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쫓아가느라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낸 건 아닌지

[3일 차] 팜플로나 > 푸엔테 라 레이나

by Zorba

[Day 3] Pamplona > Puente La Reina


눈을 떠보니 정확히 5시 40분이다. 침낭을 개고,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 널어둔 빨래를 챙기고, 배낭을 메고 알베르게를 나선다. 산티아고에 오고 규칙적인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몸이 이에 맞는 생체리듬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10시 반에 취침하고 6시 반에 기상하는, 강제로 국가가 정해주는 반복적인 루틴을 살던 군생활 이후 약 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살면서 신체능력이 가장 뛰어났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전역과 동시에 나는 알람 없이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날 수 없는 몸을 가지게 되었고, 매일 피곤에 찌든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이의 앞자리가 3으로 바뀌는 시기를 목전에 두고 있자니, 루틴과 건강에 대해 조금은 깊은 고찰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 하루종일 혼자 걷다 보니 외로움이 사무쳤던 이유였을까, 알베르게에서 만난 대구 형님과 부산 친구에게 오늘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 같이 걷자고 제안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우리 셋은 더러워진 거리를 청소하고 있는, 까미노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낯선 풍경을 지나치며, 팜플로나를 유유히 떠나갔다. 알고 보니 일요일이었던 어제는 마침 11월 2일로, 가톨릭 전례력에서 죽은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었던 것이다. 어제 거리에 사람이 그리 많았던 이유도 설명이 된다. 나 역시 그래도 무늬는 가톨릭인지라 돌아가신 가족들을 생각하며 부디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기를 속으로 기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수한 빵냄새가 풍겨왔다.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은 간단히 아침을 먹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나는 별다른 것을 챙겨 먹지 못했던 터라 베이커리에 들어가 빵 몇 개를 사 왔다. 혼자 민폐가 된 것만 같은 죄책감에 허겁지겁 끼니를 해결했다. 두 사람은 걸음이 꽤나 빨랐다. 그 전날에 내가 무리를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들의 걸음을 맞추자니 버거운 느낌이 들었다. 6km를 지났을 무렵,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잠시 쉬자고 했다. 이때부터 혼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다시 걷기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페이스를 완전히 잃고 그들을 허겁지겁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푸른 하늘에 태양이 넓은 들판을 환하게 비추는 아름다운 순간에도 나는 그저 앞사람의 뒤통수만 따라가느라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불행한 걸음 속에서도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역시나 음식이었다.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고 도착한 마을의 초입구에 편의점에 가까운 조그마한 가게가 있었다. (이름은 La Tiendica de Mertxe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치즈, 햄, 반숙 프라이가 올라간 바게트와 눈이 마주쳤다. 꼭 자기를 먹어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아서 잽싸게 핫초코와 함께 주문했다. 지금까지 순례길을 걸으며 먹은 빵 중에 단연코 가장 맛있었다. 어떤 음식이 간단해 보이는데 맛있으면 가끔 집에서 해 먹고 싶은 경우가 있는데, 정확히 그 조건에 부합하는 녀석이었다. 한 개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또 한 번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오늘 순례길의 하이라이트인 용서의 언덕(Alto de Perdon)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부터 날씨가 점차 흐려지더니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험난한 경사를 타고 오르는 길은 땅이 수분을 머금어 진흙으로 변해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분위기가 확 달라질 수 있을까 신기해하면서도, 문득 명성에 걸맞은 장소라 생각했다. 저 앞에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는 이들도 보인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우리에게 먼저 가라는 손짓을 하며,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바람에 날아갈까 모자를 한 손으로 누른 채 언덕에 다다르니, 자욱한 안개 사이로 순례자들을 형상화한 청동 조형물이 나타난다. 평소에 자연 속에 남겨진 인간의 흔적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조금 더 자세히 감상하고 싶었지만, 함께 걷던 두 사람이 언덕을 잽싸게 내려가기 시작했기에 사진 몇 장만 급히 남기고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언덕 너머에는 일렬로 세워진 풍력발전기들이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서서히 받으며 자기 본분을 다하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언덕이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을 법한데, 마침 이름이 용서의 언덕인지라, '용서'에 대한 단어를 굳이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나는 그동안 누군가에게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가. 반대로 누군가의 잘못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지 못한 적은 없었는가. 지난날 지극히 개인적이었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 영혼의 편안함을 우선시했던 순간들로 인해 상처받았을 다른 영혼들을 생각하며, 불어오는 바람에 젊은 날의 크고 작은 잘못들을 날려보려 한다.


