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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rba Nov 01. 2023

사누르에서 발리를 마무리하다

발리살이 (16)

코모도 섬 투어가 끝난 후, 다시 발리로 돌아왔다. 일주일간 함께 했던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건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공항에 내린 후 같이 마지막 점심만 먹고 헤어지려 했는데, 밤 11시가 되어서야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다 같이 떠드는 시간이 앞으로 오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나 역시도 다음 행선지로 섣불리 향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한국에서 온 베프가 사누르에서 나와 같이 여행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로 갈 수밖에 없었다. 친구한테 원래 낮에 간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진 것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커서 밤늦게라도 숙소에 도착했다. 


친구와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연차를 썼다. 우리는 아무 계획 없이 그저 사누르에서 여유로움을 즐기자고 했다. 그리고 그 여유로움을 즐기는 데 있어 사누르만 한 곳이 없었다. 그간 나의 발리여행을 책임졌던 스쿠터를 잠시 내려놓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사누르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아서 큰 문제가 없었다. 갑자기 쓰로틀을 당기지 않고 내 두 발로 페달을 밟다 보니 어색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불편한 안장에 앉아 천천히 동네를 산책하다 보니 스쿠터를 탈 때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간 너무 바쁘게 일정을 소화한 탓인가, 계속 긴장 상태에 있던 나의 마음이 한가로움과 느림으로 점차 풀려났다. 사누르의 해변은 내가 가본 꾸따, 스미냑, 짱구, 길리, 아메드, 코모도와는 또 달랐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큰 이곳은 마치 우리나라의 서해를 보는 것만 같았고, 내가 가본 그 어떤 해변이 조용했다. 내 옆으로 노를 저으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배까지 사누르가 어떤 곳인지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여전히 날은 더웠다. 우리는 땀이 나면 곧바로 호텔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우리 둘은 워낙 물을 좋아했던 터라 하루에 적어도 3시간은 수영을 하며 재밌게 놀 수 있었다. 그간 내가 발리에서 간 수영장 중에서 가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수영장이 깊이가 적당하고 넓은 것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곳곳에 비치되어 있는 물 위 간이침대가 수영장의 질을 한껏 높여주었다. 수영하다 지치면 그냥 물 위에 누워서 뜨는 것이 아니라, 그 간이침대에 누워 해를 피해 그늘 아래서 잠을 청하는 것은 사누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물 밖으로 나오면 큰 수풀 아래에 그늘이 형성되어 있는 썬배드가 놓여있어 책을 읽기에도 적합했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대를 가장 시원한 곳에서 매일같이 보낼 수 있었다. 



아마 가장 친한 친구랑 있었기에 그렇게 편안한 기분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거의 15년 지기 친구였기 때문에 서로가 뭘 원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편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사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같이 한국이 아닌 새로운 나라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우리는 굳이 비싼 음식점을 가지 않고 인도네시아 로컬 식당만 골라서 쏘다녔다. 친구는 발리의 커피와 사테를 정말 좋아했다. 우리는 하루에 두 번씩 사테를 먹고 하루에 네 잔씩 커피를 마셨다. 친구는 커피 맛을 느낀다며 이 더운 날씨에 항상 따뜻한 카페 라떼를 마셨다. 나로서는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디서 마시건 라떼 아트는 항상 예쁘고 정교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변화를 주지 않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로컬 마사지도 받고 요가 수업도 들으면서 사누르에서의 여유를 극대화시켰다. 관광지나 유명한 식당은 가지 않아도 됐다. 그냥 이러한 일상 만으로도 행복했다. 일정이 끝나고 밤이 어둑해지면 우리는 방에 들어와 함께 넷플릭스를 시청했다. 우리는 이미 공유하고 있는 취미가 많았기 때문에 콘텐츠를 고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함께 웃고 떠들다 보면 잠이 들었고, 굳이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같은 시간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면 곧바로 조식을 먹고 수영장으로 향했으며 그렇게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사누르에 지내면서 젊은 사람들은 많이 보지 못했다. 대부분 은퇴하신 어르신분들이 많이 찾는 곳인 것 같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 동네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나의 찬란했던 발리살이를 마무리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장소와 적합한 친구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발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사누르에서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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