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 산티아고 걷기대회

[2일 차] 에스피날 > 팜플로나

by Zorba

[Day 2] Espinal > Pamplona


밤의 냉기가 옷깃 사이로 스며들어 나를 깨웠다. 전날의 가혹한 행군으로 지친 몸은 그다음을 위해 충분한 회복이 필요할 법도 했지만, 캠핑장은 야속하게 또 다른 시련을 선물했다. 다소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전날 널어둔 빨래를 챙기러 갔다. 기대도 없었지만 역시나 축축하다. 가는 길에 햇살이 부디 따스하길 바라며 배낭 위에 덜 마른빨래를 얹어놓고 길을 나섰다.


오늘의 새벽은 어제와 다르게 춥고 어둡다. 말동무가 되어주는 사람도 없고, 가는 길을 비추는 가로등도 없다. 심지어 하늘에는 자욱한 안개가 별들마저 숨기고 있어,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하다. 휴대폰 라이트에 의지한 채로 캠핑장을 나와 에스피날 마을까지 걷는다. 차가 다니는 큰 도로 쪽으로 걸어가면 더 빨리 도착하겠지만, 도저히 그 길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숲 속 오솔길로 걷는다. 어젯밤에 비가 내렸는지는 몰라도 길은 온통 진흙으로 변해있었다. 한걸음 나아갈 때마다 갈색으로 물드는 신발을 보니 오늘은 어제보다 더 힘들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다.


사람 없는 순례길은 고요하다. 가끔씩 바람에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 정도만 들릴뿐이다. 몸이 힘들다 보니 정신은 자꾸 행복했던 과거만 떠올리려 한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대학교 3학년 즈음의 기억이다. 모든 순간이 강렬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아마 그때가 내 인생에 가장 찬란했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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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전역하고 복학을 하니, 태어나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뭐 해 먹고살지?' 그전까지는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됐다. 그리고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이루면 됐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추운 강원도에서 나라를 지키고 현실로 나와보니 1학년 때 같이 놀던 여자애들은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고, 몇몇 남자애들은 벌써부터 인턴을 구하고 있었다. 지금껏 정해진 루트만을 따라서 살아온 나한테 이런 상황은 낯설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린 나이의 패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창업을 해볼까?'


그 길로 교내 창업학회에 들어갔고, 거기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해외에서 유학할 때 겪었던 불편하고 힘들었던 부분을 해결하는 사업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그토록 무언가에 몰두했었던 시간이 또 있었나 싶다. 사업을 키워야 한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고, 매출이 오르는 것을 보며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으며, 내가 만든 서비스가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성취감에 젖어 온몸에 소름이 돋을 때도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고, 항상 자신감에 차있었다.


내가 입주해 있던 공유 오피스는 여러 팀들이 상주해 있었다. 보통 12시 정도에 퇴근을 했는데, 오피스를 나가는 문 옆 자리에 눈에 밟히는 사람이 있었다. 시답잖은 핑계로 대화를 건넨 후, 몇 번 밖에서 따로 만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과 교제를 시작했다. 각자의 일이 많아서 데이트를 자주 하지는 못했지만, 매일 짧게나마 없는 시간을 쪼개며 사소한 일상을 함께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우리는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고,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당시 일에 대한 번아웃이 세게 왔던 우리는 사업을 그만두고 각자 오피스를 나오게 되자 만나는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한 남들이 취업을 위해 스펙 쌓을 시간 동안 대학 생활을 창업만으로 물들였던 우리는 다가오는 불안한 미래에 자기 앞길을 찾기에도 급급하여 서로의 아픔을 공감해 줄 여력이 없었다. 항상 옆에 있을 줄 알았기 때문에 무심함과 서운함이 조금씩 쌓여가도 그대로 내버려 두었고, 그들이 익숙함으로 무르익을 때 즈음 우리는 끝내 서로의 소중함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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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어떤 일을 해도 그때만큼의 성취감이 없고, 어떤 사람을 만나도 그때만큼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 매일이 행복했던 터라 후회는 없지만 문득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것들이 미련에 남는다. 오늘 아무도 없는 아침을 걸으며 그때의 그리움을 꺼내본다. 기억을 되살려보며 지금의 나는 그때와 비교했을 때 많이 변했는지도 확인해 본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삶에 대한 열정이 많이 사라진 듯하다. 그리고 그 사라진 자리를 게으름이 대체한 듯하다. 아쉽지만 다시 그 자리를 빼앗으려면 나를 이끌어줄 확실한 목표가 있어야 할 듯싶다. 지금 나는 마치 항구에 정박한 출항 예정이 없는 배와 같다고 느껴진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저 멀리 사람이 보인다. 기억에 저편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 빠른 걸음으로 그를 따라잡는다. 얼마 만에 만나는 사람인가. 반가운 마음에 숨을 헐떡거리며 인사를 건네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뚝뚝한 대답뿐이다. 애써 무안한 표정을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전보다 힘차게 걸어간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살짝은 의기소침해진 마음으로 수비리(Zubiri)에 도착한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토르티야(Tortillas), 즉 스페니쉬 오믈렛(Spanish Omellete)을 먹었다. 감자가 들어간 오믈렛으로 스페인의 전통 음식이라고 하니 안 먹어볼 수 없었다. 다만 감자라는 탄수화물이 주는 포만감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두 개를 시켰다가, 음식을 남기는 흉악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평소에 나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때의 기억을 계기로 스페니쉬 오믈렛은 앞으로의 순례길 여정에서 아무리 배가 고파도 꼭 한 개씩만 시키게 된다.)


