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새우라면과 한라산 中
“하아... 어떻게 4년제 대학을 나오고도 갈 때가 없냐?”
“사실 갈 곳이야 많지. 좆소까지 다 합치면.”
“좆소 들어갈 거면 뭐 하러 이렇게까지 공부하고 스펙 쌓으면서 아등바등 살았냐?”
“그렇다고 뭐 갈 때 있어?”
“없지. 다시 공부나 하련다.”
“무슨 공부?”
“뭐겠냐? 공무원이지.”
“졸업할 때 돼서 갑자기 무슨 공무원이야?”
“회사가 언제 어떻게 없어질지도 모르고, 평생 없어지지 않을 대기업들은 날 찾지 않고. 스펙이나 능력으로 비비려고 해도 사실 거기 지원하는 새끼들 우리가 어떻게 이기냐? 어중간한 학벌이랑 스펙으로는 어중간한 데서도 잘 안 찾아. 우리같이 어중간한 애들이 제일 갈 때가 없는 거야.”
“공무원은 뭐 쉽냐?”
“다시 수능 본다고 생각해야지. 옛날에 오바마가 그랬잖아. 대한민국 교육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공정한 교육시스템이라고. 뒷배 없이 모두 제로베이스에서 순수하게 성적으로 행복을 등수매기는 시스템. 차라리, 이게 마음 편해.”
그때는 몰랐다. 어차피 해도 안 될 거 다시 제로 베이스에서 이 꽉 깨물고 하면 그래도 몇 년 내에 평범한 삶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었다. 그러나, 그 꿈은 기나긴 희망고문에 지나지 않았고 나는 결국 돌고 돌아 이 자리까지 오게 되고 말았다.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었더라면. 단 한 곳이라도 일을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런 고민에 힘들어하던 내가 새로운 직업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참 기분이 이상했다.
“창직이면 완전히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뭐.. 사실 저도 지금 딱히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냥 일자리를 만드는 걸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요?”
사실, 창직이라는 말 자체가 조금 난해한 주제이긴 했다. 창직. 새로운 직업을 만든다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새로운 직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혁신적인 무언가가 나타나야 하는 게 수순이지 않나 싶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뭔가 변화를 줄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 미션은 일주일 프로젝트였다. 이전처럼 3일짜리 간단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쉴틈도 없이 바로 이렇게 무언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것이 살짝 버겁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뭐. 일단 나가보죠. 이렇게 계속 탁상공론하는 것보다 나가서 뭐라도 보는 게 훨씬 더 좋아요.”
이번 프로젝트는 은진님의 리드하에 따라가게 될 것 같았다. 사실, 이곳에서 장사를 해본 사람은 은진님과 함께 방을 쓰는 준범형님이 전부였다. 나와 윤지님은 아직 창직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느낌이기에 우선 경험자들이면서 연장자들의 조언을 따라가고자 마음을 먹었다.
“어디로 갈까요?”
“뭐 사방이 바다인데 바다로 한 번 가보죠. 카페든 서핑이던 항구던 분명히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 있을거에요. 제 경험상 사람이 환경에 녹아드는 경향이 높아서 지리적 환경을 절대 무시할 수 없더라고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게 이런 것일까? 역시 경험보다 값진 건 없다고 했는데 카페를 운영하면서 F&B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은진님은 확실히 자신이 살아온 길에 대한 확신이 있어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은진님은 우리 중에 가장 나이가 어렸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바로 아버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부터 일을 시작하며 온갖 자격증을 딴 이력 덕에 경력은 남들에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성장도 빠르게 배움의 흡수력도 빠른 10대 중반에 과감하게 자신의 인생을 어딘가에 올인할 수 있었던 그 패기가 그저 부럽기만 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래도, 남들과 같이 살아가려면 남들이 하는 건 다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남들과 같이 살기 위해 남들과 같은 길을 가다 보니 다 같이 못 살게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었다.
“저희 이거 해녀체험 해볼 수 있어요?”
“네. 가능하죠.”
조금 뚱딴지같기는 했지만, 우리가 가장 처음 가본 곳은 해녀체험 코스였다. 해녀들의 물질은 전통적인 무형문화유산으로도 유명하지만, 건강적인 문제나 스쿠버 다이버들의 불법 수렵으로 인한 잦은 마찰을 빚고 있는 사회적 맹점 중에 하나였다. 이곳을 먼저 가보자고 한 건 오래도록 필리핀 내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일을 했던 윤지님이었다. 불편한 걸 찾고 해결책을 찾으면 생각보다 많은 아이템들이 나온다는 의견이었다. 체험은 해보지만 문제는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렇게까지 잠수를 잘하지 못했던 것. 그래도, 제로 베이스의 일반인의 입장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접근성을 따져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물질에 대해 접촉해 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윤지님이 강하게 주장했다.
“하아...하아... 이거 맞아요?”
“죄송해요. 아닌 거 같아요.”
행동력이 좋은 게 다 좋은 건 아닌 거 같았다. 해녀들의 마음과 물질 시장을 알아보려다가 위가 염장이 되는 줄 알았다. 아름다운 물 색깔과 달리 말도 안 되게 짠 물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나서 우리는 바다에서 나와 다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바다가 부러운 화전민이라도 숨이 차오를 정도로 짜디짠 바닷물을 들이키게 되면 절대 부럽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잠시만.”
준범형님이 갑자기 전화를 받으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들 바닷물을 씻어내고 젖은 머리를 바닷바람에 말리고 있었다. 건조대에 걸린 다시마같이 축축한 머리로 힘없이 그늘진 평상에 앉아 우리는 철썩거리며 들려오는 바다의 운율과 짭짤하게 파도치는 바닷바람의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간디는 정신을 이기는 육체적인 고통은 없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는 아직 간디정도의 현인이 되지 못한 것 같았다. 이 정도의 피곤함에도 이전과 같은 열정은 소나기가 지나간 캠프파이어처럼 완전히 젖어버려 가까스로 흰 연기를 내뱉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말없이 바닥난 체력을 겨우겨우 회복하고 있던 그때 준범형님이 다가와 급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 다음 장소로 이동하시죠?”
“네? 어디로요?”‘
“고생했으니까 고기 먹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