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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비서가 Sep 17. 2021

제4화 보물찾기, 내 마음을 찾아가는 자기 탐구

조금 다른 공부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인식하는 자들조차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한 번도 탐구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느 날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난단 말인가?  “네 보물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으리라”라고 한 말은 옳다. 우리의 보물은 우리의 인식의 벌통이 있는 곳에 있다. 날개 달린 동물로 태어난 우리는 정신의 벌꿀을 모으는 자로 언제나 그 벌통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 니체, 도덕의 계보학


  서로 바쁜 우리 부부는 주말에 2~3시간의 산책을 함께 하며 밀린 대화를 하곤 했다. 부암동 언덕을 거쳐 윤동주 문학관 앞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와 집에서 비빔국수를 해 먹기도 하고, 컨디션이 좀 더 좋으면 걸어서 인왕산 스카이웨이를 거쳐 서촌에서 밥을 먹고 돌아오기도 한다. <만선>에서 주꾸미 무침을 한 사라 시켜 콩나물을 듬뿍 넣고 고추장에 참기름도 한껏 둘러 벌겋게 밥을 쓱쓱 비벼먹거나, 줄을 좀 서기는 하겠지만 <서촌 계단 집>에서 소주 반 병과 고추냉이를 조금 흩뿌린 초고추장에 소라를 찍어 베어 물고, 해산물 라면 한 숟갈 호로록 곁들여 먹은 후, 낮술에 얼큰해진 얼굴과 그만큼 풀어진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상상해보라. 정말 맛있고, 재밌고, 행복한 느낌이지 않은가?

  남편은 이 시간 속에서 여유로움과 평안함을 고스란히 즐기고 있었다. 정작 나는 그렇지 못했다. 매번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아깝고 무언가 유익하게 시간을 활용하지 못했다는 손해 감정에 산책을 출발하기 전부터 불편한 마음이 들곤 했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 내 혀에 닿는 고추장 맛이 더욱 매콤 달콤하게 느껴지고, 돌아오는 길의 차 소리가 더 우렁차게 귓가를 때리고, 지나치는 나무들의 초록빛 잎 색깔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그 동그란 얼굴이 더 동그래지도록 한껏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짓는 표정도 발견했다. 




  나는 이때까지 ‘삶에 맞서는 삶’이라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모든 수단을 강구해 자신을 보존하려고 하며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퇴화해가는 삶의 방어본능에서 생기는 금욕적 이상으로 피로에 지쳐가는 삶. 내 감정과 마음은 내가 살아가는 현장에 있지 않았다. 오직 해야 할 일들 속에서 최대한 계발된 어떤 표상에 볼모로 잡혀있었다. 


  해야 될 일이란 ‘무언가를 집으로 가져가는’ 행위이다. 이것은 축적하는 것이며 오로지 성장에 포커스를 두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는 그 순간에도 내 감각과 나의 주의는 거기에 없으며 스스로 매긴 가치에 기반한 의미만이 있었다. 어떤 것을 배울 때 이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어디에 쓰일 것인가를 계산하며 그로 인해 도출될 결과, 목표에 그 의미를 두었다. 나의 진짜 욕망이 무엇인지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내 인식의 시선은 내부가 아닌 바깥을 향했다. 오로지 반응체로만 작동했고 피곤했고 생기가 없었다.


  그토록 많은 배움 속에서 그 체험은 나에게로 통합되지 못했다. 나의 자기 계발 행위는 마치 곁눈질하며 몰래 은신처에 이 보따리, 저 보따리 싸서 숨겨두며 안전하다고 여기며 영리하다 자만하는 약자의 공부였던 걸까? 바리바리 쌓아 축적하였지만 내 것이 되지 않았고 내가 되지 못했다. 배우는 것 자체를 좋아하였지만 목적이 설정되고 의미부여가 되어버리니 달성해야 할 과제로 변형된 것이다.


마치 키는 불쑥 자랐지만 속 빈 쭉정이 같은 오랜 자기 계발 습관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진짜 나를 발견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무엇이 되기 위한 자기 계발의 수단으로써 공부가 아니라, 오로지 내가 되기 위한 공부. 


내 마음속 보물을 찾아가는 진짜 공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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