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서 Aug 11. 2021

여기는 카카오 독

[단편 동화]

주인님이 카페를 연지 두 달이 다 됐어요.

카페 이름은 ‘카카오 독’. 우리 동네 하나밖에 없는 애견 카페지요. 분홍색 하트가 그려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에 내 방이 있어요. 하얀색 울타리 사이로 따듯한 방석이 깔렸어요. 안으로 쭉 들어가면 주방이 있고 그 사이에 손님들을 위한 동그란 식탁이 다섯 개 있어요.

보통 애견 카페에는 여러 마리의 개나 강아지가 같이 지낸다고 해요. 하지만 여기는 나 혼자예요. 주인님 집은 카페 이 층에 있고요. 일이 끝나면 주인님은 위로 올라가니, 사실 종일 내가 카페를 지킨다고 봐야지요.  

나는 초콜릿 빛이 자르르한 슈나우저예요.

주인님이 그랬는데, 카카오는 초콜릿을 만드는 콩이래요. 그래서 카페 이름을 내 이미지에 맞게 ‘카카오 독’이라고 한 거예요. 사실 내 이름은 봉숙이예요. 그래서 ‘봉숙이 하우스’는 어떨까 고민했지만…… 주인님 친구들이 반대했어요. 이름이 좀 촌스럽다나요? 난 카카오든 봉숙이든 다 좋아요.  

주인님은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예요. 얼마 전까지 초등학교 보안관으로 일을 했어요. 석 달 전부터 다시 일하기로 마음먹고, 떡볶이 가게와 호떡집 중에서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카페를 열기로 한 것은 내가 특별히 커피를 좋아해서예요.

“봉숙아, 아무래도 너 때문에 커피를 팔아야겠다. 네가 커피를 보통 마셔대야 말이지. 허허.”

카페도 그냥 카페가 아닌 애견카페로 말이에요. 그래야 내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고요. 주인님이 나를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지 알겠죠?

카페를 열기 전에는 주인님이 남긴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어요.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식은 커피는 맛이 별로예요. 이젠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직접 만들면 되거든요. 주인님이 커피 가루와 기계를 사 와서 커피 만드는 걸 어깨너머로 배웠어요.

별로 어렵지 않더라고요. 쉿! 주인님은 아직 몰라요. 나이 많은 분들은 이런저런 걱정이 많잖아요. 그래서 굳이 얘기하지 않았어요.      


요즘 우리 카페에 매일 오는 할머니가 있어요.

“아유, 우리 동네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카페가 생겼네.”

할머니는 꽃이 달린 모자에 하얀 블라우스와 까맣고 긴치마를 입고 처음 나타났어요. 다른 손님들과는 달리 혼자서 말이에요.

“여기 이름이 카카오 독인 게 아마 너 때문인가 보다. 카카오로 초콜릿을 만들잖아. 그치, 카카오!”

할머니는 참 똑똑했어요.

‘맞아요. 근데 내 이름은 카카오가 아니라 봉숙이예요.’

나를 쓰다듬어주는 할머니 손을 핥고 있는데, 뒤에서 메뉴판을 들고 주인님이 가까이 왔어요. 할머니는 주인님을 보자 손을 딱 멈추지 뭐예요.

“혹시, 김창수 씨 아니세요?”

“저, 미스 고…….”

깜짝 놀란 주인님 때문에 하마터면 메뉴판에 맞을 뻔했어요. 김창수는 우리 주인님 맞아요. 할머니가 어떻게 우리 주인님을 아는 거죠? 내 오 년 평생 이렇게 놀라는 주인님 모습은 처음이었어요.

그날 주인님은 다른 손님은 안중에도 없이 할머니와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알고 보니 두 사람 젊어서 좋아하던 사이였나 봐요. 아, 얼마나 기쁘고 떨렸겠어요. 사실 우리 주인님이 나이만 많지 아직 총각이거든요.

그나저나 그날 이후로 주인님이 변했어요. 전에는 카페에 내려오면 나부터 챙겼거든요. 아침에 먹을 사료를 밥그릇에 가득 부어주고, 물도 새로 따라주고 말이에요.

이젠 비어있는 밥그릇은 보지도 않고, 카페에 뭔가를 칙칙 뿌리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봉숙아, 아무리 애견 카페지만 개털 냄새가 좀 심하지 않냐?”

개가 살고, 개들이 오는 카페에 개털 냄새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내 코엔 주인님이 뿌리는 거, 그게 더 냄새가 지독하거든요.’

내가 꽃냄새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까맣게 잊어버렸나 봐요. 또 멀쩡한 커피잔 가지고는 얼마나 뭐라고 하는지 몰라요.

