할과는 조금 다른 역할을 이야기한다. “질문자의 구실은 입론을 통해 필연적으로 따라 나오는 명제들 중에서 가장 통념에 어긋나는 것을 답변자가 말하도록 논의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와 달리 답변자의 구실은 불가능한 것이나 통념에 거스르는 것이 따라 나오는 것이 답변자 자신의 탓이 아니라, 입론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2) 해제에 따르면 답변자의 역할은 자신의 입론을 성공적으로 옹호하고, 이는 곧 상대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문자의 역할은 답변자가 자신의 입론과 반대되는 말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답변자의 역할이 자신의 입론을 옹호하고 질문자가 이를 인정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통념에 어긋나는 것이 입론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그가 말하는 답변자의 역할은 해제에서 나타난 애초의 목적과 합치하지 않으며, 질문자와 답변자의 역할은 대립하여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답변자의 목적은 질문자의 목적과 일견 정합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질문자의 목적이 답변자의 잘못 때문에 통념에 거스르는 것이 나왔다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한 설명이 분명하게 주석이나 해제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먼저 해제에서 나타난 답변자의 역할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답변자의 역할의 모순성에 대해서 분석해 보자. 문제가 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답변자의 역할을 살펴보자. 그의 말을 뒤집어서 해석하면, 답변자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을 경우 자신이 잘못해서 통념에 거스르는 것이 따라 나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답변자의 잘못은 무엇일까? 아마 답변자가 저지른 논리적 오류나 질문자가 논리적 오류를 범했음에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것 등일 것이다. 그렇다면 변증술적 논의에서 답변자의 역할은 질문자의 논의를 따라가면서 논리적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고, 만약 질문자가 오류를 범한다면 이를 지적하는 것이다. 만약 합당하게 논리적 오류를 지적했다면 답변자가 자신의 견해를 성공적으로 옹호한 것이고 승리한 것이다. 반면 답변자가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지 못한 채 질문자의 의도대로 입론과 반대되는 견해를 인정한다면, 이는 답변자의 패배일지언정 그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답변자의 견해가 옹호받지 못한 결론이 나왔다고 해서 답변자가 그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아니고, 문답의 과정에서 답변자가 합리적으로 질문자에게 대응하기만 했다면 답변자는 그의 견해를 옹호한 것이며 그의 역할을 다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통념에 반대되는 내용이 나온 것은 답변자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입론이 거짓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일 답변자가 논리적 오류를 범해서 질문자의 의도대로 입론이 거짓임이 밝혀졌다면, 이는 답변자가 자신의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이다. 이를 통해 ‘답변자는 자신의 견해를 옹호해야 한다’는 명제와 ‘답변자는 자신의 견해가 반박당한 것이 입론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야 한다’는 명제가 모순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두 문장이 모순되어 보이는 것은 순전히 ‘옹호해야 한다’를 해석할 때 과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결과상의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며, 변증술적 논의를 일반적인 경쟁적 문답적 논의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 두 명제가 가리키고 있는 답변자의 역할을 종합하면 ‘답변자는 자기 견해의 편에 서서 질문자의 질문에 맞서 논리적인 답변을 통해 논의를 진행해야 하며, 질문자에게 논리적 오류가 있을 때는 반박하여 자신의 견해를 옹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답변자의 역할이 질문자에게 대립하여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나, 애초에 대립하여야 한다는 생각 역시 변증술적 논의를 경쟁적 문답적 논의로 착각해서 나타난 것이다. 실제로 변증술적 논의에서는 질문자와 답변자의 역할이 엄격히 대립할 필요는 없다. 변증술적 논의와 경쟁적 문답적 논의를 비교해 보자. 두 논의의 공통점은 형식적인 면에서 두드러진다. 질문자는 연역뿐 아니라, 귀납, 유비 추론, 심지어 논의를 늘린다거나 결론을 은폐하는 등 여러 책략을 쓸 수 있다. 게다가 주제의 다의성을 상대방이 알아채지 못했을 경우 이를 알리지 말아야 한다. 답변자 역시 예, 아니요의 답변만 해야 할 의무는 없다. 상대방의 질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거나, 명확한 의미 구분을 요구한다거나,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둘의 차이점은 논의의 목적에서 드러난다. 경쟁적 논의에서는 대화자들이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며, 오직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논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문답 과정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것도 인정하는 등 명확한 인정 혹은 부정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공식적, 비공식적 토론을 생각하면 된다. 반면 변증술적 추론은 질문자와 답변자가 협력하여 어떤 주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즉 어디까지나 답변자는 질문자의 협력자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서로를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제기되는 논의를 검토하는 것이다. 