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두 줄이다!

임신 일기 4주 0일~

by ㄹㄴ

5월부터 본격 임신 준비를 시작했다.


산전검사를 받았던 2025년 5월 23일, 우연히 난포가 잘 자라고 있는 걸 발견했다. 난포 크기가 20mm를 조금 안 넘는 것 같으니 의사 선생님은 오는 주말에 열심히 노력해 보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내게 난포가 터지는 주사를 맞혔다. 임신을 적극 준비하기로 한 달부터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주사를 맞고 숙제를 받고 나니 얼떨떨했다. (상담 때는 난포가 뭔지도 몰랐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게 아닌가, 이렇게 한 번에 임신을 성공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들뜨기도 하고 덩달아 분위기에 휩쓸려 조급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심지어는 산전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임에도 아이를 가진 후 치료를 받아야 할 일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며칠 뒤 생리가 시작됐다. 역시 쉽게 되는 게 아니겠지 싶었다. 걱정은 없었지만, 괜스레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올해 12월까지 자연임신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한 달에 한 번 밖에 기회가 없다 보니 시간이 정말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에 서서히 임신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미혼인 지인들은 만날 적마다 성공 여부를 물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365일이 가임기임을 되새기며 긴장을 놓지 않았는데, 결혼 후 아이를 준비하면서부터는 가임기가 한 달에 단 하루라는 게 야속했다. (난자는 생성 후 24시간 내 유명을 달리한다)




시간이 흘러 8월로 들어섰다. 이번에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한참 임신 관련 정보를 검색하다가, 현시점에 배출되는 정자와 난자는 3개월 전에 만들어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마음을 조금 비웠기 때문이다. 또 나도 오빠도 운동을 시작한 시기가 4월 말에서 5월 초 즈음이었고 그때부터 3개월을 세면 대충 8월 이후에야 건강한 난자, 정자가 생성되는 거니까 그 이후를 더 노려보자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몸의 변화에 예민한 편이다. 생리할 때 느낌을 정확히 기억하고 질에서 뭔가 뚝 떨어져 나가는 아릿한 느낌 그러면서 공허한 감정이 들 때면 어김없이 며칠 뒤 생리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정확히 똑같은 느낌이 왔다. 8월 8일 금요일부터 다리가 무겁기 시작하면서 괜한 일에도 까칠이로 돌변했다. 9일 토요일부터는 우울감이 밀려오더니 자궁이 위치한 아랫배 어느 한쪽이 텅 빈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기야. 이번에도 생리하려나 바. 기분이 계속 안 좋아."


10일에는 우울감이 극도로 치달아서 '아, 생리전증후군(PMS)이 확실하다' 생각했다. 그러면 왜 11일 그러니까 생리 예정일 전부터 임신테스트기를 썼는가? 그건 방광염 증상 때문이었다. 남편과 안동 여행을 다녀온 후부터 소변이 자주 마렵고 배뇨 후 미미한 통증이 지속됐다. 몸이 많이 피로하고 면역이 떨어진 때 종종 방광염에 걸리는데 이번에는 평소보다 증상이 심각하지 않았고, 비타민과 프로폴리스를 잘 챙겨 먹은 날에는 치유가 된 듯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혹여 임신 중 방광염에 걸린 거라면! 그건 안 되는 일. 챗GPT에 열심히 검색을 했다. "임신 초기에 방광염 증세가 지속 또는 악화된다면 유산에 이를 수도 있으니 반드시 병원을 가세요." 임신이 아닐 거란 혼자만의 추측과 질병을 방치한 부주의함으로 아이에 치명적인 문제를 남겨선 안 된다는 마음으로, 얼리임테기를 꺼내 들었다.


엥? 그런데 이게 웬일. 분홍빛깔 세로 선이 두 개가 보였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건 임신을 알리는 T선이 옅었다. 또 이건 얼리 임테기가 아닌가! 생리예정일 4~5일 전에 해보는 얼리 테스트기니까 검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흠칫한 마음도 잠시 빨리 출근 준비나 하자, 결과를 보고선 사용한 얼리임테기를 분리수거함에 던져 넣어버렸다... 그러나 이후 사용한 테스트기들은 모두 임신이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후 소변으로도 분명히 알아볼 수 있게 두 줄이 떴다. (보통 오후 소변은 임신임에도 비임신으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단다) 임신을 확신할 수밖에 없었던 건, 생리 예정일이 되기 전 일반임테기로 검사했을 때도 두줄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임밍아웃 이벤트를 준비했다.

임신을 알게 된 후로 괜히 내가 더 소중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모든 감정에 신중하자는 결심을 했다. 남들보다 감정이 풍부한 나, 그래서 걸핏 사소한 일에 걱정이 앞서는 나, 몸을 긴장시키는 감정은 태아에 좋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즐겁게 생활해야지 무슨 일이든 가볍게 여겨야지!

남편 임밍아웃은 재밌는 추억이 됐다. 방문에 떡하니 '아빠가 된 걸 축하해' 걸어 두었는데도 눈치를 못 채는 남편의 어리둥절한 모습은 정말 웃음을 자아냈다. 우리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하하호호 웃었다.


사실 임신소식을 제일 먼저 알린 사람이 남편도 엄마도 아닌... 요가원 선생님이었다... 임밍아웃 이벤트 제품이 생각보다 늦게 도착해서 나흘 내내 혼자 이 비밀을 간직하고 있어야 했다. 입이 근질근질거렸지만 감동의 순간을 더 벅차게 만들고 싶어서 꾹 참아야 했다. 내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엄마는 책상을 턱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ㅋㅋ) 울 엄마...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라는 말을 열댓 번도 더 했다. 엄마의 입에서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임신이란 이렇게 축하받을 일이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쁜 마음으로 한 데 묶는 축복받을 일이구나 알았다. 아이가 생기고 더 많이 웃게 될 우리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니 설레고 흐뭇하고 따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