언덕을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급했다. 그 길에는 주먹만 한 돌이 가득했다. 흡사 누군가 트럭으로 냅다 부어놓은 것만 같았다. 순도 100%의 돌밭은 꽤나 미끄러웠고, 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땅만 보고 걸으며 나를 지탱하는 두 발에 온 힘을 전달했다. 돌 사이의 틈새로 발이 푹푹 빠지면서 사방으로 발목이 꺾였으며, 누군가 멀리서 보면 탭댄스를 하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흙과 돌이 적절한 비율로 석였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있었다. 덕분에 푸엔테 라 레이나의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양말을 벗었을 때, 발가락 사이사이 절묘한 위치에 물집이 잔뜩 부풀어 오른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간단한 정비를 마친 후 숙소 앞 벤치에 앉아 지친 몸을 달랜다는 핑계를 삼아 담배를 태운다. 저 멀리서 한국인 아저씨 한분이 걸어오시더니 내 옆에 앉는다. 강원도 태백에서 오셨는데 전문 산악인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분이셨다. 이번이 7번째 산티아고라고 하시며, 이 길을 걷는 게 좋아 시간 날 때마다 오신다고 했다. 생장에서부터 하루도 안 쉬고 무리하게 걸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한껏 못생겨진 내 발을 보며 아저씨께서 한 말씀하셨다.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어. 이왕 온 거 즐겨야지. 돈 쓰면서 건강을 잃는 것보다 어리석은 짓은 없어. 그리고 물집은 알베르게 들어가서 바로 터트려. 그대로 내버려 두면 내일 걸을 때마다 고통스러울 거야. 보아하니 언덕에서 내려오는 자갈길을 빨리 내려왔나 보네. 뭐가 그리 급하다고."


잠시 멍을 때리다가 아저씨를 따라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부산 친구에게 바늘을 빌리고, 아무도 없는 주방에 홀로 앉아 뾰족한 바늘과 물집을 번갈아가며 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애당초 겁이 많았던 나는 스스로 물집을 찌를 용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안 터트리자니 앞으로 걸을 날들이 더 무서워졌다. 조심스럽게 물집을 바늘로 톡톡 건드리자 고여있던 물이 이때다 싶어 흘러나왔다. 이 녀석들도 조그마한 곳에 갇혀있느라 힘들었나 보다. 막상 물집을 터트려보니 생각보다 그리 아프지 않았다. 역시 두려움이라는 것은 생각의 형태로 있을 때 그 크기가 가장 큰 듯하다. 해보지 않고 걱정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힘을 내서 나머지 물집까지 모두 터트린 후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긴장을 했었나. 딱히 한 것도 없는데 괜히 식은땀이 났다.


