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평범한 삶을 잠시 내려놓으며

[프롤로그] 서울 > 생장피에드포르

by Zorba

길을 잃었다. 사회는 나에게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들어가면, 좋은 인생을 살 것이라 가르쳐왔다. 하지만 그것은 나쁘지 않은 인생을 살 확률을 높여주는 여러 방법론 중 하나였고, 결코 최선이라 말할 수 없었다.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지 못했고, 좋은 직장을 들어갔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 한국인의 최애 가치인 돈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을 벌 수는 있었지만 특별한 삶을 살기 위한 부를 축적할 수 없었다.


비이성적인 접근에 언제나 맞서 싸우던 나도 아홉수라는 멍청한 미신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고, 스물아홉의 겨울이 다가올 무렵 지금 내 삶이 오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회의 프롤로그만 경험한 아직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내가 앞으로의 세상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삶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사실이다. 성취감은 나의 이십 대를 이끌던 원동력이었지만, 전재산을 투자할 만큼 내가 사랑했던 회사는 모순적이게도 조금씩 나도 모르는 사이 그 힘을 빼앗아갔다. 회사는 등가교환이라며 그 대가로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주었지만,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탁해진 눈을 액정 너머로 보고 있자니 다소 불공정한 거래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별다른 해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이러한 삶에 익숙해진 나는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냈다.


휴직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였다. '인생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 잠시 쉬어간다.'는 말로 에둘러 변명해 본다. 퇴직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배수진을 칠 수 있었겠지만, 리턴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이 리스크를 짊어지기에 나는 한없이 작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6개월이라는 길고 짧은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회사라는 거인의 어깨에서 그가 걸어가는 대로 따라갔던 나는 그곳에서 내려와 땅을 밟자마자 한 마리의 길 잃은 어린양이 되었다.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던 나는 글자 그대로 '그냥 걷기'로 했다. 걷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천주교 집안에서 자란 나는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접해왔다. 나이를 먹고 머리가 커지며 오만하게도 신에 대한 믿음이 제로에 수렴해 버렸지만, 걷겠다고 결심한 순간 커진 머릿속을 채운건 공교롭게도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신의 주신 마지막 기회라고 치부하기엔 그 정도의 믿음도 사라진 나였지만, 이 역시 그의 계획이라는 다소 모순적인 합리화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로 여러 길 중에서 나는 프랑스 길(Camino Francés)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필 내가 출발하는 시기가 비수기였고, 이 길이 가장 유명하기 때문에 단순히 숙소 구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휴직을 시작하는 당일 오전 10시에 인천공항 게이트 앞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렸다. 일상을 살았다면 아침 테니스 레슨 후 찬물 샤워로 도파민을 채운 상태에서 스쿠터를 타고 정확한 타이밍에 신호등 5개를 지나 회사에 도착할 시간이다. 미리 주문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밖에서 회사 동기와 같은 하늘을 보며 연기를 내뿜으면 하루가 시작된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 피우는 건 똑같은데 지금 내 옆에는 40L 가방이 놓여있고, 하늘을 보는 대신 곧 하늘을 날게 된다. 비행기에 타면 창밖을 바라보며 지나온 나날들을 돌이켜보는 다소 낭만적인 그림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탑승과 동시에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향해 입을 벌리며 잠에 들었다.


비행기에서 먹고 자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파리에 도착했다. 예전의 나였으면 이왕 온 거 파리 좀 구경하고 순례길을 떠났겠지만, 여행에 대한 역치가 다소 높아진 나는 파리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의 한계를 알았기에 과감히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피에드포르로 향했다. 그곳에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마을인 바욘(Bayonne)으로 가는 야간버스는 3시간 뒤에 도착하기에, 공항에 하나밖에 없는 카페에 들어가서 따뜻한 커피와 함께 시간을 녹이기로 했다.


카페를 둘러보고 있는데 바로 앞에 나와 같은 배낭을 멘 누가 봐도 순례자 행태를 하고 있는 한국인과 눈이 마주쳤다. 3초간 서로를 응시하다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네. 산티아고 순례길 가시나요?"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동료를 만났다. 띠동갑이지만 꽤나 젊어 보였던 형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출판업계에서 10년 넘게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순례길로 나섰다고 했다. 순례자라는 이름하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던 나는 이 낯선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어쩌다가 순례길까지 오게 되었나요?"

"좋은 기회로 사업 제안을 받아서 홀로 출판사를 차리게 되었는데, 시작하기에 앞서 출판사의 이름도 정할 겸 복잡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왔어요."

