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밝히는 오징어배 下
“근데, 그건 사막에 도시를 만드는 거랑 똑같은 얘기 아닌가? 그게 말이 돼?”
“되긴 되죠. 라스베이거스도 그렇고. 사우디아라비아나 현재 사막에서 하는 여러 사업들이 있기는 하니깐요.”
“에이. 그거는 진짜 돈을 완전히 갖다 바른 사업이었잖아.”
“하긴...”
돈. 문제는 돈이었다. 우리는 돈이라는 한 글자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하기사, 세상만사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돈이었다. 사실, 돈만 있으면 어떤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반타작 이상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연 백억을 버는 투자자가 심심풀이로 분식집을 만든다면, 프랜차이즈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빚을 내고 열정과 시간과 공을 들여서 분식집을 연다고 해서 그 음식점이 잘 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빛이 있는 곳에 나방이 몰리듯 돈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몰리는 법이기에 한 번 돈맛을 본 사람은 그 맛을 쉽게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문제는 이 프로젝트에 그만큼의 자본이 투여될 여력이 없었다는 것. 준범형님도 은진님도 수중에 돈이 있기는 했지만 막상 이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것 같았다.
“흠... 역시 어렵기는 하네요.”
“원래 어렵죠. 이렇게 쉽게 쉽게 해결할 문제였으면 아마 문제가 안 됐을 거예요. 지역에 청년도 들어와. 빈집 문제도 해결해. 그리고, 일자리까지 창출하는데 그게 어떻게 쉽겠어요?”
“어?”
“왜요?”
“국가에서 너무 좋아할 일 아니에요?”
“네?”
“다 모아놨잖아요. 지역 세대 불균형 문제 완화. 빈집 문제 해결을 통한 청년 집문제 해결. 거기다 일자리 문제까지 해결이라.”
“에이. 그걸 해결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죠. 대기업이 지역에 공장을 짓지 않는 한...”
“지역에 내려오면 더 이득이 될만한 회사들이 있지 않을까요? 생각해 보니까 근본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해야 할 프로젝트가 아니라 대기업에게 제안서로 던져줄 만한 내용이 맞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순간적으로 또 생각이 번뜩여서 우선 덜 정리된 생각들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지금의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준범형님의 대답은 생각보다 냉랭하고 냉정했다.
“그건 이미 도청이랑 은행, 기업들에서 하고 있겠지.”
“아... 그런가요?”
“주변에 한 번 잘 봐봐. 제주는 농협이 다 먹고 있다는 말도 있잖아. 다 농협이야. 여기는.”
생각해 보니 그랬다. 농협만큼 큰 대기업이 이미 현지에 와서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농협이 우리와 같은 생각을 안 했을까? 아마, 수십 번도 더 그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거나 다른 기업들을 데려온다고 해도 대규모 자금이 있는 회사들은 금세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하지 굳이 우리와 함께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기술력이 없는 아이템은 오히려 경쟁자들에게 힌트를 줄 뿐이니까. 이전에 책상머리에서 머리가 지끈거릴 때 본 뉴스가 있다.
‘제가 몇 년 동안 연구해서 만든 아이템인데 계약하기로 한 ●●기업에서 제품의 정밀도와 안정성을 핑계로 도면을 요구했어요. 뭐. 저희 같은 중소기업에서는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일 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계약이 먼저고 생존이 우선이니까. 그런데, 대뜸 몇 주 뒤에 ●●기업에서 자체적인 자금문제를 핑계로 계약을 철회하더니 6개월 만에 같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의 이목을 끈 사건은 지리한 싸움이 지속되며 계속해서 법적공방이 오갔다고 들었다. 법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받으면 끝날 일인 줄 알았지만 댓글들의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진짜 썩어 문드러질 인간들. 저런 도둑놈들 때문에 나라가 발전이 없지.’
‘손해배상받으면 뭐 하냐고. 이미 저 대표는 회복이 불가능할 텐데.’
‘갑질을 하고 도둑질을 한 놈들은 그 이상의 손해배상을 줘야 한다. 애꿎은 개발자만 새되고 저게 뭐냐?’
‘어차피 법은 돈 많은 사람 따라가게 되어있음. 절대 변하지 않음.’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대표를 위해 함께 울분을 토해주었지만, 그 누구도 그 대표를 위해 헌금을 하거나 적선을 하는 일은 없었다. 준범형님의 차가운 말은 어쩌면 현실에 비해서는 굉장히 따뜻한 온도였을 것이다.
“흠... 그래도 포기하기는 아쉬운데...”
“그러니깐요. 은진님은 만약에 체인점을 직영점을 낸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사실, 그렇게 자리가 좋은 느낌은 아니죠. 일단, 메뉴의 퀄리티를 잘 조절할 수 있을 지도 고민이고. 이런 빈집을 사람들이 올 만한 카페로 바꾸려면 인테리어도 수억은 나갈 거예요. 그리고, 현지 카페를 운영하는 인력까지 고려하면... 사실, 제가 내려오지 않는다면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는 하죠.”
“그렇긴 하겠구나.”
“그래도... 만약에 그만큼의 손님이 온다는 게 보장된다면 한 번 도전해 볼 만한? 그런 생각은 들긴 하네요. 결국, 또 돈이긴 하네요.”
우로보로스의 고리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계속해서 머리를 짜내고 짜내도 결국 돈이라는 원점에 빠지고 말았다. 돈을 벌 수 없는 사업은 사실상 가치가 없어 보였다. 몇 년 동안 책상머리에 앉아 돈머리가 빠르지 않은 내게 물어봐도 그 답은 자명했다. 돈이 되지 않는 사업에 투자를 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돈이 되는 사업을 만드는 것은 어려웠지만,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을 구상하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열에 아홉이 망하고 살아남은 하나도 오래도록 생존하지 못하는 것이 시장바닥의 차가운 현실이니까. 뉴스를 틀 때마다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의 말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이번 하반기 역대 최저 취업률이...’
‘IMF 이후 가장 저조한 경제성장룰이...’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대한민국 출산율이 올해 최저...’
매년 세상이 폭파되는 듯한 소식만이 뉴스를 통해 흘러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슬픈 소식들만 줄줄이 흘러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세상이 그런 것 같았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힘이 빠지며 발이 닿지 않는 저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그 무력한 느낌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한, 두 문제 차이로 떨어지며 매번 낙방하는 시험. 노력해도 메워지지 않는 한, 두 문제의 벽. 1,2년 공부하고도 쉽게 쉽게 붙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수년을 공부하고도 떨어지는 이들이 있었다. 공시뿐 아니라 수능도 마찬가지고 공모나 입찰, 사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노력을 게을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지, 보이지도 않는 수많은 경쟁에 밀려 쓰러졌을 뿐. 사업을 실제로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필드에서 답답한 체기가 가득한 입김을 내뿜는 소상공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하아... 머리 아프네요. 사람이 몰리면 자연히 돈은 흐르고, 돈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이니까. 그런데, 돈을 어떻게 흐르게 하는지가 참...”
밤이 된 제주도 해안은 한 번씩 눈이 부실정도로 밝은 별들이 바다에 떠있을 때가 있다. 빛을 좋아하는 오징어들이 배에서 발광하는 빛들을 보고 득달같이 달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빛을 사랑한 오징어들은 결국 어부들의 그물에 걸려 우리들의 밥상 위에 올라오고는 한다. 오징어가 빛을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