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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이머문자리 Jan 11. 2024

2023년 '나'를 가설 검증한 결과

하고 싶은 일을 했던 23년에서 커리어 Pivoting

2023년은 '나'를 검증하는 한 해였다.

대기업 13년 반, 스타트업 3년 반을 거친 이후로 초기 스타트업 시니어 멤버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두 곳의 초기 스타트업에 몸 담아보면서 '나'를 검증했다.


나의 가설은 아래와 같았고, 이와 관련된 글은 브런치에 남겨두었다.

대기업, 스타트업을 충분한 시간 동안 경험하고, 영업 실무와 투자 업무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스타트업을 더 빠르게 성장하는데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두 스타트업에서 CFO, COO로 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던 소중한 한 해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두 곳에서 업무를 종료 지었다. 누군가는 Part time으로 일했냐고 할 정도로 길지 않은 기간들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안에서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웠고, 직접 경험하면서 내가 부족한 점, 원하는 업무에 대해서 조금 더 또렷하게 만들 수 있었다.



1. Seed 라운드 스타트업 CFO로 합류 (2월)

정식 채용은 아니었고, 투자가 성사되면 정식 채용되는 것으로 하고 IR 라운드를 대표와 함께 준비했다. 여기서 나는 처음으로 IR 자료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보는 경험을 했다. 직전 경력이 투자심사역이었던 터라, 다양한 IR 자료를 봤었지만, 직접 만들어 보는 것에 있어서는 첫 경험이었다.


IR 자료를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고된 작업이었다. 투자심사역 하면서 받았던 IR 자료를 대수롭지 않게 봤었던 나를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IR 피칭 자체는 대표님이 하셨고, 나는 서포트만 했다. 그런데 IR 피칭하면서 느낀 것은 'Seed 라운드는 자료보다는 대표구나.'였다. 초기이기 때문에 가진 것이 많지 않아서, 수치적으로 아주 매력적인 자료가 만들어질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대표의 열정과 추진력을 어필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물론, 잘 정리된 IR 자료는 미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교두보는 되었다.


이 첫 번째 Senior member 기회는 급여가 없이 컨설턴트 정도의 포지션에서 했던 일이었다. 사업모델(business model, BM)이 나름 매력적이었고 재밌다고 생각해서 나도 나름의 열정으로 임했던 것이다. 다만, 투자 유치가 늦어지면서 나도 생계를 위해서는 이직을 해야 했기에, 4월 말 경에는 다음 스타트업으로 옮기게 되었다.


2. Seed 투자 유치한 스타트업 CFO로 합류 (4월)

Seed 투자 유치를 마친 지 얼마 안 된 스타트업에 CFO로 합류했다. 이번 스타트업은 내가 해당 BM에 대해서 친숙하지 않았고, 방향성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의 사업적인 직관과 수익 분석 등의 CFO로서의 역량을 검증해 보고자 합류를 결정하게 되었다.


CFO로 합류하고 보니,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60여 명의 구성원이 있었고, 나는 CFO여서 실무를 하는 현업부서와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당장 매출도 많지 않다 보니, 비용 관리만 하면 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BM에 대해서 깊게 이해를 못 하다 보니, 뭔가 안갯속에서 뒷집 지고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이번 경험으로 내가 생각보다 더 현업에서 실무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리를 하더라도 현업 부서의 영업관리를 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CFO이다 보니 현업에서 추진하는 사업을 분석해야 했는데, 내가 말하는 아이디어들은 상당 부분 현업부서의 방향과 상반될 수밖에 없었다. 반대를 위한 견해가 아니고, 점검이 필요한 사항들을 피력하였음에도 현업 부서에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께도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서 내 견해를 밝힐 수밖에 없었는데, 몇몇은 대표님의 방향과 배치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표님과도 점점 거리감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나도 이 사업이 이렇게 흘러가도 되는지 잘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반대할 수 있는 논리가 탄탄하지는 않았다.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하려던 이유는 대표와 토론을 하면서 전략적으로 더 우수한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 나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내가 잘 모르는 BM이다 보니, 토론이 잘 되지 못했던 듯하다. 내가 기대했던 업무의 방향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1. 번의 스타트업이 투자유치 이후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어서 다시 합류해 주기를 요청하셨다. 그래서 내가 더 이상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에 남아 있지 말고 넘어가기로 8월에 결정했다.


CFO의 기능적인 부분을 직접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자금/재무 관리, 신사업 분석 등을 수행했는데, 초기 stage이다 보니 내 눈에는 잘못된 전략 같아 보이지만, 밀고 나가야 하는 상황도 많았던 듯하다.


