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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염부 Feb 23. 2022

이제는 패키지가 좋아질 나이

운전면허 취득 역시, 돈 내면 편합니다...예...

그리하여 2022년 1분기 목표는 '2종 운전면허 따고 직접 운전해서 20분 거리인 대형마트 지하주차장까지 갔다오기'가 되었습니다. 변태적으로 구체적이라고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저렇게 단서를 철저하게 달아두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걸어서) 갔다 왔으니 목표 달성. (아빠가) 운전했으니 목표 달성. 이렇게 미래의 제가 온갖 빈틈을 비집고 마음대로 '했다 쳐!'를 시전해버리거든요. 3개월 안에 만족할 수준까지 운전실력을 늘리려면, 먼 훗날 자신을 원망하더라도 철저해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저는 면허시험장을 이용할지, 학원을 갈지를 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면허시험장을 이용하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모셔줍니다. 공장에서 바로 물건을 구입하는 느낌이랄까요? 학원에 들이는 수업료나 각종 시설 이용 비용이 제외되고 시험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합니다. 어디서 듣기로는 최소한의 비용만 낸다면 15만 원이 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연습이 제한되기 때문에 한 번에 합격할 확률은 낮습니다. 재시험을 볼 때마다 비용도 시간도 차곡차곡 쌓이죠.


학원은 비싸지만 면허를 따기 위한 교육과 시험을 원스톱으로 관리해줍니다. 보조석 브레이크가 달린 연수용 노란 차도 있어 인프라도 갖췄습니다. 요즘은 좌석과 3개의 모니터로 가상공간에서 연습을 돕는 스크린 운전학원도 있다고 합니다만, 제가 아직 그런 거에 신뢰가 부족한 옛날 사람이라서요... 실제로 운전하는 경험과의 괴리는 최대한 줄이고 싶었습니다. 그런고로, 운전 까막눈인 저는 운전전문학원*의 '단기 올라운드 논스톱 2종 보통 면허 취득[합격 완전 보장반]'을 선택했습니다. 이제 슬슬 배낭여행보다 패키지여행에 끌리는 나이... 모험은 충분히 해봤고 살아가며 신경 쓸 일이 하나둘 씩 늘어나다 보니, 뭐든 패키지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언젠가 다시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다면 그때는 패키지로 가보고 싶기도 합니다.


A: 집에서 제일 가깝다. 리뷰도 좋다. 다만 한 강사에 대한 감사가 유독 많았다. 강사가...한 분인가? 왜 이 분만 유독...?

B: 10년 전에 등록했던 곳이다. 운전면허 취득에 실패했던 곳이라서 다시 가고 싶지 않다.

C: 가장 후기가 없다.

D: 거리상 집에서 제일 멀다. 리뷰마다 학원 측에서 코멘터리 한 장문 댓글이 독보적이다.


자, 여기 4개의 운전전문학원이 있습니다. 그대라면 어느 곳을 고르시겠어요? 가격이야 다 고만고만 하니 비슷했습니다. 10년 전과는 다르게 시설도 모두 깔끔하게 관리하는 것 같더군요. 저는 리뷰가 없어 오히려 고고해 보이는 C와 나 제법 친절해요가 듬뿍 묻어 나오는 D를 고민했습니다만, 최종 결정은 홈페이지에서 갈렸습니다. D는 인터넷으로 상담 신청을 남길 수 있었거든요. 알바까지 포함하면 사회생활 1n년차지만 여전히 전화는 무섭습니다. 역시, IT 강국이라면 면허학원 신청도 인터넷으로 해야죠!


제 상담 신청을 본 학원은 다음날 문자를 보냈습니다. 전화가 아닌 문자라니! 새삼 학원 하나는 잘 골랐다는 생각에 뿌듯해집니다. 필기시험을 보기 위해선 면허시험에 신청해야 하고, 날짜를 잡으면 연락 달라는 문자였습니다. 수강생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더 많은 수강생을 소화해내어 학원에 들인 인력과 물적 자원을 낭비하지 않기 위하여! 필기시험 보는 날 오전에 3시간 교육을 속성으로 끝내고 오후에 다 같이 면허시험장으로 가 시험을 보는 스케줄이 예정되어 있다는 안내도 함께였습니다.


안전운전 통합민원 사이트의 학과시험 방문시간 예약 화면. 모바일이 더 편했던 거 같아요.


모르는 개인 번호로도 장문의 문자가 왔습니다. D운전전문학원 원장 누구이며 반말을 하는 강사, 성희롱하는 강사 등이 있다면 이 번호로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죠. 여기서는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고 좌절과 용기가 교차되고)렸습니다.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시스템(다르게 말하면 고발 창구)이 있으니까 어지간하면 나쁜 일은 생기지 않겠다는 안도가 한 차례 숨을 내쉬게 해 주었고, 한편으로는 몇 개의 글자로 이루어진 사유들이 적어도 국내 어딘가에서는 일어났던 일이었으라라는, 그것이 이 문자가 시작되게 만든 뿌리가 되어 주었을 거라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한 번 더 숨을 깊게 내뱉게 했습니다.


각설하고, 제가 학원에 방문하는 날은 문자를 받은 그다음 주 월요일이었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죠. 아, 뿔에 충치가 생기는 것도 아닐 텐데 뭐하러 불쌍한 소의 뿔을 뽑아버리나 잠깐 생각해봅니다. 쇠는 단번에 벼리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야겠습니다. 여하튼 그런 의미로다가 바로 평일에 연차를 내고 필기시험도 예약했습니다. 반명함판 사진도 몇 장 들고 오라는데 그거야 주말에 대충 가까운 사진관에 가서 찍으면 뚝딱이죠. 이제 정말 다시 운전대를 잡아볼 날이 머지않았네요. 아직 치러야 할 시험이 3개나 남았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운전면허증이 손에 잡히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 걸까요?



*운전전문학원으로 가야지 학과 기능시험과 도로주행시험을 학원에서 치를 수 있습니다. 그냥 운전학원은 시험 보러 면허시험장까지 또 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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