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향수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maflower Jul 12. 2020

레조 드 샤넬 파리-리비에라

누구에게나 특별한 바다가 있다.


최근 강원도의 동해 바다를 자주 찾는다. 바다 전망 숙소들이 많아 꼭 바다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여름이 아니더라도 훌쩍 떠나게 된다. 봄 바다는 봄 바다대로, 겨울 바다는 겨울 바다대로 호텔 침대에 누워 가만히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바다는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같은 바다라도 그 모습과 느낌이 제각각이기에 누구에게나 특별한 바다 따로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부산에서 태어난 나는 특히 바닷가에 추억이 많다.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수영복도 없이 무작정 바다로 뛰어 나 때문에 한 껏 젖은 옷가지를 차에 실어야 했던 아빠의 모습이 생생하고, 성인이 되자마자 친구들과 해운대의 멋진 술집으로 달려가 의기양양 칵테일을 들이던 기억도 난다.



부산 바다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정감 있는 곳이라면, 프랑스 남부의 코트 다쥐르(Côte d'Azur)는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하고 눈부신 기억을 품고 있는 장소다.


스물 세살, 런던 어학연수를 마치고 친구들과 짧은 유럽 여행을 계획했을 때, <로마-파리-제네바-인터라켄>을 가고 싶어한 친구들 사이에서 나 홀로 싸워 파리 대신 니스와 그라스를 쟁취해냈다.


그라스는 들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향수에도 별 관심이 없던 친구들은 내심 속으로 불만이 있었을 텐데, 쪄 죽는 더위의 로마를 떠나 탁 트인 푸른 바다를 품은 니스에 도착했을 때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런 곳에 데려와주어 고맙다는 인사까지 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해변가, 쪽빛 바다라는 뜻답게 새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바다. 그 위에 찬란히 부서지햇빛을 어떻게 평생 잊을 수 있을까. 그라스의 향수 박물관 투어만큼이나 큰 감동을 준 니스의 바다는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하고 눈부신 날의 휴양을 꿈꾸게 한다.



그로부터 6년 뒤에는 허니문으로 서부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떠나면서 9박 10일 동안 지중해의 바다들을 원 없이 보았다. 선실에서 테라스로 나가면 코 앞에 파도가 출렁거렸고 바다의 끝이 어디인지, 바다와 하늘의 경계는 어디인지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해가 뜨고 지는 평범한 일 조차 너무나 경이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배가 로마, 피렌체를 거쳐 마르세유에 정박했을 때는 니스에서의 추억까지 더해져 행복감 절정에 달했다. 아기자기하고 고즈넉한 도시 풍경과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아름다운 해변, 시원한 바다 냄새에 더군다나 허니문의 로맨스까지. 더 바랄 것이 없는 완벽한 코트 다쥐르.



향기가 기억에 직접 닿을 수 있다는  두 말할 나위가 없듯, 레조 드 샤넬(Les Eaux de Chanel) 컬렉션의 네 번째 향수, 파리-리비에라(Paris-Riviera) 덕에 나는 더 자주 그 황홀한 기억을 불러낼 수 있게 되었다. 코트 다쥐르가 바로 리비에라와 같은 지역을 뜻하기 때문이다. (리비에라는 프랑스 리비에라와 이탈리아 리비에라로 나뉘는데, 코트 다쥐르는 프랑스 리비에라를 일컫는다.)


레조 드 샤넬 파리-리비에라 (이미지 출처: fragroom.com)


파리-리비에라는 시트러스 과육의 상큼함과 껍질에서 느껴지는 그린하고 씁쓸한 향, 거기에 햇빛에 달아오른 오렌지 꽃잎의 화려한 열기까지 더해진 그야말로 여름을 위한 맞춤 향수다. 시간이 지나면서 향이 조금 더 따듯하고 부드러워진 느낌은 들지만 변함없이 화창한 매력을 뽐낸.


니스나 마르세유에서 특별히 오렌지 꽃향을 맡았던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파리-리비에라의 향은 내가 만났던 코트 다쥐르의 그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알싸한 시트러스 껍질 향과 플로럴 노트에 더해진 까칠한 느낌(일랑일랑 같은) 마치 바다의 소금기 어린 냄새 같아서 일까. 그 어떤 Solar note나 Marine note보다도 더 강렬하게 여름의 태양과 바다를 불러내는 향이다.



깐느, 모나코, 아를, 앙티브, 생폴 드 방스 등등 기회가 되면 코트 다쥐르의 여러 도시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 계획은 당분간 이루기 어려울  같다. 일단 우리나라 바다라도 실컷 누려야지.


그동안 동해의 새파란 바다와 모래사장을 실컷 보았더니, 제는 해의 일몰이 보고 싶어 진다. 태양과 하나가 된 듯 붉게 물든 바다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30대에 새롭게 만날 특별한 바다궁금다.




레조 드 샤넬 파리-리비에라는 오렌지, 시트러스, 네롤리, 자스민, 벤조인, 샌달우드 노트를 포함하고 있다. 50ml 111,000원.


 


매거진의 이전글 자라 이모션스 컬렉션 에보니 우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