“아무래도 꽃무늬가 있는 화사한 걸로 살 걸 그랬어. 커피잔이 너무 다 칙칙해.”

쳇, 오 년 묵은 내 밥그릇이나 좀 바꿔 주지 그래요.

게다가 할머니 때문에 커피 종류가 딱 한 가지로 줄었어요. 여러 가지 커피를 할 필요가 없다나요. 이제부터는 몸에 좋은 차를 마셔야 한다며 이상한 냄새가 나는 차로 메뉴가 다 바뀐 거예요. 

쌍화차, 둘레차, 머귀차, 둥굴레차……. 

이게 다 할머니 때문이에요.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에요. 남자에게 여자 친구란 존재는 그만큼 소중하니까요.

생각해 보면 그동안 내가 주인님에게 조금 무심했던 것 같아요. 나도 여자 친구 때문에 정신이 없었거든요. 내 여자 친구 루비도 얼마 전 우리 카페에서 만났어요.

루비는 카페에 매일 오는 단골손님 가운데 하나였지요.

헤헤, 루비 얘기만 하려고 해도 웃음이 나오네요. 루비가 좀 많이 예쁘거든요. 전에 주인님과 함께 본 만화 영화가 있어요. 제목이 ‘숙녀와 건달’인가 그런데, 거기에 나오는 여주인공 ‘숙녀’와 아주 똑같이 생겼어요. 얼마나 예쁜지 알겠죠?

루비를 만난 뒤로 그 영화를 열 번도 넘게 보았어요. 숙녀 개가 길거리 건달 개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서 귀여운 강아지 네 마리를 낳고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예요. 완전히 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예요. 딱 한 가지, 남자 주인공이 건달이라는 것만 빼고요.

사실 내가 취미가 좀 남다르거든요. 애견 카페에 오는 녀석들과 가끔 얘기를 나눠 보면 나 같은 개는 없더라고요.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뭘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고작 ‘양쪽 발로 악수하기’, ‘높은음으로 노래하기’, ‘처음 보는 풀 뜯어먹기’ 정도더라고요. 쳇, 이것 수준 차이가 좀 나야 말이죠.

나는 영화 보는 게 참 좋아요. 주로 나 같이 잘 생긴 개가 나오는 영화 말이어요.

‘마음이’, ‘101 달마시안’, ‘머나먼 여정’, 모두 내가 감명 깊게 본 영화예요. 그런데 첫눈에 반해서 마음을 두고 있던 루비가 나랑 취미까지 같다는 걸 알고 어찌나 반갑던지요! 하하하.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지요. 아! 그런데 사랑은 쉽지 않아요.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루비, 안녕!”

“오빠 또 그 옷이야?”

“왜, 이 옷이 어때서. 이 옷 멋지다고 했잖아.”

“처음엔 개가 호랑이 무늬를 입고 있는 게 재미있어서 그랬지. 오빠 옷이 모두 그걸 줄은 몰랐어.”

주인님이 골라주는 대로 그냥 가만히 있을 걸 그랬어요. 루비가 좋다고 해서 전부 호랑이 무늬를 고집한 건 정말 큰 실수예요. 옷이야 새로 사면 되지요. 그런데 문제는 또 있어요.

“루비, 오늘은 기분이 어때?”

“그냥 그래.”

“이 봉숙이 오빠랑 영화나 하나 볼까?”

“아유, 오빠 이름이 봉숙이가 뭐야, 봉숙이가! 그건 여자 이름 아니야?”

“허,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네가 정 싫으면…… 이름 바꿔 달라고 할게.”

나는 내 이름에 아무 불만 없지만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겠어요. 그러려면 주인님이 나를 도와줘야 하는데 요즘 다른 데 정신이 나갔으니 어쩔 수 없어요.


연애 선배로서 내가 할머니와 먼저 친해지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면 주인님도 내 상황을 이해하고 루비와 나의 관계를 도와주지 않을까요.

쌍화차를 나눠 마시고 있는 주인님과 할머니 곁으로 내가 먼저 다가갔어요.

‘주인님, 그림 좋습니다. 헤헤, 여친 소개 좀 해주세요!’

무조건 옆에 발라당 누워 애교를 부렸지요.

“이 녀석이 왜 이래? 저리 가서 친구들이랑 놀아.”

주인님은 내가 가까이 오는 게 불편한가 봐요. 도대체 왜 그러죠? 할머니 앞에서는 내게 그렇게 무뚝뚝할 수가 없어요.

보다 못한 할머니가 내 목을 간질여 주며 말을 걸었어요.

“정말 귀엽게 생겼네. 카카오.”

