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입덧 시작

9월 1일

by ㄹㄴ

지금은 약 6주 5일 차. 곧 7주 차. 입덧이 점점 심해지는 시기이다. 내 입덧의 양상은 특이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미친듯이 허기져서 바나나를 소량 먹거나 두유를 조금 마신다. 하지만 이후 갑자기 속이 메스껍기 시작하고 소화가 될 때까지 더부룩한 느낌을 참아야 한다. 그럼 소화가 된 후에는? 어김없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프다. 그리고 이 과정을 하루 종일 반복해야 한다. 문제는 소화가 된 후 배가 서서히 출출해지는 게 아니라 정말 당장이라도 뭘 먹지 않으면 아플 것 같이 위가 허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인터넷 서칭으로 정보를 얻는 데 취약한 나는 임신에 관련된 정보를 근래 출산한 친구들에게 듣고 있다. 오늘 알게 된 새로운 용어는 먹덧과 양치덧, 토덧. 먹덧은 허기짐이 지속되는 증상, 양치덧은 양치할 때마다 구역질이 나는 증상, 토덧은 말그대로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하는 증상이란다. 배고픔과 더부룩함을 단 몇 분 차이로 왔다 갔다 하는 걸 봐서 내겐 먹덧과 입덧이 동시에 왔다.


아직 회사에 말하지 못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회사 팀 내 8시 출근자는 나 혼자라는 사실. 이전 출근자는 없다. 9시 출근자가 오기 전까지 쉬엄쉬엄 일할 수도 있고 메스꺼운 경련을 참기 힘들면 휴게실에 잠시 누워 쉴 수 있다. 회사에 말하기 전까지는, 그래 견뎌보자!(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회사에는 언제쯤 말해야 할까.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회사 임밍아웃 시기" 누군가 적절한 타이밍을 표로 만들어 블로그에 올려두었다. 그에 따르면, 4~9주 차는 대부분 사람들이 왜 벌써 공개하지? 하고 의아해할 이른 시기, 10~16주 차는 안정기에 들어서 점차 알리기 시작하는 시기, 16주 차 이후는 반드시 알려야 하는 시기... 였다. 흥미롭게 맘카페 사정은 또 달랐다. 회사 분위기에 따라 임밍아웃 시기는 천차만별. 누구는 20주 차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알리지 못했다고 우울해했고, 누구는 아기집을 확인하자마자 상사에게 알리고 단축근무를 신청했다더라. 중요한 건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 활용 대상이 안정이 필요한 시기에 있는 임산부 즉 임신 12주 차 이내이거나 32주 차 이후의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는 임신 초기나 출산이 다가온 때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12주 차 이후 회사에 임신 소식을 알린다는 건 아무리 힘들어도 출산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단축근무를 할 수 없다는 것,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 이런 제도가 없었던 때... 입덧이 심한 이 나라의 어머니들은 어찌 버텼을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입덧과 먹덧 외 불편한 몸의 증상으로는 체온 변화와 어지럼증이 있다. 그리고 기분 변화도. 열이 나는 듯 아주 더웠다가도 에어컨 바람을 조금만 쐐도 몸이 으슬으슬 춥다. 오래 앉아있다가 일어서면 다리가 뻐근한 증상과 함께 살짝 어지러운 증상이 온다. 그래도 구역질이 나서 아무것도 못 먹는 사람보다야 낫다고 생각한다. 체온 변화나 어지러움으로 생활 자체가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기분 변화가 나타나는 건 뚜렷하진 않지만, 확실히 눈물이 많아졌다. 원래도 눈물이 많은 편이라 남편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눈물이 맺히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리 슬픈 내용도 아닌데.


'기운을 내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노력해야 한다'며 내 몸의 상태를 읽고 나서는 급격히 외로움이 몰려왔다. 비슷한 경험을 겪어 본 또는 함께 겪을 사람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결혼도 잘 안 하고 하더라도 늦게 하고 아이를 안 낳는 부부도 많아졌다. 정부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여성들은 아이를 낳은 후 마주해야 할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공동체가 함께 짊어질 거란 기대는 많은 이들이 저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반대로 그 장래가 두려워 '혼자' 일어나고 버티는 삶은 더 척박한 분위기를 만든다. 기쁜 일에 마냥 같이 웃어주는 동료도 있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나도 언젠가 겪을 일이라고 생각할 때 상대에 더욱 공감하고 그의 상황을 지지하니까 말이다. 임신부가 '저 임신했어요. 그래서 조금 힘들어요. 임신부를 위한 제도를 사용하고 싶어요'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회사 분위기는, 결혼한 여성이 출산한 여성이 앞으로 출산을 할 여성이 많은 조직에서 흔히 보인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누구도 날 이해하지 못한다는 감정에 휩싸여있었다. 실제로 내가 느낀 감정이었고 그래서 지금도 허상이 아니었다고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백 번 양보해서 스물다섯 살은 부모의 죽음을 감히 상상해 볼 수 없는 나이라고 그러니 그럴 수 있다고 친구들을 이해해보려 했다. 또는 내가 그 정도 깜냥이었으니 내 주변의 친구들도 그 정도였겠거니 해보았다. 하지만 어떠한 변명도 나를 위로하진 못했다. 끝내 위로받은 건 나이가 들어서였다. 당시 나의 감정을 온전히 함께하지 못했고 그래서 미안하다는 친구의 사과로부터.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 시간이 지나 누구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걸 잘 실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걸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렇게 변하고 나니 삶은 한층 더 외로워졌다. 무엇이든 내가 준 만큼 돌아오는 건 없다. 나에게 한없이 베푸는 그래서 고마운 이들도 있지만, 그들은 소수다. 내가 많은 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사랑했으면 이해했으면 좋겠고, 또 그들이 다른 이를 사랑했으면, 또 사랑받는 이가 많아져, 모두가 사랑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한가득 안고 살다 보니 임신은 내게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8월 11일 두 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