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 中
“현재 제주시에서 해당 프로젝트를 공모사업으로 연결하는 것을 고민 중에 있습니다.”
“흠... 규모는 어떻게 되죠?”
“아직 정확한 입찰규모는 나오지는 않아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최소 2억은 넘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2억이라는 구체적인 금액에 사람들은 웅성이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 정확하게 나온 수치는 아니었지만 준범형님이 말한 예상규모 3억에서 조금 낮춰 얘기했다. 2억이라는 돈이면 기업들은 아닐지라도 꽤나 많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들이 군침을 흘릴만한 규모의 금액이었다. 대형펀드를 굴리는 투자자들이나 기관에서는 참치잡이배가 아니면 투자하지 않겠지만, 사실 이런 프로젝트는 규모가 작은 배낚시 체험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초기창업 기관에서는 꽤나 좋아할 만한 사업이었다.
“하아... 그럼 저희 발표의 타겟은 결국 이 프로젝트를 뒤에서 참관하고 있는 취창업 프로그램 주관기관이라는 거네요?”
“네. 맞아요. 사실, 조합이나 단체 쪽에서 너무 좋아할 만한 내용이라서 아마 이 내용을 기관에서 쓰고 싶어 할 거예요. 시청과 도청이라는 커넥션도 생길 수 있고 제주에서 소상공인들과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기관이라면 원양어선이 아니라 조그만 통통배도 시야에서 놓쳐서는 안 되니까요.”
필리핀의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일하며 소셜벤처와 지역에서 자리 잡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24시간 따라다닌 윤지님의 시야는 오래도록 사업에 잔뼈가 굵은 은지님과 준범형님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윤지님 말이 꽤 타당성이 있는데?”
“그래도 버젓이 심사위원들이 있는데 굳이 타겟을 뒤에 있는 기관들에 맞출 필요가 있나요?”
지역에서 개최되는 창업경진대회와 국가지원사업에 많이 참여해 본 은진님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입을 열었지만, 생각보다 윤지님의 말에 확신이 있어 보였다.
“어차피, 저희 심사위원 누가 나오는지도 모르잖아요. 사실, 심사위원들이 우리 아이템을 좋아할지라도 그 뒤에 뭐가 따라오는지는 불분명해요. 투자를 해준다는 보장도 없고, 다른 프로그램에 연결시켜 준다는 보장도 없고요. 그런데, 뒤에 있는 저 사람들은 타겟이 확실해요. 제주에 뿌리를 내리려는 기관과 도청과 시청 사람들. 아마, 이런 프로그램 보면 먼저 구미를 당겨할걸요?”
“그렇긴 한데...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단두대 처형식 아닌가요?”
“분명 심사위원 중에서 빌런이 있을 거예요. 그때, 기세에서 밀리지만 않으면 생각보다 강한 인상을 줄 수 있을 거예요.”
“빌런이요?”
“왜 있잖아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면접씬에서 꼭 까탈스럽거나 이상한 질문해서 사람들 압박하는 사람들.”
윤지님은 조만간 점집을 열어도 될 것 같았다. 언젠가 바비큐파티와 맥주파티에서 한 번 들은 것 같았다. 윤지님이 일하던 협동조합에서는 해외체류 프로그램을 많이 지원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평상시에 착하던 이사님들이 꼭 이상한 질문을 하며 면접자들을 괴롭힌다고 했는데, 그때 그 모습을 봤던 경험들이 고스란히 현재에 녹아든 것 같았다.
“제가 이런 말 잘 안 하기는 하는데... 이게 진짜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신가요?”
“네.”
“아니. 너무 그렇게 성의 없게 대답하지 마시고요. 왜 이게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모르시겠지만 백 퍼센트 확신이 있어도 차가운 시장은 사장님의 열정에 그렇게 녹록하게 길을 내주지 않거든요. 혹여나, 무턱대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발표자가 다칠까 봐 질문드리는 겁니다. 발표를 들으니 명확한 아이템은 없고 그냥 잘 나가는 사업가들 따라하는 사업놀이 같아서요.”
