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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rba Feb 25. 2024

누구나 곁에 사람을 필요로 한다

외향성과 내향성은 내 안에 공존해 있다. 지금까지 자신을 내향적이라고 믿어왔지만, 지나온 나날들을 돌이켜보면 외향적인 순간들도 더러 있었다. 아마 양극단의 성향을 가지지 않은 채, 40~60% 그 중간을 줄다리기하는 행태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 자리에 그 시간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외향/내향 스위치를 번갈아 끼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그럼에도 성인이 된 후, 내향적으로 살아온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 이면에는 아마 '사람을 자주 만나는 일이 시간 낭비일 때가 많다. 유익하지 않다.'는 수많은 경험에 입각한, 다소 자만이 가득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만날 시간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를 명확하게 나누는 성격 때문에, 초면에 불호인 사람들을 굳이 시간을 쓰면서까지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20대의 끝자락에 온 지금, 지난 삶을 돌이켜보니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시간을 보내었지만, 현재 곁에 남아있는 사람은 그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렇게 오만하고 극단의 이성에 파묻혀 살던 중, 최근 마음이 크게 내려앉은 일이 있었다. 한 순간의 나답지 못했던 실수로 인해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설렘을 느꼈던,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을 떠나보낸 것이다. 타이밍도 참 야속했다. 몇 차례 본인만의 사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경험하고 낙담하던 찰나였다. 삶에 대한 자신감이 극도로 떨어진 시기 었기에, 아픔이 배가 되어 마음을 파고들었다. 혼자 있으면 분리 불안이라도 생긴 것 마냥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렇게 생전 안 하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찾았다. 누구라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2주간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원래 누군가를 만나면 본인 얘기를 많이 안 하고 남의 얘기를 들어주곤 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대화가 아무리 길어져도 모두가 끝까지 들어주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거구나.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풀리지 않던 문제가 해결이 되기도 하는구나.' 늦은 나이에 보편적인 진리를 깨달아버렸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는 끊임없이 자신을 자책했지만, 누군가를 만나며 보다 건강하게 자신을 성찰할 수 있었다. 나아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도 잡을 수 있었다. 마음이 온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제 만난 형이 해주었던 말이 떠오른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인생이라는 책을 갈기갈기 찢지 말고, 그냥 다음 장으로 넘겨. 그것 때문에 너 삶이 너덜너덜해질 필요는 없어.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고 덮어둬. 그다음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거야.' 


아홉수의 시작을 참으로 드라마틱하게 시작했다. 한 것도 없는데 나이만 먹어간다는 생각이 무르익을 무렵,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성숙해짐을 느끼고 있다. 그간 나에게 있어 성장이란 외적으로 멋있어지는 것, 보다 똑똑해지는 것,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단 한순간도 내면에 대해서는 고려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주위에 소중한 사람들 덕분에 강제로 내면의 성장까지 이룰 수 있었다. 이제는 인간관계를 대하는 태도가 전보다는 달라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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