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밝히는 오징어배 上
“우와. 우와!”
“당겨. 빨리.”
“와. 또 낚았다.”
생각보다 재밌었다. 흔들거리는 배 위에서 물고기 낚시를 하는 것이 생각보다 즐거웠다. 선장님이 포인트를 잘 잡아준 덕인지 크진 않지만 조그만 물고기들이 툭툭 딸려 나왔다. 우리와 함께 배를 탄 커플은 어지러운지 뱃멀미로 구토증세까지 보였지만 다행히 우리 중에 뱃멀미에 고생하는 사람은 없었다. 햇빛이 부서지는 바다표면을 바라보며 낚싯줄이 흔들거리는 촉각에 몰두했다. 짜릿한 손맛을 느끼기에는 묵직함이 얕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낚이지 않는 노트북 앞에서 머리만 끙끙 싸매고 있는 것보다 나은 것 같았다. 강태공이 왜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와... 진짜 좋다.”
“그러게요. 여기서 보니까 제주도 보는 느낌이 다르네요.”
무언가를 바라볼 때 언제, 어디서 그것을 보는지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제주도와 항구는 늘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겠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매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제주도와 배에서 바라보는 제주도. 모든 것이 다 그렇겠지만 그 자리에 있을 때와는 뭔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저거는 폐가인 건가요?”
“그러게? 폐가가 있네.”
푸르른 바다와 녹음이 우거진 나무들과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펼쳐진 아름다운 공간이었지만 그 와중에 시선을 빼앗은 빈집들이 보였다.
“제주도가 원래 이렇게 빈집이 많았나요?”
“뭐. 그래도 지방이니까 조금 있겠죠?”
“아... 참 내 집 하나 구하긴 어려운 시댄데. 빈집이 많다니. 좀 역설적이네요.”
“와.. 재영님. 진짜 모르시는구나. 지방에 빈집 장난 아니에요. 요즘 진짜 문젠데...”
지역에서 카페를 하며 F&B 사업까지 준비하며 지방 곳곳을 다니는 은진님은 지방에 빈 공간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서 지방에 내려와서 사업을 한다고 하면 지원금을 준다고도 했다. 당연히, 첩첩산중이나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완전 농어촌 지역에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문제가 심각한 듯했다.
“아니에요. 나 사는 데는 시내라니까. 제가 카페 창업한 곳이 우리 지역에서 가장 핫플이에요. 놀 때가 여기밖에 없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했지만 사람들이 없어서 조용하게 카페를 운영할 때가 더 많았고, 심지어 일주일에 4일은 일하고 3일은 쉰다고 이야기를 했다. 워라밸은 좋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더 원망스럽다는 했다. 사람들이 없어서 원치 않는 워라밸을 강요당한다고. 더 오래 일하면서 천원이라도 더 벌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너무 사람이 없다고 했다. 주변에 몇 년째 비어있는 상가도 종종 보이고 이전에 있던 술집이나 이런 것도 거의 없어졌다고 얘기했다.
“흠... 그러면 사람들을 오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에이. 재영님.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에요.”
“뭐... 그렇기는 한데 SNS나 유튜브 보다 보면 사람들이 은근히 별것도 아닌 거에 많이 몰리거나 그러지 않나요? 갑자기 이게 왜 떴지? 이런 것도 많고요.”
“예를 들어서?”
“아니. 뭐 옛날에 갑자기 달고나라떼같은 것도 그렇고. 지금 탕후루가 이렇게 길바닥에 널려있는 것 보면 사실 저게 왜 뜨는지 모르겠는데 하는 게 많잖아요.”
“그건 그런데 그거랑 지방에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냐 이거죠.”
“뭔가 재밌는 걸 많이 하면 사람들이 조금 더 오지 않을까요? 어차피, 빈집은 많다면서요. 지역에서 청년들 온다고 하면 지원까지 해준다고 하는데. 지역에 남는 빈집들에서 재밌는 뭔가를 많이 만들면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올 수 도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추상적인데...”
“뭐... 예를 들어 폐가 콘테스트?”
“폐가 콘테스트요?”
“아니. 뭐 어차피 집들은 다 비어있고 주인도 없고 쓰지도 않으면 항상 돈이 없는 예술가들 모아서 빈집을 재밌게 꾸며서 사람들이 놀 수 있게 한다던가. 아니면, 뭐 무박 2일 폐가체험 콘테스트 이런 것도 괜찮기도 할 것 같아서요.”
흔들거리는 배 위에서 사람들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내 말에 집중했다. 속이 울렁거리지 않고 뇌가 울렁거려서 그런지 말랑말랑해진 뇌에서 꽤나 많은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 필요한 데 사람들이 없는 직종이면서, 사람들이 몰리면 몰릴수록 이득이 되는 건 버려진 무언가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어 줄 수만 있다면 사람들이 말한 창직에 대해 어느 정도 가까워질 것 같았다. 배에서 내린 다음에 우리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캠프가 있는 교육장을 향했다. 생각보다 목표점을 빠르게 만든 느낌이었다.
“일단, 그럼 제주에 있는 빈집들 한 번 조사 좀 해볼까요?”
“꼭 제주가 아니라도 상관이 없지 않나?”
“뭐. 기본적으로 여기가 제주시랑 손잡고 하는 프로그램이니까 혹시 모르잖아요. 이 프로젝트를 한 번 제주에 맞게 써보면 진짜로 한 번 해보라고 지원금이라도 줄 지도.”
“헉... 그건 일이 너무 커지는 거 아닌가요? 저도 그렇고 재영님도 그냥 일자리 한 번 알아보려고 여기 온 건데...”
“창직이잖아요. 일자리가 진짜로 넝쿨째 들어올 수도 있어요.”
2주 내로 어딘가에 취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프로그램을 따라왔는데, 진짜 얼토당토않게 갑자기 사업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도 모든 일에 진심이던 사람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진심으로 프로젝트에 열과 성을 다했다. 나와 은진님은 캠프에서 자료들을 조사하며 기획단계를 맡아가기로 했고, 범준 형님과 윤지는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빈집을 조사하고 현장을 알아보는 일을 맡기로 했다.
“이런 것도 있네요.”
산과 들에 피는 꽃들을 사용해 꽃차를 만드는 협동조합.
“와... 이거 아이디어 좋은데요.”
“그러니깐요. 들꽃이랑 산꽃이 이렇게 많이 자랄 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이런 건 자연을 오히려 훼손하는 거 아닌가? 들꽃이랑 산꽃을 이렇게 다 따가면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다음 해에 꽃이 더 안 생기거나 자연에 서식하는 벌들이 사라지거나 그런 부작용은 없다던가요?”
“뭐 그런 말은 딱히 없네요. 생각해 보면 그냥 사람 손 안 타고 그대로 있는 산이 좀 많잖아요. 대한민국에 깔려있는 산꽃이랑 들꽃까지 생각하면 그 수가 진짜 어마어마할 것 같긴 하네요. 진짜 바다에 소금 뿌리는 거 걱정하는 거랑 비슷한 수치 아닐까요?”
은진님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모든 일에 작용, 반작용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큰 힘이 들어갈 때나 걱정해야 하는 일이었다. 지금 우리가 그런 일을 걱정할 정도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