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중지와(海中之蛙) - 바다에 빠진 개구리

딱새우라면과 한라산 上

by 심색필 SSF

“파이팅.”

“파이팅.”


어느덧 3일 차. 발표에 자신이 있다는 유정이가 강단 앞에 나섰다. 빠른 시간 내에 만든 PPT지만 내실이 있었고 어떻게 보면 시답지 않은 주제이지만 창업자와 재창업자가 붙으니 내용은 대기업 사업제안서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그 내용이 단단해져 있었다. 모두가 정도를 향한 것은 아니었고, 모두가 정점에 달해 보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일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공통점이 있었다. 살아남는 방법을 알고,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쏟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지금까지 발표를 마친 고유정이었습니다.”

-짝. 짝. 짝. 짝. 짝. 짝.-


당연히 차이는 나겠지만 대학생 때 보았던 그런 발표와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결과도 과정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오랜 시간을 쓰지 않아도 처음 공부하는 사람보다 효율적으로 결과를 가져오는 방법을 안다. 물론, 천부적인 재능 앞에 무너지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결과로 가는 방법적인 부분을 체화할 수 있었다. 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듯이 어느 영역에서 오래도록 열과 성을 쏟다 보면 분명히 나오는 결과물이 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런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을 굉장히 쉽게 풀어내고 있었다. 같은 언어지만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숫자와 근거의 영역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었다.


“와. 정말 잘하셨어요.”

“아이. 뭐 이 정도야.”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스티븐 잡스와 빌게이츠를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 하나를 가지고 대뜸 스타트업 씬에 뛰어든 유정이었다. 많은 면이 뛰어났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강단 하나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고생했다는 말에 별 거 아니라는 듯 너스레를 떠는 유정이는 사실 연대기적인 나이만 어렸지 나보다 몇 배는 성장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에서 숙취음료를 만드는 회사에 팀원으로 활동하며 꽤나 큰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다른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며 밤새 떠들고 있을 때에도 11시가 되면 방으로 들어가 홀로 사업계획서를 구상했다. 규모가 크던지 작던지 가장 앞에 서서 달리는 사람들은 무언가 다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와. 그럼 이번 프로젝트는 끝인가?”

“그런 것 같네요. 그래도 아직 10일이 넘게 남았네요.”

“그러게요. 이제 뭘 하려고 그러지?”

-두구두구두구두구.-

“첫 번째 프로젝트 1등은....”


아쉽게도 우리는 1등을 하지 못했다. 1등을 한 팀은 단순관광지만으로 콘텐츠를 짠 것이 아닌 게스트하우스와 숙박시설들을 토대로 숙박 일수별 가성비 코스를 세분화한 팀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청년들의 유입을 위해 보다 적절한 코스를 꾸며서 각 코스별로 사람들이 유입되게 되었을 때 자연스러운 파티로 연계를 해 지속적인 관광상품을 만들 수 있는 자생적인 현지관광아이템이었다. 사실, 아이템이라기보다는 협동조합에 가까운 모델인 듯했으나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괜찮은 인사이트와 레퍼런스를 구축해서 가져왔다. 하락하는 결혼율과 출산율에 비해 여행지에서 만나는 뜻밖의 여행에서부터 시작되는 연인들이 결혼까지 가는 확률을 계산하여 지속적으로 새로운 만남의 장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저게 실제로 이루어질까 싶었지만 그래도 혹할만한 요소는 분명히 있었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일지언정 재밌었다.

“마케팅을 오래 한 친구들이 있다 보니까 확실히 저런 이야기를 잘 풀어내네.”

“한 명은 콘텐츠 기획팀에서 오래 일했다고 하더라고요.”


1등을 한 팀에게는 소정의 상금이 주어졌고, 남은 프로그램 기간 동안 일종의 재화로 대체할 수 있는 바우처도 꽤나 주어졌다. 비록 1등은 못 했어도 이 과정 자체가 재밌었다. 시험이라는 허들을 넘기 위해 동등한 조건에서 모두 같은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공시생들의 싸움터와 달리 이곳은 개성 넘치는 자신만의 무기로 언제든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콜로세움 같은 곳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회는 이러지 않을까 싶었다. 동물들에게 있어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과 울타리 밖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확연한 차이가 있을 테니까. 공룡이 멸종하고 조류와 포유류가 지구를 장악하기 시작할 때쯤 모든 동물들은 몸이 점점 작아지게 진화를 했다고 들었다. 피식자로써 몸을 더 숨기기 쉬운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점점 몸이 작아지는 피식자들을 위해 포식자들 또한 몸이 작아져야만 했다고 했다. 이 조그만 PPT 경진대회에서도 사람들은 환경에 맞게 진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다음 프로젝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프로젝트는 바로...”


생각지도 못한 프로젝트였다.


“하아... 이대로 팀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러게요. 뭐. 운이 좋으면 다시 뭉치겠죠.”


자신의 성향을 판별하여 새로운 팀을 구성하는 프로젝트였다. 능력을 배제하고 오로지 성격과 고유한 캐릭터로 사람들을 분류하여 팀을 모으는 시간이었다. MBTI 신봉자도 아니고 왜 갑자기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을 할 때 사람들 간의 성격이 중요하기는 하다만 이게 취창업 프로그램이랑 무슨 상관인지 하는 생각이 또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형님. 여기서 뵙네요.”

“매일 보는데 뭘 새삼스럽게.”


다행히 준범 형님이랑은 한 팀으로 묶여 생활하게 되었다. 예술적인 창작가와 이성적인 중재인의 만남이었다. 내가 왜 이성적인 중재인으로 선별된 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캐릭터 분별작업에서 내 캐릭터는 이성적인 중재인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곳에 와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기도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F&B 사업을 준비하는 백은진님과 해외에 설립된 한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근무하며 필리핀에서 일을 했던 김윤지님과 함께 조가 만들어졌다. 은진님은 애초에 창업을 하고 있었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국가 지원사업에 가점을 받기 위해 참가했다며 명확하게 자신의 목표점을 타겟해놓았다. 반면에 윤지님은 필리핀에서 오래 근무를 하며 자신도 필리핀에서 무언가 사업을 하고 싶다고는 했지만 마땅한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아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이런 행사를 많이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이제 뭐 하면 되는 거예요?”

“지금 알려주는 거 같은데요?”


강단 위에 있는 프로젝터에는 창직(創職)이라는 말이 떡하니 쓰여있었다. 취업을 하고 싶은 사람도 창업을 하고 싶은 사람도 직업이 없으면 결국 일을 할 수 없다며 제주도에서 혹은 자신의 아이템으로 또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보라는 것이 이번 미션이었다. 분명, 취직을 하고 싶어서 온 캠프에서 신기한 걸 많이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창직이라는 이 두 글자는 사실 내 마음을 많이 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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