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가는 길에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군가한테 아무 조건 없이 잘하면 다 나한테 돌아오지 않겠냐?" 평소 같았으면 "그건 그렇지."하고 넘겼을 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하루가 지난 오늘도 이 말이 꽤 진하게 남아있다. 어제 그 친구의 모습이 딱 그러했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바꾸고 싶다고 하니 강변 테크노마트에 데려다주었다. 집에 오토바이 키를 놓고 왔다고 하니 집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테니스를 최근에 시작했더니 여분의 테니스 라켓을 그냥 줬다. 테니스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코트에 나가기가 두려웠었는데, 이것도 같이 가주었다. 예전 같았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우리는 친한 친구니까 뭐 당연한 거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 친구는 나한테 정말 아무런 조건 없이 다 잘해주고 있었다. 참 고마웠다.
고등학교 때 베프였던 친구가 있었다. 성인이 된 후에 사이가 멀어져 개인적으로는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한동안 그 이유를 몰라 서글펐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내 20대는 생각보다 개인적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계산적이고 이기적이었다.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내린 대부분의 결정에는 내가 중심이었다. 사실 상대방의 마음은 크게 헤아린 적이 없었다.
나는 스쿠터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 여자친구랑 어디 놀러 갈 때 항상 스쿠터를 타고 다녔다. 가끔가다 여자친구가 스쿠터를 타는 것을 꺼려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이유를 잘 몰랐다. 거의 반년이 지나고 나서 이제야 깨달았다. 데이트를 위해 예쁘게 꾸미고 나왔는데 스쿠터를 타면 머리와 화장이 엉망이 된다는 것을.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라고.' 그동안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야 같이 살아가는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나만 알던 모습이 부끄럽다. 이제야 비로소 '조금 손해 보면 어때?'라는 마음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아직 주위에 사람들이 남아있다. 조금은 나를 내려놓고 상대방을 올려놓을 때 비로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될 것만 같다.
사촌형이랑 밥 먹다가 이런 얘기가 나왔다.
'너 돈 왜 버냐?'
'나 주위 사람들이랑 행복하게 살려고.'
'근데 너 예전보다 돈 훨씬 많은데 주위 사람들이랑 뭘 행복하게 살고 있냐?'
'... 그러게'
'차 한 대 사'
'나 필요 없는데.'
'그건 알고. 너 차 사면 누가 제일 좋아할 거 같냐?'
'음.... 엄마?'
사실 차가 필요 없어서 차를 사지 않고 있다. 조금만 내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자 전혀 다른 생각이 가능해진다. 하루 아침에 바뀌기 쉽지 않겠지만, 남의 입장을 헤아리는 방법을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