밥을 다 먹고 나니 11시 밖에 안되었다. 알베르게가 이렇게 일찍 열지도 않고, 벌써 쉬기에는 너무 이르다 생각해서 내친김에 팜플로나(Pamplona)까지 걷기로 결심했다. 만약 그곳에 잘 도착하게 된다면, 나는 오늘 37km를 걷는 것이고, 남들이 3일에 가는 코스를 2일에 주파하는 것이다. 누가 보면 혼자 산티아고 걷기 대회하는 줄 알 정도로 무리한 일정이기는 하지만, 수비리와 팜플로나 사이에는 알베르게가 연 마을이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11시부터 수비리에 혼자 지루함과 싸우는 것은 걷는 것보다 더 고통이라 생각했고, 내심 팜플로나에서 어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도 되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도저히 끝이 안나는 길이었다. 목적지에 10km 정도 남긴 시점부터는 종아리와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몸이 힘들다 보니 사색을 즐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로지 머릿속은 '어떻게든 해지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지금 상황에 맞는 이적의 '같이 걸을까'를 들으며 오랜만에 가사를 음미해 본다.


"어느 곳에 있을까. 그 어디로 향하는 걸까 누구에게 물어도 모른 채 다시 일어나.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고 골짜기를 넘어서 생에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노래를 듣고 있자니 문득 이 길을 걸으며 찾고자 했던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에 대한 해답을 산티아고에 도착해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30년 인생 동안 못 찾았던 것을 갑자기 그곳에서 깨닫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거기에 어떤 고민이건 다 해결해 주는 마법주문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저 이 길을 걸으며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고, 내가 누구인지를 진정으로 찾는 게 우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가삿말처럼 산도 오르고 강도 건너고 골짜기도 넘으니 이윽고 팜플로나에 도착했다. 알베르게를 본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벤치에 강아지와 함께 앉아있던 비니 쓴 남자가 괜찮냐고 물었다. 자초지종 오늘 40km 가까이 걸은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손짓한 뒤, 이내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타났다. 다리가 저리고 힘들 테니까 이거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며 마그네슘 서너 개를 건네주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벤치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이름은 에릭이었고 강아지랑 같이 걷는 순례자였다.


"개랑 같이 걷는 게 가능한가요? 안 힘들어해요?" 다소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저보다 더 잘 걷는걸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에릭이 말했다.


덩치가 커서 든든하면서도 얌전한 녀석이었다. 순례길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생각하며, 첫 등장부터 남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에릭을 뒤로하고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팜플로나의 알베르게는 규모가 상당했다. 다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150명은 거뜬히 자고도 남을 규모였다. 어제오늘 그토록 찾아다니던 순례자는 여기 있으면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볼 수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모든 정비를 마친 후 나는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저 멀리 한국어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분이신가요?"

부산에서 온 동갑내기 친구와 대구에서 온 형님이었다. 원래 라면을 먹기로 했었다며 나에게 괜찮으면 같이 먹자고 제안을 했다. 팜플로나는 대도시라 그런지 마트에서 라면을 팔고 있었다. 라면과 밥으로 지친 몸을 달랜 뒤 맥주 한잔 하면서 셋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원래 공대생이었는데, 사기업에서 일하다가 이번에 공기업으로 이직했다고 말했다. 평소에 트래킹을 좋아하는데 마침 입사까지 시간이 남아서 순례길을 왔다고 했다. 형님은 예전에 산티아고를 왔었는데 그때 기억이 너무 좋아서 다시 왔다고 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몸이 너무 피곤한 나머지 내일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하기로 하고 먼저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내 침대 밑에서 자는 브라질 아저씨 역시도 내게 말을 걸었는데 사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종아리와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고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했다.


이틀간의 무리한 걸음으로 몸이 너덜너덜해졌다. 몸이 괜찮아야 마음도 편안해진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 순례길에 시합을 하러 온 게 아닌데, 의도치 않게 내 신체의 능력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옛말은 틀린 게 하나 없다. 혼자는 빨리 갈 수 있지만 오래갈 수는 없다. 산티아고까지 30일 정도 남은 시점에서 부상 없이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서는 함께 천천히 걸어야 한다. 내일부터는 보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맑은 생각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랜만에 편안한 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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