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꼼꼼히 살피고 구입하는 편이다. 목차는 물론이고 본문도 최소 열 페이지는 정독한 뒤 ‘아, 이건 좀 괜찮다’ 싶으면 구입한다. 너무 많이 읽어버리면 구입이 망설여지니 그 이상 읽고 싶어도 꾹 참는다. 번역서의 경우 원서의 출간 연도나 다른 번역서는 없는지 등도 확인한다. 가끔 근사한 표지에 혹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본문이 별로면 표지에 대한 매력도 반감되기에 자연히 거품이 걸러진다. 같은 이유로 추천사도 웬만해선 참고하지 않는다.
물론 아무리 면밀히 살피고 구입해도 거기에는 늘 온도차가 생긴다. 책이란 사기 전과 후의 인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책의 소유권이 서점에서 내쪽으로 넘어오는 순간부터 책을 대하는 까다로움과 관대함의 성격이 달라진다. 이에 따라 인생 책이 될 거라 확신했던 책이 큰 실망을 안겨줄 때도 있고, 처음에는 그냥 무난하다고 생각했던 책이 돌연 인생 책으로 등극하게 될 때도 있다. 즉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스러운 책만 구입하며 살 수는 없다. 이는 책을 상시적으로 읽는 자의 숙명이다.
다만 어떤 책이 실망스러웠다고 해서 거기 쓴 돈을 아깝게 여기진 않는다. 습관적으로 책을 사 읽다보면, 각각의 책에 각각의 돈을 지불한다기보다 책 읽는 활동에 매달 얼마씩 돈을 지불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니까. 정말 만족스러운 책 한 권의 가치는 매겨진 가격을 훌쩍 넘어선다. 따라서 책 한 권 한 권에 대한 만족은 달라도 전체로 보면 늘 비슷한 정도의 만족도가 유지된다. 내가 책을 꼼꼼히 살피는 이유는 예의 그 비슷한 정도를 유지하기 위함이지, 내 예상이 반드시 맞아들 것이라 확신해서가 아니다.
아울러 다소 실망스러운 책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나는 이런 걸 재미없어하는군’하며 나에 대해 이전보다 조금은 더 잘 알게 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지금은 이래도 나중에는 이런 게 또 재미있어질지 모르지’라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요컨대 내게 독서란 이런 과정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