3. 1번의 회사 투자 유치 이후 2개월이 지난 시점 COO로 합류 (8월)

1, 2의 경험을 통해서 초기 스타트업은 CFO가 필요 없다고 나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COO를 해서 운영 총괄을 하기로 하고 합류했다. 타이틀은 COO였지만 CFO, CHRO, CSO의 업무도 거의 다 했던 듯하다. 그리고 막판에는 IR lead까지 해서 다음 라운드 IR 자료를 만드는데 상당한 리소스를 투입했다.


그런데 이번 직무를 하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것은 '채용'이었다.

회사의 Vision, Mission 등이 명확하게 세팅되지 못한 채로 공개 채용을 했는데, 양질의 지원자 확보가 어려웠다. 그래서 최고의 직원을 뽑기 위한 노력보다는 보편적인 인력을 활용해서 일이 굴러가게 하는 방향으로 채용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2명 채용에 2개월이 소요되었다.


면접은 20여 건을 진행했던 것 같다. 그중에 합격자 통보도 10여 차례 했는데, 합격 통보를 하면 입사를 취소했다. 합격 통보 이후가 훨씬 긴장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렇게 10월 중순이 되어서야 2명의 직원을 채용했다. 직원을 채용해서 내 일을 좀 덜면, 내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을 기대했는데, 오판이었다. 새로 채용한 직원들이 주니어 레벨이다 보니, 제대로 된 업무지시를 하지 못하면 일이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일도 하면서 주니어 업무 지시도 해야 돼서 배로 바빠졌다.


아쉽게도 주니어들의 업무 학습 속도도 내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많은 스타트업 책에서 우수한 직원들을 채용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Seed 라운드의 회사가 우수한 직원을 채용하기는 또 어렵다 보니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그래서 초기 스타트업에서 시니어로 일하려면 지인 중에 함께 일하자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좀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인력 확보가 초기 스타트업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게 5개월 가까이 이 회사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야구 대회 개막식 준비도 하고, 초중고 학교에 예체능 체험반 운영도 했다. 대표님이 추구하는 방향의 다양한 사업들이 '되게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사업의 한 꼭지씩 추진되는 것이 재밌어서 신나게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3~4개월 차에 들어서면서 대표님이 추진하는 사업이 중구난방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사업적으로 집중할 것들을 정해서 추진하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대표님도 대표님이 하고 싶은 다양한 사업을 다 하려는 생각을 버리지는 못하셔서 의견의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의견의 충돌만으로는 나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부딪히고 이야기 나누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게 하려고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다만, 이런 과정에서 대표님은 사업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조언받는 대상을 외부의 다른 곳으로 돌렸다. 외부에 누군가 대단한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시는 것을 보면서, 나의 역할도 끝나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일들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나도 이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2023년 말에 이 스타트업에서 퇴사를 했다.



여기까지가 2023년 내가 겪은 좌충우돌 초기 스타트업 시니어 정착기였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나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된 것 같다.


아래는 나의 좌충우돌 경험을 통해서 내가 스스로 정리한 내용이다. 이 부분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래 글로 봐도 공감은 하겠지만, 현실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다.

1. 스타트업 기존 경영진의 경영 철학과 나의 생각이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함께하기 어렵다.

2. 내가 잘 모르는 BM에 있어서는 발휘할 수 있는 나의 역량이 제한된다.

3. 사업 전략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은 경영진과 지속적으로 함께하기 어렵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된 부분이 있다.

1. 나는 관리 Only인 업무보다는 실무를 하면서 관리 업무가 추가되는 형태를 선호한다.

2. 나름 나를 아메바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즉, 어디서든 잘 맞춰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도 나의 주관이 뚜렷한 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주관과 너무 다른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데에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나의 다음 커리어는 1) 내가 잘 알거나, 좋아하는 BM에 관한 사업에서 2)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방향으로 정했다. 일종의 경력 Pivoting이다.

다행히도 운이 좋아서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곳에 1월 중순에 합류하게 되어 내 다음 경력에 도전한다. 그곳도 나름의 스타트업이다.


2023년은 내가 표류한 한 해 같아 보이겠지만, 기점마다 배움이 많았던 한 해다. 어디 정체되기보다는 흘러 다니면서 갈고 닦이는 것이 좋았다.


헤더 이미지 출처 :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ED%95%B4%EC%A7%88%EB%85%98-GPPAjJicemU?utm_content=creditShareLink&utm_medium=referral&utm_source=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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