희미했던 그 동질감이 뚜렷해지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부러운 마음도 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비슷했지만, 그에게는 무엇을 할지 명확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저 멀리 혼자 앉아있는 또 다른 한국인이 보였다.


나와 동갑인 친구였는데 건설업 쪽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앞으로 어떤 새로운 일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찰나 이곳에 왔다고 한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낯선 유럽 땅의 카페에 앉아있는 우리는 얼핏 보면 틀에서 벗어난 방랑자였지만, 나름의 큰 결심을 하고 각자의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된 순례자였다. 각자 싸 온 배낭을 점검하며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나눠주는 미덕도 잊지 않았다. 각자 몸에 맞게 배낭끈까지 조절하고 떠날 준비를 마친 후, 마주한 눈동자들에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섞여있었다. 아마 나의 것도 그러했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바욘으로 가는 야간 버스에 올랐다.


"Wake up!"

깜짝 놀라 몸을 파르르 떨며 일어났다. 휴게소 도착했다는 것을 뭐 이리 요란하게 알려주는지. 투덜대며 화장실로 걸어가던 중 핸드폰으로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에 폭우가 쏟아져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는 뉴스를 보았다. 남동부 쪽이라 순례길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겠거니 안심하면서도, 부디 내가 걷는 동안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품고 다시 잠에 들었다. 버스 기사님이 투철한 직업정신이라는 명분 하에 2시간마다 휴게소에 들러 일어나라고 소리치며 감행했던 치열한 방해공작에도 나는 충분한 수면시간을 꿋꿋이 지켜내며 결국 바욘에 도착했다.


이제 이곳에서 한 시간가량 기차를 타면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에 도착하게 된다. 공항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는 이곳에서 하루 더 묵는다고 하여 같이 점심을 먹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남겨진 나와 출판사 형은 생장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갔다. 어리석게도 생장이라는 글자만 보고 생장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가 아닌 생장드루즈(Saint Jean De Luz)로 향하는 기차를 예매한 점만 빼면. 다행히 그 어리석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무언가 잘못됨을 직감적으로 느꼈던 우리는 출발 10분 전 가까스로 표를 변경하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에는 뭐 이리 생장이 많냐며 애꿎은 성 요한의 이름을 질책하다 보니 어느새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했다.


배낭을 멘 순례자들이 하나 둘 기차에서 내렸다. 이탈리아, 독일,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모인 우리는 서로 악수를 건네며 통성명을 한 후 함께 순례자 사무실로 향했다. 이곳에서 순례자임을 증명하는 '순례자 여권'과 순례자를 상징하는 '가리비 껍데기'를 받았다. 순례자 여권이 있으면 길을 걷는 도중 보이는 알베르게라는 순례자 숙소에 묵을 수 있으며, 배낭에 가리비 껍데기를 달면 내가 순례자임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


생장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짐을 풀고, 같이 온 형과 출발 전 마지막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는 김에 마을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잠깐의 소나기가 발렌시아 홍수로 학습된 불안을 증폭시켰지만, 그것은 단지 순례길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일 뿐이었고 이내 따뜻한 햇살이 마을을 감쌌다. 두리번거리며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발견한 마을 초입구의 상점에서 순례자 표식이 그려져 있는 작은 수첩과 펜을 구했다. 이들은 앞으로 길을 걸으며 내가 느낄 여러 감정의 저장소로, 배낭 안에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물건이 될 운명을 지닌 채 내 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모퉁이를 돌아 발견한 베이커리에서 조그마한 까놀레를 몇 개 집어먹으니, 지쳐있는 상태에서 갑작스레 들어온 당분에 기분이 좋아진 뇌는 절로 입가의 미소를 짓게 했다. 그에 비해 저녁 식사는 지극히 평범했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으로 만족했다.


붉은 지붕들을 양옆에 두고 올라가다 보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조그마한 성을 발견하게 된다. 고즈넉한 마을 너머로 내일 넘어야 할 웅장한 피레네 산맥이 보인다. 그제야 비로소 실감이 난다. 내가 살던 세상을 뒤로한 채, 앞으로 한 달여간 산티아고로 향하는 정해진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는 것을. 부디 그 속에서 나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길, 인내와 끈기의 미덕을 알길,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깨닫길 바라며 하늘을 덮은 노을을 흘려보낸다.


생장 1.jpeg
생장 2.jpeg
생장 3.jpeg
생장 4.jpe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