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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rba Feb 20. 2024

문과생 기획자의 전문성에 대한 고민

예전에 다음과 같은 뉘앙스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이 지금 다니는 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만약 갑자기 회사가 사라진다고 하면, 우리는 여전히 지금 하는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직관적으로 와닿는 말도 봤던 것 같다. "우리는 지금 직장을 다니고 있는가, 아니면 직업을 가지고 있는가?" 


최근에 개발자 친구를 만났다. 멋있다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누구나가 알법한 국내외 여러 회사와 스타트업에서 일했고, 현재는 집에서 혼자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달 서비스 출시가 목표라고 한다. 매번 이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얘는 뭘 해도 잘 해낼 친구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라는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이미 여러 곳에서 증명을 해냈다. 이 친구는 회사가 없어도 본인이 하는 일을 어디에서나 잘할 수 있고,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속에도 항상 여유가 흐르고 자신감이 느껴진다. 


개발자라는 단어를 기획자로 바꾸어서 친구의 상황을 본인에게 대입해 보자. 운이 좋게도 국내 누구나가 알법한 IT 회사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일을 때려치우고 집에서 혼자 사업을 준비하는 상상을 한다. 몇 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회사가 없을 때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사업이 실패하고 다시 돈을 벌기 위해 회사로 돌아갈 때, 회사가 전문성이 없는 나의 무엇을 보고 뽑을까 대한 두려움이 있다. '직장을 다니는 것과 직업을 갖는 것'의 차이이다.


기술과 자격증이 없는 그저 학교와 회사 타이틀만 있는 현재, 본인의 가치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들 수밖에 없다. 불현듯 이전에 회사 시니어 분이 해주셨던 말이 기억난다. "기획자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기획자는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인 거 같은데." 지금에서야 느끼는 것이지만, 사실 이 말이 비단 기획자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는 가장 쉬운 길은 본인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이 해내지 못한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다. 스스로 하건, 누군가와 같이 하건,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어떻게든 결과를 보여주면 되는 일이다. 인정은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이다.


사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많은 지난 일주일이었다. 충동적으로 이직을 알아보기도 했었고, 친구의 사업 제안에 홀린 듯이 넘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승낙할 뻔하기도 했다. 집이 숨 막혀서 잠시 창문을 열어놨더니,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안락한 집에서 문을 열고 나갈까도 고민했었고, 아예 창문을 넘어 바람을 따라 날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주말 내내 심연 속에 살기도 했다. 


이대로는 스스로를 갉아먹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찾아와, 일단 생각을 멈추었다.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다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당장에 시작하기로 정했다. 나이키의 'JUST DO IT'처럼 '그냥 하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회사를 배제하고서라도, 오로지 한 사람으로서 무언가 해낼 수 있음을 보이고 그 모습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전문가라고 자신할 수 있는 순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특정 상품을 파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유튜브 채널을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보다 기술적인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머릿속에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이건 이래서 안돼. 저건 저래서 안돼. 내가 할 수 있겠어?' 최면을 걸며 현실에 접목시키지 못했다. 다시 한번 되뇐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걱정과 두려움만 커진다. 지금은 당장 할 수 있는 미션을 끈기 있게 클리어하는 것이 최선의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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