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중지와(海中之蛙) - 바다에 빠진 개구리

밤하늘을 밝히는 오징어배 中

by 심색필 SSF

지금 우리는 그런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시작도 하지 않은 일에 이런저런 걱정을 붙여봤자 일의 속도만 늦어질 뿐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건너편에서 온몸에 불을 뿜는 듯 한 아우라를 보여주는 열정 어린 은진님의 모습을 보았을 때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채 헛짓거리를 할 수 없었다.


“야... 근데, 그건 좀 그렇지 않냐?”

“그러니까. 그렇게 좋은 아이템이면 누군가가 했겠지.”

“그래. 사람들이 뭘 안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생각해 보면 진짜 비관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뭐 끼리끼리 논다고 나도 그런 부류의 인간 중에 하나였지만, 확실히 사람은 환경에 따라 바뀌는 건 어느 정도 맞는 말 같았다. 이산화탄소가 터지는 독서실에서 삶을 보내다 바다와 산을 보며 짭짤한 바다냄새가 느끼는 자연이 섞인 공간에 있다 보니 이전에 느끼지 못한 열정이 충만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꽤나 긴 시간 동안 불타오르는 뜨거운 열정은 금세 몸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 느끼지 못했던 피로가 다가왔다. 예술가들이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된다고 했는데, 잠시나마 그들이 겪는 고통을 조금 통감한 느낌이었다.

“끄앗.”

“하하하. 기지개를 되게 맛있게 하네요.”

“하하하. 공부할 때 습관이 돼서요.”

“아. 맞다. 공부 오래 하셨다고 했죠.”

“네. 재능 없는 공부에 너무 시간을 오래 부었죠. 뭐.”

“에이. 더 잘 되려고 그러셨겠죠.”

“감사합니다.”

“재영씨. 잘 될 것 같아요. 오랜만이거든요. 재영씨처럼 아이디어도 넘치고 실행력도 좋은 사람은요.”

“제가요?”

“네. 재영씨 충분히 능력도 좋으시고 성실하신 것 같은데.”

“하하.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듣는 칭찬이었다. 매일 같이 욕먹는 게 일상이어서 그런지 간만에 듣는 칭찬에 기분이 뭉근해졌다. 사실, 살짝 울컥하기도 한 것 같았다. 확실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세상이 무서워서 좁디좁은 우물로 들어간 개구리가 처음 밖으로 나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언제 어떻게 잡혀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 세상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가 이렇게 사람을 기운차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 그런데 뭔가 확 꽂히는 게 없긴 하다.”

“그러게요.”

“좀 다 애매하거나 이미 기존에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네요.”


제주의 빈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로 무언가를 넣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처음 우리가 설정한 아이템이었지만, 누군가와 이런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이렇게 골머리를 싸매가며 고민을 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지역에 빈 공간은 많았지만, 그 빈 공간에 뭘 넣어야 할지 도통 뭐가 잡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최대한 제주스러운 걸로 이것저것 다 때려 넣어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기획해 보았다. 다른 무언가를 제주의 빈집에 넣는다는 게 살짝 많이 와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야. 이렇게나 많이 한 거야?”

“뭐... 그렇게 많이는 아니긴 한데. 콘텐츠를 넣는 게 더 어렵긴 하네요. 도돌이표에 빠진 느낌이랄까... 외부팀은 오늘 어땠아요?”

“뭐.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스팟은 다녀봤는데 큰 수확은 없더라고. 그래서, 그냥 시청에서 담당자 만나보기로 했지.”

“시청에서 미팅을 그렇게 쉽게 잡아주나요?”

“뭐 빈집 관련된 정보 받는 게 그렇게 큰일이 아니기도 한데... 사실 이런 지역은 다 지인찬스라는 게 어느 정도 성립이 되거든.”

인복은 정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복중에 하나였다. 준범형님의 인싸력은 정말 끝이 없는 느낌이었다. 아는 사람도 많았고, 도와주거나 도와줄 사람도 많았다. 확실히, 인맥도 능력이라고 사람을 곁에 많이 둔 것도 굉장한 강점인 것 같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일에 나도 모르게 ‘진짜 이 사업을 하게 되는 거 아니야?’하는 겁이 덜컥 들었다.

-후루루룩.쩝.쩝.-

“진짜 간단해 보이는데 진짜 맛있네요.”

“고기국수 원래 유명하잖아요.”

“와. 진짜 별 거 아닌데 맛있네요.”

진한 고기국물에 소면과 수육을 올린 고기국수. 멸치국물과 섞인 멸치고기국수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는 그냥 기본적인 고기국수라고 하셨다. 그냥 곰탕에 쌀밥이 아닌 중면이 들어간 것뿐인데 이렇게나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발전한 것이 신기했다. 특별하지 않고 일상적인 것이 결국 지역을 대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성심당은 대전에서 유명한 빵집을 넘어 대전의 명물이 되고 이제 전국으로 나아가는 그런 위치에 서게 되었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생각보다 지역을 나타내는 이미지나 음식은 꼭 그 지역이여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는 것도 많았다. 부산의 밀면과 돼지국밥도 그렇고 통영의 충무김밥, 안동찜닭, 강릉 초당순두부 등. 왜 꼭 그곳이어야만 하는 메뉴들이 꽤나 있었다. 순간, 무언가를 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꼭 제주의 공간을 채우는 데 있어서 굳이 ‘제주’스러운 걸 찾아야 하는 의문이었다.

“우리 빈 공간을 채우는 데 꼭 제주스러운 걸 찾아야 할까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너무 ‘제주’라는 키워드에 발목을 잡혀있는 느낌이 나서요.”

“제주에 오는 사람들은 제주에 있는 것을 보고 싶어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대기업이 아니고서야 제주스럽지 않은 걸 제주에서 시작해서 좋을 게 없지 않을까? 로컬은 로컬의 맛이 있는 건데?”

“그렇기는 한데 아무리 제주가 관광업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이게 너무 육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같아서요.”

“육지인?”


육지. 참 재미있는 단어였다. 우리는 제주도에 올 때 그냥 관광지에 놀러 간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제주라는 단어 자체가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게 이유였는지 제주도민들은 우리들을 육지사람이라고 불렀다. 같은 나라에 살면서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서로 다른 문화가 존재했다. 어쩌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우리는 그런 부분은 생각하지 않고 사회문제라는 한 가지 부분만을 생각하며 지역에 오래도록 살고 있던 토착민의 시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로컬에서 무언가 일을 하려면 로컬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접촉은 피할 수 없었다. 만약, 토착민들을 완전히 목표고객에서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대기업이나 정말 유명한 브랜드가 아니고서는 말이다.


“제주스럽지 않지만 제주까지 와서 볼만 한 곳을 만들어야 한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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