또한 답변자가 질문자로부터 승인해야 할 명제들은 입론과 반대되는 결론보다 더 통념에 가까운 명제들이며, 문답자간의 논의에서 올바른 논리는 반드시 갖추어져야 한다. 즉 변증술적 논의의 목적 자체가 서로를 이기는 게 목표인 경쟁적 논의와 달리 서로 협력하여 논의를 검토하는 것이다. 따라서 답변자의 역할은 질문자에게 대립할 필요가 없다.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장~7장의 주제들은 부수성, 유, 고유속성, 정의, 그리고 각각의 토포스들에 대한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주장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또는 나의 주장을 세울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이를 일반화하고 추상화하여 토포스를 만들어 변증술적 논의에 사용하기 적합하게 만든다. 이때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여느 토론회에서 나오는 특출난 화법이나 화술이 아니다. 지극히 이성에 합리적이며 논리적이고 쉽게 설명한다면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법한 내용들이다. 다만 그 논리들이 실생활에서 깊게 논의된 바 없는 생소한 것들이거나, 대중들이 쉽게 범하는 논리적 오류여서 비교적 생소하게 느껴질 뿐이다. 대표적으로 다의성에 대한 논의가 있다. 어떤 개념이 여러 의미로 사용될 때 그 의미를 명확히 짚지 않으면 제대로 된 주장과 반박이 어렵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내용이지만 실생활에서 논증하는 과정에서 쉽게 범하기 쉬운 문제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다루는 논리들이 생소하다고 해서 친절하게 예시를 들면서 설명해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의 목적은 변증술적 논의를 위한 방법을 서술하는 것이지, 실생활에서 보기 힘든 논리들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부수성과 유, 고유속성, 정의에서 나타나는 각종 복잡한 논리들을 추상화, 일반화하여 실질적인 변증술에 도움이 되는 지침을 전달한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예고편은 최고지만, 본편은 까다롭고 심오한 영화를 본 느낌이 들었다. 처음 해제를 읽었을 때는 칸트의 책을 읽기 직전처럼 큰 기대를 품었다. 그만큼 해제의 내용이 알찼고 본 책을 가지고 진행되었던 철학적 논의 자체들도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와 책에서 대면하면서 그런 기대는 사라지고 고뇌만 남고 말았다. 물론 고대 그리스어와 한국어 간의 괴리, 생소한 개념들이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런 부분들을 감안해도 <범주론>, <명제에 관하여>와 같은 오르가논 저서들보다도 어렵게 느껴졌고,  상당히 어려운 책임은 분명하다. 앞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적으로 글을 구성했는데, 읽기 어렵다는 말이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거시적인 측면에서 그가 글 구성을 세련되게 구성했다는 것이지, 구체적인 내용 측면에서 그가 설명하는 내용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편이다. 가끔 예시가 나타나거나 각주를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예시와 각주 내용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내용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다시 그 문제를 두고 고뇌해야 한다. 이외에도 너무 긴 문장, 주술 관계가 맞지 않는 문장, 앞뒤 문장이 상충하는 단락 등 과거 <정치학>을 읽었을 때 나타났던 문제들도 여전하다. 독자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있겠지만 나의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먼저 어떤 내용인지 몰라도 계속해서 문장을 읽어 나가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논리를 주장할 때 반드시 합당한 근거를 대고, 가끔 예시도 제공한다. 따라서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논리적 구조를 인지해 둔 다음 이를 근거들과 예시들에 맞추어 보는 것이다. 중간에 멈춰 서서 그 내용이 무엇인지 고민하거나, 긴 각주로 넘어가서 이해하려고 하면 더욱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를 믿고 읽어나간 다음 한 단락을 읽은 다음, 그래도 모른다면 각주를 참조하거나, 논리적 구조도를 그리는 등의 방법을 사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나의 사고의 깊이를 더더욱 깊게 해 준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가 끊임없이 강조한 통념과 전제, 입론, 그리고 질문자와 답변자의 생산적 논의는 나의 사고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견 당연해 보이는 논리, 혹은 불가능해 보이는 논리를 일반화하여 그 이유를 심도 있게 설명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통념과 직관, 그리고 이성에 대한 외경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우리가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고 쓰는 각종 개념과 논리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도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나와 뭇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성의 불완전함에 대한 자각, 그리고 인간이 가진 이성의 섬세함과 광대한 능력까지 느끼게 해 준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토포스를 전부 외우고 있다거나, 변증술적 논의에서의 세세한 규칙을 전부 암기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대화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힘들었지만 분명 귀중한 경험이었으며 더더욱 뛰어난 철학자들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 김재홍, 『(아리스토텔레스) 토피카 : 토포스에 관한 논구』, 서광사, 2021, p. 573-574

2) 김재홍, 『(아리스토텔레스) 토피카 : 토포스에 관한 논구』, 서광사, 2021, p.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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