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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향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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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maflower Feb 09. 2019

딥티크 오데썽

우리의 감각을 지배하는 특별한 향


'니치 향수'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회사 입사 후 2,3년 차쯤 되었을 때다. 2008년 딥티크를 시작으로 펜할리곤스, 조 말론, 르 라보, 아닉 구딸 등의 니치 향수들이 연이어 국내에 출시되며 전에 없던 고가 향수 시장이 형성되었다.


니치 향수는 연예인 향수로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곧 기성 향수의 몇 배가 넘는 높은 가격이 화제가 되었다. 향수를 좋아하던 나조차 향수에 그 정도의 가격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회의적이었는데, 놀랍게도 니치 향수는 '니치(틈새의)'라는 수식어처럼, 빠르게 소비자들의 일상 속 틈새를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본래 니치 향수는 아주 소수의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브랜드 정체성이 확실한 고급 향수들을 일컬었다. 그런데 조금씩 유명세를 타면서 꼴레뜨, 10 꼬르소꼬모와 같은 편집샵을 통해 조금씩 유통망이 넓어졌고,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 LVMH, 에스티 로더 등의 대형 회사들이 니치 향수 브랜드를 대거 인수하며 순식간에 전 세계 백화점에 매장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제는 니치라고 부르기가 어색할 만큼 대중화가 된 지금도, 여전히 니치 향수 시장은 매해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 병의 향수를 위해 많게는 이, 삼십만 원을 지불할 만큼, 소비자에게 니치 향수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니치 향수들 (이미지 출처: casaliving.co.kr)


향수를 한창 즐겨 쓰던 20대 초반, 그 나이 때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당시 향수란 원래 그런 것이었는지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향수는 언제나 나, 그리고 동시에 타인을 위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남들이 싫어하는 향수를 굳이 나만을 위해 사용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당시 향수는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타인에게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향수를 뿌리면서 광고 포스터 속 모델이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우아한, 혹은 섹시한 이미지를 빌려 입었고, 매년 잡지에서 선정하는 '이성이 좋아하는 향수 TOP 10' 안에 드는 향수 한 두 개쯤은 꼭 갖고 있어야 했다. 향수를 좋아하는 또 다른 친구가 '어머 너 무슨 무슨 향수 뿌렸구나!' 하고 알아봐 줄 수 있는, 그런 트렌디하고 유명한 향수가 아니면 굳이 지갑을 열지 않았다.


모델들을 앞세운 인기 향수들의 광고


30대가 되고부터, 남들에게 보여줄 허구의 이미지를 위한 향수는 더 이상 사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언제나 관심이 가는 쪽은 니치 향수다. 내가 맡아서 좋고 편안한 향, 나도 몰랐던 감정을 강하게 불러 일으키는 그런 특별한 향을 찾게 된다.


내가 니치 향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향을 해석하는 것이 언제나 나의 몫이라는 것 때문이다. 니치 향수들그저 자신이 해야하는 이야기를 향으로 들려줄 뿐, 결코 정형화된 이미지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그대로의 모습이 향과 만날 때 진짜 나만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처럼 향수에 대한 인식이 변한 것은 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소비자들 역시, 향 자체보다 패키지, 광고 등 향수의 시각적 이미지를 소비하는 현실에 회의감을 느꼈을 것이고, 트렌드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따르라니치 향수의 메시지에 분명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딥티크(Diptyque)는 확고한 정체성을 반세기 넘게 지켜오고 있는 브랜드다. 1961년 패브릭 숍에서 시작해 니치 향수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기까지,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담으려는 창립자들의 노력은 아직까지도 딥티크의 모든 제품에 깃들어 있다.


제품의 가격을 떠나, 브랜드 자체의 이미지에서 비롯되는 고급스러움 때문에 내게도 딥티크는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다. 분위기를 압도하는 블랙 컬러, 향의 이름과 일러스트가 그려진 독특한 타원형 라벨, 무엇보다 진중한 이야기를 늘 매력적인 향으로 풀어내는 향초와 향수 컬렉션을 보고 있으면, 꼭 니치 향수의 팬이 아니더라도 금방 마음을 뺏기고 만다.


2016년 출시된 향수 오데썽(Eau des sens, 감각의 물) 딥티크의 유려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잘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다. 오데썽은 향료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식물 중 하나인 비터 오렌지(Bitter orange) 나무를 주제로 '감각의 혼돈'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터 오렌지 나무는 잎과 가지에서는 쁘띠그랑(Petitgrain) 오일을, 오렌지 과육에서는 비터 오렌지 오일을, 꽃에서는 네롤리(Neroli) 오일과 오렌지 블라썸(Orange blossom) 앱솔루트를 얻을 수 있어 굉장히 활용도가 높은 식물로 손꼽힌다. 그런데 만 하나의 향에, 열매와 잎과 꽃과 뿌리가 동시에 존재한다면 과연 어떤 향이 될까. 


오데썽은 비터 오렌지 나무가 갖고 있는 모든 향을 활용해 우리의 복합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차갑고 싱그러운 향이 뇌세포를 깨우는 한편, 상큼한 오렌지가 침샘을 자극하고, 그와 동시에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피부를 감싼다. 복잡하게 뒤섞인 감각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옵티컬 아트에 영감을 얻은 라벨 디자인이 스토리의 개연성을 더한다.


 

오데썽 디자인 (이미지 출처: diptyqueparis.com)


하지만 오데썽의 향 자체는 감각의 혼돈이라는 스토리를 충분히 전달하면서도 나름의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상큼한 오렌지, 그린하고 싱그러운 쁘띠그랑함께, 씁쓸한 우디 노트가 처음부터 한데 뒤섞이지 서로 겉돌지 않자연스러운 화음처럼 느껴진다.


그 후, 한 순간 오렌지 열매가 줌 아웃 듯 사라지고 동시에 잎과 가지가 클로즈업 다. 살짝 스파이시하지만 여전히 청명한 허벌 그린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잎사귀의 푸르름을 닮았다. 다음으로 오밀조밀 피어있는 새하얀 오렌지 꽃으로 포커스가 옮겨진다. 처음부터 은은하게 부드러운 꽃향을 깔아주던 오렌지 블라썸 노트차분한 모습으로 끝까지 향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따금 드러나는 안젤리카의 스파이시하고 쓸한 캐릭 덕에, 자칫 밋밋할 뻔한 그린 플로럴 향에 한층 입체감이 살아난다.


비누처럼 깨끗한 향에 한없이 마음이 편안해지다가도, 문득 치고 올라오는 알싸함에 코 끝이 얼얼해진다. 혼란스럽지만 그래서 지루하지 않다.  


이처럼 향이라는 것은 잊고 지냈던 나의 이야기를 다시 찾아주고, 한 순간 우리의 모든 감각을 지배하는 특별한 힘을 가졌다. 그래서 우리는 그 특별한 향을 소유하는 대가로 어떤 비용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것이다. 향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니치 향수 매장을 향한 애정어린 발걸음도 계속되지 않을까.






딥티크 오데썽은 비터 오렌지, 오렌지 블라썸, 쥬니퍼베리, 안젤리카, 패츌리 노트를 포함하고 있다. 50ml 1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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