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새우라면과 한라산 下
듣던 중 반가운 얘기였다. 준범형님의 친한 지인 중에 한 분이 중문 근처에 숙박업을 하시는데 오늘 바비큐 파티를 한다고 우리들을 초대한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제주를 대표하는 산업은 농업과 어업도 있겠지만 대중적으로는 관광업이 떠올랐다. 제주에 사는 사람보다 제주에 놀러 오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관광인구가 많은 지역을 뽑으라고 하면 제주는 아마 빠지지 않고 항상 리스트에 올라와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공짜 바비큐까지. 4년 내내 풀리지 않은 운이 이제야 내 손을 잡아준 것인지 고맙게도 행운이 술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캠프 주최 측에 양해를 구하고 우리는 준범형님의 지인이 운영하는 펜션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다. 확실히 제주도는 현지에서 사는 사람들의 맛이 따로 있었다.
“이게 뭐예요?”
“이게 멜젓이라고 돼지고기 한 번 푹 담가서 먹어 봐.”
펜션 사장님이 말씀해 주신 대로 멜젓에 돼지고기를 한 번 푹 찍어먹으니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맛이 느껴졌다. 서울에서는 쉽게 먹을 볼 수 없었던 딱새우와 회들이 깔린 풍성한 식탁에 눈이 돌아갔다. 비린내와 누린내의 조화는 단짠단짠처럼 조화가 나쁘지 않았다. 맥주가 아닌 속을 긁는 소주와 맛있는 음식들. 바다와 산을 함께 볼 수 있는 절경의 한가운데. 살랑거리는 바람의 촉감. 어떻게 보면 이런 것들이 사람들을 계속 제주로 모이게 하는 가장 큰 힘이 아닌가 싶었다. 사실 최근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 보다 점점 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마음에 남아있는 자그마한 불편함까지 훨훨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이거 먹어봐. 새우 대가리랑 이것저것 넣고 만든 라면인데 진짜 죽여준다.”
딱새우 대가리와 문어, 전복들을 넣어 만든 생선 육수에 갖가지 채소들과 라면스프를 때려 넣어 만든 해물라면이었다. 사실, 라면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그 존재의 값어치를 아득히 뛰어넘은 느낌이었다.
“크으으으.”
“크으으으.”
“크으으으.”
여기저기서 뜨거운 뚝배기에 팔팔 끓는 국물을 한 입 먹은 아저씨의 감탄사들이 터져 나왔다. 확실한 맛이었다. 술을 몇 병을 마시던지 바로 해장이 될 것만 같은 그런 시원함과 개운함.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해장을 하기 위해서 소주를 한 병 정도 마셔야 할 것 같은 그런 맛. 해장을 위해서 필요한 국물이 아니라, 국물을 마시며 해장을 하기 위해 소주를 마셔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순간, 머리를 번뜩이며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창직이란 직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직업이 생길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를 만드는 게 순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술 마시는데 조금 엇나가는 이야기인데 역순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뭐가? 뭐를 역순으로 생각해?”
“창직이란 게 직업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런데?”
“직업을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을 먼저 찾는 게 중요하지 않나요?”
“예를 들면?”
“일거리는 많고 자금의 유통도 어느 정도 윤활한데 사람이 없는 곳?”
“그런 거는 대부분 일이 힘들잖아. 일은 많은데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다. 그 돈을 줘도 그 일을 하기 싫은 거지.”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옛날에는 배달부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걸 해서 뭘 먹고 사냐고 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배달하는 게 어떻게 보면 좀 일상적이기도 하잖아요. 그냥 알바식으로도 그렇고.”
정말 의구심에 던진 작은 조약돌 하나였다. 그래도, 의구심에 던진 그 조약돌 하나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 듯했다. 사실, 조금만 뒤틀어서 생각해 보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마음속에서 잔물결이 울렁거리는 이유가 내일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닌 듯했다. 고기와 해산물에 신나 뒤도 보지 않고 들이킨 술도 한몫했음이 분명했다. 술술 들어간 술 때문인지 어느새 몸에 힘이 슬슬 풀리기 시작했고 피곤함에 이기지 못해 들어가서 잠이 들어버렸다.
-짹.짹.짹.짹.짹.-
“아아.. 피곤해.”
“다들 잘 일어났어요?”
확실히 세상에 부지런한 사람들은 넘쳐났다. 다들 술을 그렇게 걸쳤음에도 아침부터 쌩쌩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사실, 나를 제외한 모두 꼭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렇게 진심과 열의를 담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나조차도 취직의 문턱을 어떻게 넘느냐를 고민해야 할 때 지금 여기서 이런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에너지를 쏟고 있는 거니까 말이다.
“그럼 리서치 한 번 해볼까요?”
우린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켜고 직업이 부족한 직종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뭐 리서치를 한다고 나올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생각보다 인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지, 입지와 급여 등 단순히 일을 하기에 좋지 않은 환경에는 사람들이 몰리지 않았다. 지역 곳곳에 있는 공장들에서는 매년 일손이 부족해 사람들을 구하지만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고, 농수산 분야는 이미 한국인은 쓰지 않고 외국인들을 쓰는 것이 추세였다.
“와... 진짜 먹고살기가 빡세기는 하구나.”
“당연하죠. 남의 주머니에서 돈 가져오는 게 쉽지 않아요. 진짜.”
내가 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와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당연했다. 서울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근무하면서 적당한 노동의 업무에 생각보다 괜찮은 월급.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걸 원했다.
“하아... 뭔가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뭐 그러니까 프로젝트를 준거 아니겠어요? 사실, 이 문제는 국가에서도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라서...”
창직. 사실 나라에서도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였다. 공무원들의 수를 늘린다. 해외취업을 장려한다. 일자리 매칭을 해준다. 등등 수많은 지원시책이 있거나 추천들이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성공적인 일들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휴... 머리 아파.”
“그러게요. 쉽지 않네요.”
“머리나 한 번 식히고 올까요?”
“뭐 재밌는 일이라도 있을까요?”
“많죠. 제주도잖아요. 온 사방이 바다라구요.”
준범형님은 생각보다 더 잘 노는 사람이었다. 머리가 돌지 않을 때는 차라리 즐기는 게 낫다며 카페 주위에 있는 항구를 찾아갔다.
“배낚시 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