내 이름은 카카오가 아니라 봉숙이라는 걸 할머니는 아직도 모르나 봐요. 그만큼 주인님이 내 얘기를 하지 않았단 거지요. 정말 섭섭했어요.

“나도…… 사실은 일 년 전에 너와 똑 닮은 슈나이저가 있었단다. 그 애는 너보다 빛깔이 조금 더 짙었어.”

내 목을 간질이던 할머니 눈시울이 갑자기 빨개졌어요.

“그 녀석 좋은 데 갔을 거야. 이제는 잊어.”

그런 할머니를 보고 주인님은 마음이 아픈지 쩔쩔맸어요. 아, 그랬구나. 처음에 할머니가 나를 보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했어요.

주인님 말로는 할머니 개가 하늘나라로 가고 난 후론 아무도 키우지 않는데요. 그냥 이렇게 카페에 와서 우리나 본다고 하네요. 그래서 주인님이 내게 그렇게 살갑게 대하지 않았나 봐요. 나랑 너무 친한 척하면 여자 친구에게 미안해서요.

주인님은 할머니 앞에서는 내게 입도 벙끗 못하더니, 할머니가 돌아가고 나서야 내게 왔어요.

“봉숙아, 오늘 하루는 어땠어?”

‘칫, 주인님 때문에 스트레스 좀 받았네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도 모르게 발라당 누워서 애교를 부리고 말았네요.      


그날 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잠이 오지 않았어요.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차라리 따듯한 커피나 한 잔 마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나는 주방으로 갔어요. 주방에 작은 불을 켜고 커피 가루를 찾았어요. 커피 기계를 켜고 커피 가루를 동그란 통 안에 꾹꾹 눌러 담아 버튼만 누르면 향긋한 커피가 유리그릇에 내려올 거예요.

그런데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렸어요. 주인님은 이 층에 있고, 이 카페엔 나밖에 없을 텐데 말이에요.

“봉숙이야?”

앗, 주인님 목소리예요. 소리는 계단 쪽에서 들렸어요. 이 밤에 왜 나를 찾는 걸까요?

‘왜요, 주인님!’

“기침이 그렇게 심한데 내가 그쪽으로 가지 않아도 되겠어?”

주인님에게 저렇게 말랑말랑한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어요.

‘기침이라뇨. 저녁에 먹다 만 사료 한 알이 목에 끼여서…… 캑캑. 친절도 하셔라. 안 그래도 커피 한 잔 내리려던 참이었어요.’

이제는 내가 커피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고백해야겠어요.

“……아무렴, 당신은 내 첫사랑 아닌가. 허허.”

가만히 보니 주인님은 내게 말을 하는 게 아니었어요. 계단에 앉아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어요.

헉, 그렇다면 전화 속의 봉숙이가 도대체 누구지요? 혹시 할머니? 주인님의 첫사랑이라고요?

오 년 전, 주인님에 내게 처음 이름을 지어주면서 했던 말이 이제 기억나요.

“아가, 네 이름은 이제부터 봉숙이야. 알았지? 내 첫사랑이자 나의 영원한 사랑이 될 거야.”

주인님은 내게 그 귀한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진짜 이름의 주인을 만나고 나를 대하기가 힘들었나 봐요. 주인의 허락도 없이 그 이름을 썼으니까요. 그래서 그동안 내게 그렇게 대했고요.


며칠 뒤에, 할머니가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찾았어요. 이번엔 꽃이 두 개 달린 모자를 쓰고요.

“봉숙아, 그동안 네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해서 미안해. 내 이름도 봉숙이란다. 고봉숙. 우리 앞으로 잘 지내자.”

주인님이 할머니에게 잘 얘기했나 봐요. 할머니는 나와 이름이 같다는 걸 진심으로 기뻐하는 눈치였어요.

주인님도 이제는 내 여자 친구가 루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원래 사람들이란 자기 일이 잘 풀리면 남의 일이 눈에 들어오잖아요. 그러면서 우리 둘을 팍팍 밀어주기로 한 눈치예요.

“우리 봉숙이, 데이트해야 하는데 옷이 별로 없구나!”

주인님은 내게 여러 가지 알록달록한 새 옷을 사주었어요. 호랑이 무늬 옷은 내가 모두 꼭꼭 숨겨두었거든요.

내 이름 봉숙이는…… 그대로 두기로 했어요. 내가 바꾸기 싫더라고요.

“루비야, 오빠 이름엔 특별한 사연이 있어. 그러니까 니가 그냥 이해하고 받아 줘.”

“알았어, 봉숙이 오빠!”

루비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어요. 우리 루비는 얼굴만 예쁜 게 아니에요. 오빠를 생각하는 마음씨는 더 사랑스럽다니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