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차] 생장피에드포르 > 에스피날
[Day 1] St.Jean Pied De Port > Espinal
잠귀가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처음 잠에 들기까지는 꽤 힘들지만, 잠에 든 순간부터는 웬만한 소리에 잘 깨지 않는 편이다. 이른 새벽 알베르게에서 같이 잤던 순례자들이 설레는 마음에 부산스럽게 나갈 채비를 해도 미동조차 없었던 나는 출판사 형의 '흔들어 깨우기'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렸다.
"내일이 제일 힘든 날이니까 일찍 일어나야 해."
"오 그래요? 그럼 형 일어나면 깨워줘요."
자기 전에 어렴풋이 형이랑 얘기했던 내용이 기억난다. 침낭을 개고 핸드폰을 보니 달이 바뀌어 있었다. 11월 1일.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짜다. 하지만, 이렇게 표면적으로 좋아 보이는 날짜의 뒷면에는 함정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피레네 산맥을 통과하는 '나폴레옹 길'을 걷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제 순례자 사무실에서 전해 들은 바로는 해당 길이 11월 1일부터 ~ 3월 31일까지 겨울철 안전상의 이유로 통제되기 때문이었다.
나폴레옹 길이 프랑스 순례길 코스 중에서 가장 험난하면서도 아름답다고 유명했던지라 '하루만 더 일찍 왔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역시도 어쩔 수 없는 나의 길이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다음에 또 순례길을 걸을 핑계를 댈 수 있으니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왜 또 오셨나요?"
먼 미래의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대충 이렇게 대답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제가 예전에 순례길을 왔을 때는 겨울철이라 나폴레옹 길로 피레네 산맥을 못 걸어봐서요."
별 시답지 않은 생각은 배낭에 고이 집어넣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다소 오랜만에 마시는 새벽 공기는 차가웠고, 꽤나 오랜만에 보는 별들은 반가웠다. 순례길을 시작하는 걸음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미약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한 걸음일 뿐이었다. 다만 그 걸음은 꽤나 본능에 충실했고, 저 멀리 풍겨오는 빵 냄새를 차마 지나칠 수 없었다. 가게에 들어가니 진열대에 놓인 빵들 밑으로 신문 더미가 보인다. 프랑스어로 되어 있어 읽지는 못하지만 정형화된 형태로 가지런히 놓인 신문을 보고 있자니, 아날로그의 세상으로 이제 막 들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뺑오쇼콜라와 카페라테 한 잔으로 배를 채운 뒤, 쏟아지는 별들 아래에서 생장을 떠나는 발걸음을 가볍게 옮긴다.
별은 도로를 비출 만큼 밝지 않아서 가로등의 불빛에 기대어 걷는다. 시작의 설렘 때문인지는 몰라도 생각했던 것만큼 힘겹지는 않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나폴레옹 길을 걷지 않아서'가 맞겠지만, 사실 '거기도 안 가봤으니 모르는 일이지 않나?'라는 쓸데없는 자신감을 속으로 내비치며 차오르는 해를 등에 업는다. 빛이 차오르며 초록의 잎들 사이로 눈앞에 흙길이 펼쳐진다. 그 길의 좌우를 두리번거리면 양 떼들이 풀을 뜯어먹거나 소가 배변활동을 활발히 하는 등 다소 목가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각자 걸음이 다른 순례자들은 그 길 위에서 서로를 지나치게 되어있다. 나는 오늘 아침 제일 일찍 나왔지만, 한 시간 정도 걸으니 자기 키만 한 배낭을 멘 젊은 프랑스 여자한테 꼬리를 잡혔다. 길에서 처음 만난 외국인 친구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다소 반가운 인사를 건넸지만, 의사소통의 문제로 간단한 호구조사만 마친 후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보냈다. 시간이 지나자 날씨가 꽤 더워져서 잠시 쉬는 겸 새벽에 입었던 경량패딩과 맨투맨을 배낭에 고이 집어넣었다. 보다 상쾌한 상태로 걷다 보니 이탈리아에서 온 남자를 만났다. 다행히 만국의 언어인 영어가 통하는 상대였다. 시칠리아에서 와인 사업을 하는 동갑내기 친구였는데, 가족이 운영하는 바에서 주말에는 웨이터를 하고 평일에는 와인 농장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11월은 바쁜 시기가 아니라 일손이 덜 필요한데, 평소에 트래킹도 좋아해서 겸사겸사 순례길에 왔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와인에 대해 문외한이던 나는 와인을 추천받고 싶었다. 내가 만난 사람 중 이쪽 분야에선 최고의 전문가이지 않겠는가.
"네가 생각하기에 어떤 와인이 제일 좋은 것 같아?"
