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의 심장소리 후하후하
친구에게 재미난 얘기를 들었다. 아가 심장소리로 태아 성별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 칙칙폭폭 기차소리가 들리면 아들, 다그닥다그닥 말발굽소리가 들리면 딸이란다. 정말? 신빙성 없는 얘기처럼 들려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역시 차가운 머리의 AI,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맘카페에는 태아의 심장박동 영상을 공유하고 기차소리인지 말발굽소리인지 구분해 달라는 게시글이 여럿 올라와있었다. 또 다른 글에는 심장박동 소리를 통한 구별 말고 더 정확한 구별법이 많다며 소개하고 있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는 난황의 위치를 통한 구별, 베이킹소다 사용법, 중국황실 달력 세기, 1분 내 심장박동 횟수... 딸이든 아들이든 무슨 상관이려니, 아이 엄마들은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고 자기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어도 사랑스런 아이를 내려줘서 축복이라 말하고 있었다.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 그것이 모든 부모가 가장 바라는 바가 아니겠는가.
이날은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아이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러 가는 날이었다. 설레고도 떨리는 마음. 나의 담당 의사선생님은 태아 모양을 보여주고 길이를 재어주고 마지막으로 심장소리를 들려주셨다. "주수에 맞게 자라고 있어요~ 1분에 152회 정도 심박수 나오네, 크기는 1cm 정도고 예정일은 3일 앞당길게요. 그 다음 예진일에 오면 더 우렁차게 들릴거에요." 그리고 다정한 담당샘 목소리 뒤에 들리는
후하,후하,푸아수하후하
후하추하,후하,후하수하.
"내 몸 속에 두 개의 심장이 뛰고 있는거야?" 남편은 내 몸은 위대하다고 말한다. "응, 자기가 생명을 만들고 있어!" 이제 고작 1cm 밖에 되지 않는 태아, 아가라고 하기도 어려운 모양새의 생명체, 그럼에도 열심히 뛰고 있는 심장. 귀엽다, 정말 대견하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분에 152회나 뛰고 있다니 '내가 더 많은 양분을 줘야겠다, 그래야 아가가 힘들지 않겠다'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문득 1분 내 심장박동 횟수로 아들딸을 구별할 수 있다는데! 어맛 기준치가 150회라니, 150~180회로 빠르게 뛰면 딸 110~150회로 좀 더 차분하게 뛰면 아들이라는데 우리 아가는 엄마아빠를 아리송하게 만드네, 나와 남편은 서로를 마주보고 빙그레 웃었다.
누군가를 아무리 끔찍이 사랑해도, 우리가 놓여있는 그 시간 그 찰나에는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지 못할 때가 있다. 아주 오랫동안 알지 못할 때도 있다. 누군가 그랬다. 사랑의 크기는 헤어진 후에야 깨닫게 되기도 한다고, 더 오래 더 많이 더 처절하게 쓰라릴수록 더 깊이 사랑했던 거라고.
아빠가 돌아가고 나는 오랫동안 힘들었다. 한 8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아 이제 조금은 아빠를 놓아줄 수 있을 것 같아' 했다. 한 두달에 한 번씩 꿈에서라도 만났던 아빠가 반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빠도 조금 편안해졌나보다 하고 안심하다가도 아빠가 내 머릿속에서 잊혀져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그러나 꿈에 나타나는 아빠는 단 한 번도 웃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내 꿈에 아빠가 나오지 않는다는 건, 아빠도 이제 우리 걱정은 조금 뒤로 하고 이승에 대한 미련은 조금 멀리하고 있는 거라 믿었다. ··· ···
"예정일을 3일 앞당기니까 출산일은 대략 4월 19일이 되네요." 의미를 자꾸 부여하는 인간, 아빠의 생신날 4월 19일. 하늘에서도 나의 행복을 응원하고 있음이 틀림없구나, 눈물이 핑 돌았다.
때론 깨닫지 못하는 사랑, 때론 감당할 수 없는 사랑.
우리 가족은 지금, 그런 사랑을 무한히 퍼줄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순간에 와있다.
어떤 아이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르지만 내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라는 이유, 내가 사랑하는 남자와 꾸린 가정에서 함께 할 아이라는 이유, 사랑하는 남자를 닮았을 거란 느낌만으로 아이를 향한 사랑이 싹 튼다. 나와 내 남편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가졌음에 감사하고 우리를 그렇게 키워주신 부모님을 사랑한다.
만남을 기다리는 설레는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