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 시험으로 기본기 익히기
처음 운전석에 앉아 이것저것 만져보던 순간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손에 직접 닿는 건 플라스틱이었겠지만, 긴장도 하고 겨울이라서 더욱 차디 찬 쇳덩이같이 느껴졌지요. 오늘은 기능 수업과 시험을 연달아 진행하는 날. 학원에 도착해 기다리자 곧 강사님이 오셨습니다.
"오늘 배울 학생? 시험까지 한번에 보고 가지요? 차 가져올 테니까 부르면 나오세요. 아 출석 체크도 해두고."
엉거주춤 일어나 인사하자, 할 말을 빠르게 하시곤 얼굴 익힐 새도 없이 사라지는 강사님. 성격이 급한 분인가 싶어 어리바리한 상태에서 가르침을 잘 받을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곧이어 이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니 온통 학원 이름으로 도배된 노란 승용차 여러 대와 강사 여러 명이 보입니다. 그중 한 강사님이 쳐다보는 시선이 유독 강렬하네요. 저분이 아까 그 강사님인가 봅니다.
"자, 운전석에 타시고, 의자 조절하고, 안전벨트 매고."
어라, 먼저 시범을 보여주실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제 자리는 운전석입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는데 말이죠. 지시대로 하나씩 시도해봅니다. 운전석에 앉는 건? 쉽죠. 의자를 조절하는 건? 어떻게 앉아야 조절이 된 상태인 걸까요? 페달을 밟기 편하게 앞으로 쭉 뺀 상태? 자동차 앞 코가 잘 보이도록 의자 각도를 세운 상태? 영 어렵습니다. 게다가 거울도 확인해보라는데... 이리저리 움직여보다가 결국은 자신감 쫙 뺀 목소리로 "다 된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제 커스텀 설정이 이상하면 알려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요. 그러나 별다른 피드백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상태로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을 켜게 됩니다. (운전 팁: 이렇게 맞추면 된다고 하네요)
"키 돌려서 시동 켜세요."
"-...그냥요? 브레이크 안 밟아도 돼요?"
"..."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릅니다. 시동 걸면, 차가 바로 움직이는 거 아니었나요?
"학생, 되게 조심스러운 성격인가 보네요. 보통은 그냥 걸어버리거든. 맞아요, 브레이크 밟는 편이 안전해. 기능 시험 볼 때도 잘 밟아두세요. 오늘 옆에서 잘 봐줄 테니까 자신감 갖고 해 보세요. 그러려고 내가 옆에 타는 거니까. 운전은 너무 조심스러워도 하기 힘들어. 걱정하지 말고, 자, 시동."
반말과 존대가 섞인 조곤조곤한 말씨에, 그러려고 자신이 옆에 타는 거라는 멘트의 조합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냅다 시동을 걸면 안 된다는 걸 알려주려는 큰 그림을 그렸던 건지, 아니면 그냥 깜빡하신 건지는 모르겠만 덕분에 그날 강의는 정석대로 잘 받았던 듯합니다. 시험 요령을 알려주는 꼼수 강의가 아니라, 원리와 출제 의도를 알려주는 강의 같았달까요?
강사님은 조수석에 앉아서 시동걸기, 기어 바꾸기, 방향지시등과 비상등 켜는 법을 하나씩 소개해주었고, 바로 차를 움직이게 하고는 기능 시험 코스를 하나씩 알려주었습니다. 기어를 D(주행)에 두고는, 엑셀 한 번 밟지 않은 채로 평지부터 슬슬슬. 신호에 걸리면 브레이크를 살살 밟고, 언덕이 나오면 엑셀을 조심스럽게 눌러 올라갑니다. 회전할 때는 그 방향으로 깜빡이를 켜고, 비상 상황 알람이 울리면 멈춘 뒤 비상등을 켜야 하죠. 손과 발이 바쁘게 움직이고, 눈은 쉴 틈이 없으며, 귀도 들리는 모든 소리를 경청하느라 바쁩니다.
정신없던 와중에 문득 알파벳과 파닉스를 익혔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C는 /k/, A는 /æ/, T는 /t/. 알파벳이 가진 소리값을 익혀서 영어를 말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이었죠. 장내기능시험을 위한 운전 연습도 일종의 파닉스가 아닐까요?
시동을 켜면 /부르르릉/.
엑셀을 밝으면 /우우웅/.
기어를 바꿀 땐 /탁 타탁 탁/!
방향지시등을 켜면 /똑딱똑딱/...
내 행동 하나에 이 거대한 차가 다양한 소리를 내며 의도한 방향으로 움직여줍니다. 속도가 변하면 바퀴가 도로를 스치는 소리의 높낮이가 변하며 멜로디가 생기고, 기어는 큰 북처럼 존재감이 뚜렷하죠. 일정한 소리를 내는 방향지시등은 마치 메트로놈같이 뭐예요! 투박한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긴장이 완전히 풀립니다. 피아노처럼 실수하지 않으면 통제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강사님도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는지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불합격 사례로 설명하는 감점 요인 안내, 기어의 알파벳이 어떤 단어에서 왔는지 같은 교양을 채워주는 썰, 은퇴하고 다녀왔던 유럽여행 이야기까지... 말이죠.
2번의 수업과 쉬는 시간을 갖고 드디어 마지막 수업 시간. 이번엔 혼자 다니며 코스 연습을 해보라면서 강사님이 내려버리셨습니다. 오늘 옆에서 잘 봐주겠다는 그 멘트는 어찌 된 일인가요.
초대되지 않은 무도회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어색하기 그지없지만, 차근차근 조작법을 몸에 익힙니다. 강사님이 없어도 꽤 할만해서 신이 나기도 하고, 이러다 한순간 사고 내는 거 아닌가 싶어 불안함도 공존했지만, 무사히 두 바퀴를 돌았습니다. 혼자 해냈다는 자신감 덕분일까요, 시험도 긴장하지 않고 합격했지요. 목적을 달성한 저도 해피, 마지막 시간을 밖에서 여유롭게 지낸 강사님도 해피. 어쨌든 해피 엔딩입니다.
이제, 도로주행 연습과 시험이 남았습니다. 남은 기간은 1년, 그러나 저에겐 당장 면허를 따야 하는 이유가 있었죠. 결심했습니다, 명절 연휴를 틈타 3일 연속으로 연습하고 마지막 날 바로 시험을 보기로 말이죠.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