물집과의 사투를 마친 후, 아까 태백 아저씨가 했던 말이 괜히 머릿속에 맴돈다. 산티아고로 걷기 시작한 날부터 단 하루도 이 길을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지난 이틀은 내가 무리를 하는 바람에 그랬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오늘은 괜히 같은 걷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온전히 나의 길을 걷지 못했다.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못 먹었고, 용서의 언덕을 스치며 지나갔으며, 내리막길을 급하게 내려오느라 물집도 생겼다. 돌이켜보면 나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남들의 의견에 휩쓸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를 올바르게 지탱해 줄 '중심'이 없었으며, 좀 더 나쁘게 말하면 줏대가 없었다. 그렇게 오늘처럼 남들을 쫓아가다 보니 소중한 시간들을 의미 없이 흘려보냈으며, 점점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문득 내가 좋아하던 노래의 가삿말이 떠올랐다. "급히 따라가다 보면 어떤 게 나인지 잊어가 점점. 멈춰야겠으면 지금 멈춰. 중요한 것들을 너무 많이 놓쳐." 19살 수험생 시절 때 많은 위로를 받았던 노래였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정확히 그때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산티아고에 온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남들에게 의존하는 어리석은 짓을 이제는 그만하자고 속으로 다짐해 본다. 때마침 푸엔테 라 레이나의 성당 뒤편으로 샛노랗게 물들어가는 하늘은 내 결심의 농도를 나타내는 듯하다.


저녁을 먹고 알베르게를 둘러보니 다른 순례자들이 놓고 간 책들이 보인다. 그중 특히 '순례자'라는 담백한 제목의 책이 가장 눈에 띈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책 '연금술사'의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가 쓴 책이었기 때문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파울로 코엘료도 저널리스트로 일하다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 순례자는 그의 자전적 이야기에 약간 픽션을 가미한 듯해 보였다. 책에 마침 내가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아침 일찍 푸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했다. 이곳은 산티아고로 향하는 모든 길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입니다."


찾아보니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은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 몇 개의 길이 여기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나는 문득 이 산티아고 길에 담긴 여러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의미 부여를 좋아하는 나에게 더없이 흥미로운 주제였다. 이제 와서 찾아본다는 게 웃기기는 하지만, 이제라도 찾아보는 게 어디냐며 열심히 핸드폰으로 산티아고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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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성 야고보(Saint James)는 스페인어로 산티아고(Santiago) 다. 야고보는 갈리려야 호숫가에서 어부로 일하다가 예수의 부름을 받고 따라가게 된다. (그 유명한 '사람을 낚는 어부' 이야기이다.) 야고보는 예수의 부활 이후 다른 사도들처럼 복음을 전파하게 되는데, 주로 이베리아반도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에서 활동했으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순교를 하게 된다. 그 후 야고보 무덤은 스페인 북부 지방에 매장되었지만, 8세기경 이슬람교도들의 스페인 침공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러던 중 9세기에 우연히 별빛이 쏟아지는 들판의 한 동굴에서 그 유해를 찾게 되었고, 그곳에 성당을 세운 후 이름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로 지었다. 직역하자면 '별이 비추는 들판의 성 야고보'라는 뜻이다. 실제로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그의 유해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참고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배로 옮겨질 때 가리비에 쌓여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는 전설에 따라 가리비는 산티아고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세계 3대 성지순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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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재밌는 이야기이다. 예전에 성당을 다녀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는 내용이 나오니 더 흥미롭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생각났다. 인간의 언어는 다른 동물들의 것과는 달리 특별해서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야기는 사람들을 모으는 힘이 있었으며, 나아가 공통된 믿음을 가진 집단을 만들어냈다.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는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았으며, 그들이 공통된 신념을 향해 행동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마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사상이 현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두 이야기를 믿으며 그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이르는가?'라는 질문은 종교인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위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꽤나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신화 같은 산티아고 이야기는 적어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공통된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성 야고보가 순례를 했던 길을, 그의 상징인 가리비를 배낭에 매달고 걸음으로써, 종교인들은 알게 모르게 그와 같은 '순례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값진 경험을 나 혼자가 아닌 이 길을 걸었던, 걷는, 걸을 수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때문에 이 순례길이 1000년 이상 유지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이 길에서 종교인은 생각보다 많지는 않은데, 그렇다면 무신론자들이 순례길을 걷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해보고 싶은 질문이 생겼다.


"종교가 있나요? 왜 순례길에 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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