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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maflower Apr 26. 2020

메종 프란시스 커정 바카라 루쥬 540

단 하나의 향을 위한 고민의 시간

붉은 크리스탈이 완성되는 540도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공간, 그 화려하고 빛나는 컬러는 눈 앞에서 볼 수 없지만 그 공간의 향기는 감히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크리스탈 브랜드 바카라(Baccarat)의 탄생 250주년을 맞아 만들어진 특별한 향수, 바카라 루쥬 540(Baccarat Rouge 540) 덕분이다.


 

메종 프란시스 커정 바카라 루쥬 540



24캐럿 골드 파우더가 크리스탈과 만나 붉은빛으로 변하는 540도의 기적. 그 기적의 순간이 조향사 프란시스 커정의 상상력을 만나 향으로 태어났다.


540도의 열기만큼 뜨겁고 강렬한 향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프란시스 커정은 리스탈의 투명함과 단단한 밀도를 향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크리스탈이 바카라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바카라 루쥬 540은 레드 크리스탈이 상징하는 화려함과 열기를 충분히 담으면서도, 크리스탈 표면의 투명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다. 바카라 브랜드와 딱 떨어지는 완벽한 향이다.  



상큼하고 달콤한 블러드 오렌지로 시작한  노트는 설탕의 끈적한 달달함과 함께 살짝 씁쓸한  냄새가 떠오르는 낯선 조합으로 전개된다.


아로마틱(Aromatic) 계열의 전나무, 달콤 쌉쌀하면서 특유의 탁함을 갖고 있는 사프란, 풍성한 자스민 등 다채로운 요소들이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마치 크리스탈에 반사된 형형색색의 빛처럼 눈부시게 빛난다.


따뜻한 부드러움 위로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듯, 시간이 지날수록 우디 앰버(Woody Amber) 진한 잔향 명적인 달콤함과 뒤섞이 바카라의 강렬한 이미지를 떠올리 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하나의 향에 녹여낸다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우아함, 아름다움, 고급스러움..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성질을 눈에 보이지 않는 향으로 표현한다는 , 요즘 들어 어려움을  실감한다.


어떤 소재가 좋을지, 어떤 계열이 가장 적합할지, 어떤 속성(깨끗함, 편안함 아니면 화려함)들이 강조되어야 할지 등등 무수한 선택지가 있는 만큼 향을 만드는 과정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조향사가 의뢰를 받아 새로운 향을 만들 때 이처럼 향 개발의 가이드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브리프(Brief)다. 브랜드, 제품 정보, 타겟 시장/고객과 같은 객관적인 정보부터, 향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 감정 등 의뢰자가 원하는 주요 속성에 대한 모든 정보가 브리프에 담길 수 있다.


예술성과 창의성이 중요한 향수의 경우는 조향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브리프들이 넘친다.


챈들러 (Chandler Burr) 저서 'The Perfect Scent' 의하면, 조향사 칼리스 베커(Calice Becker)에게 전달된 디올 자도르(Dior J’adore)의 브리프는 '스틸레토 힐처럼 섹시하면서 토즈(Tod's) 슈즈처럼 편안한 '라는 단 하나의 문장이었다고 한다. 


 심플하지만 도발적인 문장 하나에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베스트셀러가 탄생한 것이다.



향 브리프 (이미지 출처: https://magazine.moellhausen.com)



이처럼, 글 또는 이미지에 불과했던 브리프가 향으로 탈바꿈해 돌아오 경험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향을 평가할 때면 ‘내가 생각한 이미지를 이런 원료로 이렇게 풀어냈구나’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실망한다. 운 좋게 한 번에 딱 맞는 향을 발견하기도 하고, 수 차례의 개선 작업과 고객 조사를 통한 기호도 검증까지 마친 후 어렵게 최종 향을 결정하기도 한다.


선택받지 못한 향들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창작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작 몇 번의 평가로 향의 가치를 결론짓는 내 일이 때로 가혹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순간의 기쁨을, 더 없는 만족감, 그리고 오랜 여운을 선사하는 향을 만들기 위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오늘도 고민을 거듭한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향에 이런 고민의 시간들이 녹아다.


바카라를 위한 프란시스 커정의 고민은 이토록 황홀하고 아름다운 향이 되어 우리와 만났다. 부디 지금 나의 고민들도 훗날 누군가의 행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면 좋겠다.  





메종 프란시스 커정 바카라 루쥬 540은 자스민, 사프란, 앰버우드, 앰버그리스, 전나무(fir resin), 세다우드 노트를 포함하고 있다. 35ml 18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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