"사실 그건 답하기엔 너무 어려워. 모든 와인은 아름답거든."
한참을 생각하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도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었지 않나 싶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한식이 제일 맛있냐고 물어봐도 그와 비슷하게 답했을 것 같다. '아름답다'는 다소 낭만적인 표현은 생각해내지 못했겠지만.
걷다 보니 길의 왼편에 조그마한 식당이 보였다. 이탈리아 친구는 그곳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고, 나와 출판사 형은 아직 힘이 남아있어 계속 걷기로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길 위에서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동 출판사에서 10년간 일한 형은 여러 이유로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대형 출판사 이직 준비를 하던 중에, 몇 년 전 출판사를 차려서 성공한 친구의 동업 제의가 들어왔다. 본인의 출판사에 자회사 개념으로 새로운 아동 출판사를 설립하자는 내용이었다. 몇 차례의 고민 끝에 형은 도전을 결심했고 내년부터는 남을 위한 일이 아닌 자신을 위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꽤나 멋있는 결정이었다.
"상호명은 뭐로 하면 좋을까?"
"음... 필그림북스 어때요?"
현재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며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순례자'라는 단어의 의미가 앞으로 형이 걸을 길 위에서 더 깊고 다채로워질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속마음을 잘 내보이지 않는 나도 길이 주는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그간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의 종류는 달랐지만, 올바르다고 믿는 그 길의 방향성에 대한 마음을 공유하였기에 묵묵히 서로의 길을 응원할 수 있었다. 순례길에 대한 두려움이 편안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편안함도 잠시,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조금만 있으면 다시 쉬워지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길은 천천히 오랫동안 경사를 높여가며 시련을 주었다. 아버지가 항상 산을 갈 때마다 하셨던 말씀이 있다. '쉬면 더 힘들다.' 나는 어릴 적 수차례의 등산으로 그 말의 의미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최대한 안 쉬고 끝까지 올라가려 했다. 10kg에 달하는 배낭의 무게는 이제 쉴 때가 되었다고 끊임없이 속삭였지만, 정신을 부여잡고 묵묵히 올라갔다. 하지만 어느새 뒤돌아보니 형이 많이 뒤처져있었다. 내 편안함을 위해서는 혼자 먼저 가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겠지만, 나는 멈춰 서기를 선택했다. 형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 보였고 우리는 거의 10분마다 길 위에 주저앉아서 쉬기를 반복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얼굴이 땀으로 뒤덮인 형이 얘기했다.
"먼저 가. 나 이제 더 이상 못 갈 것 같아."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갑니다. 조금만 힘내시죠."
직감적으로 나는 우리의 걸음걸이의 속도가 꽤 달랐기 때문에 여기서 먼저 가면 앞으로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헤어지더라도 조금 더 아름답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개인주의 성격이 강한 나는 먼저 걸어갈 법했지만, 순례길이 주는 '같이 걷는 것'에 대한 미덕을 지난 몇 시간 동안 배운 터였다. 그렇게 우리는 형의 체력이 회복할 때까지 낙엽으로 덮인 흙길에 앉아 기약 없는 휴식을 취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씩씩하게 걸어오는 한 명의 순례자가 보였다. 누가 봐도 트래킹 고수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당 충전이 시급했던 우리는 그 순례자가 가까이 오자 무례함을 무릅쓰고 초콜릿 같은 게 있는지 여쭤보았다. 그분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배낭을 열더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전부라며 에너지바 두 개를 우리에게 건넸다. 그 은인의 도움으로 형은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고, 일어나 길을 걸어 나갈 수 있었다. 바스크 지방 출신의 50대 아저씨 '필리오'는 방송국에서 PD를 하는 이 근처 마을 주민이었다. 잠시 휴가를 나왔는데 평소 트래킹을 좋아해서 이렇게 종종 순례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렇게 이 길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필리오는 자기만 따라오면 된다며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필리오는 본인을 스페인 사람이 아닌 바스크 사람이라고 했다. (바스크 치즈케이크도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알고 보니 바스크는 카스티야로 대표되는 스페인인과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바스크 지방의 대표 도시인 빌바오의 축구 클럽 '아틀레틱 빌바오'에는 바스크 혈통의 선수만 입단할 수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리오에게 들어보니 바스크 지방 역시 카탈루냐와 함께 스페인에서 분리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이었다. 다만, 바스크 지방이 탄탄한 산업과 경제적 기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스페인에서 쉽게 놔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본인을 스페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필리오를 보며 서로 다른 민족이 한 나라에 억지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상상이 되면서도, 한 민족이 서로 다른 나라에 나뉘어 사는 입장에서는 쉽게 공감이 되지도 않았다.