단순한 프로젝트였고, 아직 해당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말도 안 했음에도 날이 선 비판이 날아들었다. 사실, 비판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을 어떻게든 깔아뭉개려는 순수한 비난에 가까웠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빌런들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로 무례했다. 남들을 까내리면서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인간들. 본능적으로 저런 인간들은 멀리하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윤지님의 말을 듣고 나서인지 그냥 저 오만한 두꺼비를 사람들 앞에서 눌러줘야겠다는 전의가 불타올랐다.
“혹시 낚시 가보신 적 있으십니까?”
“이상한 얘기하지 마시고 질문에 답해주세요.”
“뭐. 없으신 것 같으니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다를 나가는 어부들 중에 만선을 꿈꾸지 않고 나가는 어부들은 없습니다. 그런 선장님들께 오늘 만선이 될 것 같냐고 물어본다면 바다가 정해주는 대로 가져온다는 말씀을 하곤 하시죠. 그러나, 만선을 생각지도 않고 바다를 나가는 선장은 절대 물고기를 건져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성공이라는 의욕 없이 사업을 시작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창업가는 없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단순히, 리스크가 두려워서 사업을 하지 않는 사업가는 절대 성공을 못 하겠죠.”
“사업가는 혼자 망하면 되지만, 해당 사업은 투자자들의 돈이 달려있습니다. 투자자들과 주주들의 안전을 기약하지 않는다면 누가 사장님의 사업에 합류할까요? 배가 언제 난파될지 모르는 데 어떤 사람들이 사장님의 배에 탈까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목전에 욕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이런 식으로 싸움을 걸 듯이 질의를 하는 것이 이 바닥의 예의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냥 한 번 내지르고 싶었다. 그 오랜 시간을 책상에만 앉아서 소리 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자리에서 스러져버렸다.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조그만 불씨라도 다시 한번 힘겹게 살려서 세상에 소리치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속에 있는 말을 했다.
“그런 분들은 안전한 배를 타시면 됩니다.”
“네?”
“참치를 잡으러 가는 원양어선에 타면서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냐는 말을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질문은 없습니다. 안전하고 확실한 회수를 원하시면 육지 인근에 정박하고 체험으로 낚시하는 배낚시 타시면 됩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수많은 투자자들이 낚싯배 따위에 투자하려고 이곳에 오신 줄 아세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초기 단계지만 튼튼하고 비싼 물고기들을 낚는 배를 찾으려고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는 겁니다.”
“그런 배가 왜 생판 모르는 투자자를 태워줄까요? 초기단계지만 튼튼하고 기술력이 좋으며 비싼 어종의 물고기를 끝도 없이 건져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가진 사장님이 왜 투자자들과 함께 뜻을 가져가려고 하겠습니까? 그냥 자기가 다 먹으면 되죠. 사업자들에게 높은 레벨의 능력을 원하면서 정작 투자자분들은 안전한 배팅을 하고 싶다는 것 자체가 진짜 투자놀이 아닐까요?”
-툭. 툭.-
-위이이잉.-
“질의 시간이 살짝 과열된 것 같은데요. 지금 질의 시간이 다 되어서 다른 심사위원불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다른 심사위원분들은 또 질문 있으실까요?”
후끈하다 못해 얼굴이 뜨거워지는 심사자리를 두고 사회자님이 질의를 무마시켰다. 나도 모르게 선을 조금 넘은 것인가 생각을 했지만, 정말 시원했다. 미치도록 더운 한 여름날에 살얼음이 둥둥 떠있는 냉면육수를 시원하게 들이켠 느낌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더 이상 내게 질의하지 않았다. 단상을 내려오며 무례한 질문을 쏟아내던 심사위원의 표정을 보니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했다. 정말 못된 악당을 무찌른 것 같았다.
“고생했어요.”
“재영아. 진짜 잘했다.”
“오빠. 진짜 짱이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본 질의응답 중에 최고였어요.”
팅원들의 찬사를 넘어 내 질의를 본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처음으로 기관장과 도청사람들의 명함까지 받으며 사람들과의 인사를 나눠갔다. 뒤 순서에 아직까지 발표자들이 남아있었지만 계속해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반응에 사회자가 잡담을 멈춰달라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세상은 냉정했던 것인가? 우리는 오래도록 준비했던 경진대회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행사가 모두 끝난 뒤에 나와 한바탕 불을 쏘아대던 심사위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을 나갔고, 다른 심사위원들과는 그래도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작별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