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orba Feb 27. 2024

생각이 복잡할 땐 물속으로 다이빙

작년 가을 사내 동호회에 가입하여 프리다이빙을 시작했다. 다이빙을 할 줄 알게 되면, 그다음 달에 예정된 발리 한달살이를 보다 색다르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이 선택이 2023년 내가 내린 수많은 선택 중, 손에 꼽을 정도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다이빙을 배웠기 때문에 발리에서 아메드라는 지역에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고, 그곳에서 만난 5명의 사람들과 함께 매일같이 다이빙과 라이딩을 하며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했다.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일주일이었다. 


그때 도파민이 너무 강력했던 탓인지,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이빙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 발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아름다운 바다에서 다이빙하는 것이 좋았던 것이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수영장에서 다이빙하는 것은 여간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 게다가 집도 서울로 이사하고, 날씨가 추워지니 특유의 게으름도 다시 기승을 부렸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난 후, 동기의 이끌림에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오랜만에 수영장을 찾았다. 사실 오늘도 가기 직전까지 의욕이 샘솟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물속에 들어가 있으면 마음속 시끄러운 소리가 잠잠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수영장에 도착해서 문을 열자마자 몸이 즉각 반응했다. '와 이게 물 냄새지.' 그 순간 몸과 마음이 온전히 평온한 상태로 들어섰다. 머리에 가득했던 온갖 고민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마스크와 스노클을 벗은 채로 눈을 감고 1분가량 잠수했다. 주위가 고요해지며,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힘들게 우주로 나갈 필요가 있는가, 지구의 70%가 물인데. 물속에 있는 그 순간만큼은 제2의 자아가 형성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Free Imersion (프리 이머젼). 줄을 잡고 물속 깊숙이 내려가는 연습을 했다. 처음 두 번은 물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깊이 들어가지 않고 몸을 편안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세 번째에는 최대한 내려갈 수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 눈을 감고 물에 몸을 맡긴 채 아무 생각 없이 줄을 당기고 또 당겼다. 몸에 긴장을 푼다고 노력했는데, 아직 익숙지 않아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숨이 벅차오를 때 즈음 몸을 돌려서 물 밖으로 천천히 올라왔다. 수면 위에서 회복호흡을 하는 동안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마 두려움이었으리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 동기가 20m 정도 내려갔다고 알려주었다. 현재 따고 있는 자격증인 레벨 2의 기준인 12m를 훨씬 넘는 수치였다. 그 순간부터는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며 가슴이 요동쳤다. 그간 여러 사건으로 인해 자신감이 많이 하락한 상태였는데, "나도 오랜만에 무언가를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다음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Constant Weight (콘스탄트 웨이트). 줄을 잡지 않고 두 발에 찬 핀을 이용해서 물속 깊숙이 내려가는 연습을 했다. 사실 이전에 실패한 종목이라, 수영장에 오기 전부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근데 또 막상 앞선 종목을 잘 마치고 나니, 아무 생각 없이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발을 힘차게 내젓다 보니, 점점 세상과 동떨어진 나만의 공간에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주위는 극도로 고요했다. 어떤 감정과 생각도 그곳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 잠깐 머무르다가 다시 내가 사는 세계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22m를 내려갔다고 했다. "나 또다시 해냈구나." 이번에는 성취감보다, 물속에서 머무르던 그 순간으로 인한 평온함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마지막 과정인 인명 구조까지 완벽하게 해내고, 오늘 하루 물속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물 밖으로 나오니 11시가 지나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마음이 시끄러웠는데, 어느 순간 고요해졌다. 물은 그렇게 특별한 곳이 되었다. 지치고 힘들 때, 생각이 많아질 때, 기댈 수 있는 곳을 찾은 것만 같다. 집에 가는 길에 동기한테 얘기했다. "신기하다. 물속에만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 자주는 못 오더라도 우리 이렇게 가끔 다이빙하러 오자." 2월 들어 가장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나 곁에 사람을 필요로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