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중지와(海中之蛙) - 바다에 빠진 개구리

윤슬 上

by 심색필 SSF


“하아... 그래도 뭐 완성은 하긴 했네요.”

“그러게요.”


지난 10일 동안 우리는 정말 한 팀이 된 것처럼 붙어 다녔다. 은진님은 중간중간 카페업무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밤을 새워가며 함께 일을 도와줬다. 몇몇 팀들은 해만 지면 삼삼오오 모여 공짜 맥주파티를 즐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어째서인지 우리 팀은 그래도 이 프로젝트에 대해 진심인 듯했다.


“와... 진짜 열심히 하네요.”

“이거 모 공모제안사업이 뜬 건가? 왜 이렇게들 열심히 하시지?”

“저희도 같이 한 번 얘기해 봐요. 재밌을 것 같은데.”

맥주를 마시며 자신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결과발표 시간이 다가오자 프로젝트에 혼을 쏟는 우리들의 모습에 조금씩 관심을 가졌다. 사실,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한 나조차도 밤이 되면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면서 어울리고 싶었다.


“어.. 그럼 나중에 한 번 전주 놀려와. 우리 안 그래도 새로 직원 필요했는데 한 번 얘기해 보자.”

“그럼요. 서울 올라가자마자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주최기관에서 내려준 창직이라는 단어를 자기식대로 풀어내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우리처럼 프로젝트에 진심을 보이는 사람들만 있지는 않았다. 맥주를 한 잔 마시면서 자신들이 필요한 퍼즐을 서로 맞춰나가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당장에 필요한 인력과 일자리를 서로 교환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재창업을 원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기존에 창업을 하는 사람들의 사업 중 지부를 담당하기로 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미, 밤마다 마시는 맥주파티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그 성과를 이룬 것 같기도 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혼자 취창업 캠프라는 2주의 시간 중 대부분을 잘못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 번 추진력을 가진 프로젝트의 관성은 속도를 멈출 줄 모르고 그대로 전진했다.

“재영님. 파이팅!”

“네... 네.”


발표는 내가 맡게 되었다. 발표라니. 대학교 때 팀플에서 억지로 한 번 나가본 이후에 처음이었다. 심지어, 그때 발표할 때도 벌벌거렸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등 떠밀려 발표를 하게 되었는지 참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도 재영님이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내셨으니까 재영님이 발표를 하시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재영님이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가장 많이 인볼브(Involve)하시기도 했고, 가장 프로젝트에 진심이기도 했으니깐요.”


다들 열의를 불태운 10일이었다. 제주도 방방곡곡을 다니며 자료를 모았고, 시청과 도청을 오가며 데이터들을 수집했다. 아직 직장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하나같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함께 동고동락해 준 사람들과의 결과를 사람들 앞에서 선보일 시간이었다. 내가 발표하는 도중에 실수를 하게 되면, 지난날의 10일에 스크래치가 나는 상황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사람이 떠나간 빈집에 사람을 모으겠습니다. 빈집 살리기 프로젝트 ‘윤슬’을 발표하게 된 이재영입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윤슬이었다. 햇빛이 잔물결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을 순우리말로 윤슬이라고 칭했다. 배낚시를 갔다가 흐드러진 파도에 비치는 햇빛에 마음을 뺏겨 여유를 즐기다 제주의 빈집을 찾은 것도 있었지만, 지난날 ‘창직’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우리 모습이 반짝거리는 것에 매혹되어 바닷물결에 비친 햇살만을 보고 뒤도 보지 않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 대책 없이 이걸 해결하면 돈이 따라 들어오겠지. 이런 걸 제공하면 돈이 벌리겠지. 이런 얄팍한 생각으로 우리는 수심이 얼마나 깊은지도 확인하지 않고 바다에 빠지고는 했다. 그리고, 바다 밑에 무엇이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한 채 숨이 다 할 때까지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후회하고 끝이 보이지도 않는 어두컴컴한 심해로 우리 스스로를 빠뜨리고 말았다. 공시를 우습게 보고 무작정 달려들었던 과거의 나도 그랬고, 사업을 우습게 보고 함부로 덤벼들었다가 감당하지 못하는 빚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또한 그럴 것이다.


-짝. 짝. 짝. 짝. 짝. 짝.-


“네. 발표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노력한 것에 비해서 생각보다 결과물이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확하게 빈집을 활용해서 뭘 하신다는 거죠?”

“네. 저희는 자체적인 콘텐츠를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빈집을 활용해 새로운 사업을 하고자 하는 분들께 보다 나은 컨설팅과 매칭 서비스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서비스를 구축하는 데는 법률적인 부분과 함께, 세대주와 토지주에 대한 확인이 가능하여야 합니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빈집들에 대한 데이터를 전부 조사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빈집을 예비창업가들과 매칭을 한다는 것이죠?”

“세대주와 토지주에 명확한 대상이 명시되어 있는 가구들만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해당 부분을 모두 찾기는 힘들 텐데요.”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해당 사업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왜 이런 프로젝트를 제의한 거죠?”