우리 셋은 마침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식당에서 우리는 또다시 필리오의 도움을 받으며 첫 스페인 음식을 성공적으로 먹었다. 정식 루트를 따르면 오늘 생장에서 출발한 순례자는 이곳에서 머물게 된다. 필리오와 형을 포함한 길에서 만난 많은 순례자들은 무리하지 않고 여기에 짐을 풀기로 했지만, 나는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체력이 아직 남은 상태에서 남들이 멈춰서는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3일을 함께한 출판사 형과 진한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오르막길에서 그렸던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앞으로 순례길은 함께 걸을 수 없겠지만 이 길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인연이었다.
모두를 떠나보내고 시작한 혼자 걷는 길은 외로웠다. 길에 간간이 보이던 순례자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 마을까지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 마을에 알베르게가 모두 비수기라 문을 닫았다는 말을 듣자마자 걱정이 휘몰아쳤다. '혹시나 다음 마을에도 잘 곳이 없으면 어떡하지?'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고 다리도 제발 좀 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별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숙소를 찾을 때까지 걷는 수밖에. 다소 빨라진 걸음으로 에스피날(Espinal)에 도착해 보니 오후 6시경이었다. 다행히 숙소는 있었다. 하지만 모든 방이 꽉 찼다. '나대지 말고 그냥 론세스바예스에서 잘걸. 노숙을 해야 하나?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재워달라고 할까?'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숙소 카운터 아주머니가 마을에 방이 남는 곳이 있는지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한참 통화를 하다가 전화를 끊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여기서 2km 떨어진 곳에 캠핑장이 있는데, 거기 오두막 같은 숙소에 자리가 있데요."
감격에 겨워 아주머니 손을 잡고 감사합니다를 연발한 뒤 캠핑장으로 걷기 시작했다. 구글 지도로 보니 캠핑장까지 가는 길이 차도 밖에 없었는데, 날이 어두워져서 꽤나 위험했다. 어쩔 수 없이 차도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최대한 붙어서 스릴 넘치는 순례를 하던 중, 저 멀리서 스페인 아주머니 둘이 나한테 소리치며 뛰어왔다. 여기 차도는 너무 위험하다고, 저기 옆에 지도에 없는 숲길이 있는데 거기를 따라가면 캠핑장이 나온다고 알려주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던 나는 아주머니들 말만 믿고 휴대폰 라이트에 의존한 채 그 길을 따라 걸었고 결국 캠핑장에 도착했다.
"방이 있나요?"
"네. 여권이랑 순례자 여권 주세요."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적어도 노숙을 안 해도 된다는 사실에 감격했기에 숙소의 퀄리티는 안중에도 없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인 후, 오늘 하루 고생한 나를 위해 평소에는 상상도 못 하는 '나 홀로 맥주'를 한 잔 하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지칠 대로 지친 내 몸에 알코올을 때려 넣으면 마취총에 맞은 듯 세상 누구보다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야외 테이블에 앉으려고 보니 아까 도로에서 나를 구해준 스페인 아주머니 둘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른 친구 두 명이 더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나에게 순례자냐고 물으며 고생했다고 맥주 한 잔을 사주셨다. 내 생에 그렇게 맛있는 맥주는 처음이었다.
아주머니 4인방은 스페인 북동쪽 사라고사 출신이었고, 친구들끼리 5일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캠핑을 한다고 했다. 한 분만 영어를 할 줄 알아서, 계속 그분을 끼고 얘기를 해야 하는 다소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었지만 그래도 서로 웃고 떠들며 늦은 저녁의 시간을 보냈다. 여러 이야기 중 가장 신선했던 것은 스페인 아주머니들이 한국 스킨케어 화장품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중국 수출에 의존적이었던 우리나라 화장품이 요즘 미국과 여러 유럽 국가에서 꽤나 잘 팔린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본인이 쓰는 한국 스킨케어 화장품을 보여주는 스페인 아주머니를 보니 그 실상이 크게 와닿았다. 나는 종류별로 유명한 스킨케어 브랜드들을 하나씩 추천해 주었고, 맥주를 다 마신 후 각자의 여행을 응원하며 오늘 만난 마지막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긴 하루였다. 다사다난했던 첫날이었다. 예상대로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은 어려웠다. 론세스바예스에서부터 시작된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길은 중간중간 나에게 후회를 안겨주기도 하였지만, 결국엔 더 큰 성취감을 선물해 주었다. 내가 선택했던 길 위에는 따뜻한 스페인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있었고,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편히 잠들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님을 배웠고, 쓸데없는 걱정은 그 어떤 상황도 나아지게 하지 않음을 배웠다. 그저 묵묵히 여유롭게 걷다 보면 어떻게든 답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어제보다 달콤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