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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rba Nov 02. 2023

뜨거웠던 발리의 햇살 아래 물속이 그립기만 하다

발리살이 종료

9월 28일. 발리에 도착하고, 입국 심사 시 30일짜리 비자를 신청했다. 비자 기간을 남김없이 꽉꽉 채운 10월 27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달라진 바람의 숨결을 온 피부가 느끼며 발끝에서 머리까지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나 진짜 한국이구나.' 공항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직 내가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가는 길에 친구들한테 연락했다. "나 한국 왔어. 얼굴이나 보자." 다들 거의 비슷한 반응이었다. "벌써? 시간 진짜 빠르다." 나는 되게 오래 나가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시간은 상대적인 건가 보다.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출근을 해서 일상의 루틴을 찾은 지 거의 일주일이 되어가는데, 아직 발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나는 친구들마다 발리에서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고, 집으로 혼자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사진들을 보며 그때 그 발리로 되돌아가곤 한다. 같이 여행을 하던 6명의 친구들 중에서 내가 3번째로 복귀했는데, 어제 나머지 친구들도 복귀한다는 카톡을 보자 괜히 정말 발리 여행이 마무리되는 것을 느꼈다.


발리는 나에게 있어 여행보다 더 고차원적인 무엇이었다. 나는 발리를 그저 잠깐 경험하는 것이 아닌, 삶으로써 체험했다. 그들이 매일 아침마다 문 앞에 꽃에 향을 피우며 신에게 감사를 표하고 악령을 쫓는 행위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의 부지런함과 강한 종교적 믿음이 새삼 부러웠다. 어느 지역을 가든 발리 사람들의 친절함과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들의 미소는 언제나 나를 웃음 짓게 만들어 나는 말끝마다 발리어로 감사합니다인 '쑥사모'를 연일 사용했다. 웬만하면 나는 식사를 로컬 식당 (Warung)에서 했고,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음식을 섭렵하였다. 닭사테뿐만 아니라, 돼지, 소, 심지어 염소사테까지 먹기에 이르렀고, 한국의 소고기뭇국과 비슷한 소토 사피에 국밥처럼 밥을 말아먹었고, 리어카에서 파는 박소 사피까지 맛있게 먹었다. 짱구에 있을 적에는 한국 기사식당 같은 느낌의 와룽 시카를 매일 방문해서 원하는 메뉴를 뷔페처럼 골라먹을 수 있는 나시짬뿌르를 먹었다. 오는 길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고랭 라면을 기념품으로 사 올 정도로 인도네시아 음식은 나에게 감동이었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아메드가 떠오른다. 사실 순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짧고 그것보다는 조금 긴 시간이 적절할 것 같다. 해가 아궁산을 넘어서질 무렵 오토바이를 타고 일 차선을 달리며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감상하는 그 시점부터, 숙소에 도착하여 다 같이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신 후 수영장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마주한 그 시점까지. 아무리 여러 장의 사진을 갖다 놓아도 표현할 수 없는, 그 아름다운 순간의 연속이 사무칠정도로 그립다. 내가 아메드에 도착한 첫날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때보다 더욱 자극적이고 새로운 경험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했지만, 왠지 모르게 계속 그 아메드에서의 초저녁과 밤 사이의 시간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나는 참으로 걱정이 많고 불안함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었는데, 정말 그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온전히 행복하다는 감정을 순수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발리를 가고 싶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쉽사리 '당연하지'라고 대답은 못할 것 같다. 내 인생 최고의 여행지였음에는 틀림없지만 확실하게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좋아했던 건 내가 이번에 같이 여행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이 담긴 발리이지, 그냥 발리 그 자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다시 발리를 간다고 해도 이번만큼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없다. 나에게 발리는 지금 이 순간 내 삶의 최고의 여행지로 남아야 한다. 한 번 더 가서 지난 기억들까지 희석시키고 싶지는 않다. 그만큼 지난 한 달간의 발리는 소중했다. 소중한 기억을 뒤로한 채 다시 규칙이 있는 일상으로 복귀할 때가 되었다. 무기력에 허우적대던 이전보다는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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