“지금 이곳에 있는 분들 중 누군가는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져줄 것 같았습니다.”


산에서 농사를 짓는 화전민에게 끝을 알 수 없는 바다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물질을 하는 해녀의 입장에서는 바다는 생명의 터전이기도 하다. 물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해녀들에게 있어서도 바다는 무서운 곳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해녀체험을 하면서도 죽을 둥 살 둥 했던 깊이의 바다는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놀이터보다 귀여운 공간일 것이다. 매일 같이 잠수를 하는 해녀뿐 아니라, 심심풀이와 취미생활로 다이빙을 즐기는 프리다이버들에게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감히 행할 수 없는 프로젝트이지만, 누군가에게 있어서 우리 프로젝트는 사실 그 시장성이 하찮을 정도로 미미한 것일 가능성이 컸다.


“본인들도 하지 않을 사업을 다른 사람들이 할 것 같나요?”

“안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왜 이런 발표를 진행하신 거죠?”

“턴키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이곳에 나와 발표를 했습니다.”

“턴키요?”

“네.”


사실,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정말 여러 난항들을 겪었지만 이 사업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준범형님의 인복 덕분이었다.


“말했지. 이 집이 고등어 회는 진짜 대한민국 일미(一味)라니까.”

“와. 형. 진짜 맛있다.”

“그래. 많이 먹어. 그 친구분들도 같이 드세요.”


정답이 없이 계속 돌고 도는 돈의 뫼비우스의 띠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는 차라리 하루를 통으로 쉬고 노는 것을 결정했다. 한 번쯤을 식혀줘야 또 뜨겁게 달아오를 수 있다며. 마침 날은 미치도록 맑았고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는 구름이 걷힌 파란 하늘아래 자리 잡은 한라산을 마주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마치 영물처럼 표현하기도 한 맑은 날의 한라산을 보자 해안도로를 달리자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다 함께 산으로 향했다. 한창의 무더위는 지나갔지만 아직 선선한 바람이 불지는 않는 그런 날씨였다. 습하기는 꽉 막힌 다섯 평짜리 원룸 안에 최대출력으로 가습기를 틀어놓은 듯했고, 우리는 영실이라는 코스를 선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와... 너무 힘든데.”

“그래도 백두산 다음으로 높은 산인데 녹록치 않지.”

“하아... 그러네요.”


매일 책상에만 앉아있다가 오랜만에 산을 타서 그런지 너무 힘들었다. 갑자기 산을 타자고 한 준범형님도 이 의견에 지체 없이 산을 타자고 한 은진님과 윤지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한참을 오르고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듯했지만,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자 엄청난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아... 힘들어 죽겠는데 그 와중에 이쁘네.”


인정하기 싫었지만 너무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왜 한라산을 꼭 한 번 타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맑은 날에 한라산 위에서 보는 절경은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바다에 비치는 윤슬은 배위에서나 해안도로를 타며 바라보는 윤슬과는 그 사이즈부터 남달랐다. 가히 압도적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산 정상 위를 오르고 나서야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윤슬이 어디까지 뻗쳐나갈 수 있는지 깨달았다. 단순히, 달랑거리는 조각배를 타고 눈앞의 물고기를 낚기 위해 응시했던 바다의 윤슬과는 그 기개부터가 달랐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자체가 너무 미시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저녁에 준범형님의 지인부부를 만나면서 완전해졌다.


“아.. 진짜 요즘은 그런 사업도 지원을 해주는구나.”

“생각보다 재밌어요. 다른 사람들 생각도 한 번 알아볼 수 있고.”

“그래서 준범이랑 같이 온 일행분들 아이디어는 뭐예요?”

준범형님의 지인부부는 윤지와 준범형님이 빈집에 대한 정보를 얻을 때 우리를 도와준 시청 직원분들이었다. 두 분 다 준범형님한테 한때 보컬 트레이닝을 배우며 함께 공연을 올렸다고 했다. 그 이후로 무대에서 두 분이 눈이 맞아 결혼을 했고, 아직도 준범형님은 그 덕분에 제주에 올 때마다 술과 회를 얻어먹는다고 했다. 인복이 일방적일 수만은 없는 듯했다.


“야. 준범아. 이거 좀 미안한 얘기지만 그 아이템 나중에 우리랑 한 번 얘기해도 될까?”

“뭐. 이게 제 아이디어라기보다는 여기 있는 이 친구 아이디어가 대부분이라서.”

“아. 잔짜요? 대단하시네요. 이런 생각을 하시다니.”

매일같이 골머리를 싸매며 어떻게 해야 사업이 완성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이게 맞는 건지 틀린 지도 모르고 꽁꽁 묶인 매듭처럼 풀리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시청에서 일하고 있는 형님의 눈에는 너무나 쉬운 문제였다. 살짝만 잡아당겨도 모든 문제가 풀리는 매듭을 가지고 우리는 며칠밤을 지새고 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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