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where Feb 04. 2024

플롯, 괴물, 모차르트

그래서 누가 괴물이 되는가.

요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8번을 치고 있다. 단아하고 조근조근한 그러면서도 차분하게 공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 모차르트를 선택했다. 실로 오랜만이다. 깡패 같은 내 터치로 쳐서는 안 될 곡이다. 피아노 선생님은 연신 나한테 대충 치는 법을 좀 배우라고 난리다. 대충 친다는 것은 진짜 대충 치는 것이 아니라 건반을 좀 얇게 살살 지나가듯 치라는 말이다. 나는 모든 음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강하게 치기에 듣기가 피곤하다. 강렬한 곡들에는 좋겠지만 모차르트 같은 곡은 안된다. 이 터치가 내 콤플렉스가 되었다. 이렇게 치게 된 이유도 콤플렉스 때문이었는데.... 제대로 배우지 못해 음이 빠지거나 뭉그러질까 봐 일부러 또록또록 힘주어 치는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이제 힘을 빼는 게 어려워진 거다. 마치 애비없이 큰 자식 후레자식 소리 들을까 봐 더 반듯하게 엄격히 키워 마음고생하는 것처럼.

 조용히 부드럽게 가볍게 piano(여리게)로 치는 것이 내게는 제일 어렵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마치 시냇물이 흘러가듯 졸졸졸 가뿐하게 음들을 배치해 놨다. 쉬워 보이는 악보와 달리 칠수록 늪에 빠지는 것 같다는 피아노 선생님 말씀이 맞다. 대충 맞게 치는 것 같지만 면면히 들여다보면 제대로 치는 부분이 한 부분도 없다. 늪에 빠졌다.


 

며칠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봤다. 우리나라에서 너무나 흔해 보이는 제목 때문에 안 보고 싶었는데 감독의 명성과 유튜버 누군가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다. 보고 나서 탄복을 했다. 도대체 얼마나 머리가 좋으면 저런 플롯을 짜낼 수 있을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도 묵직하고 깊었지만 스토리를 펼쳐가는 짜임새와 구성도 놀라웠다.

 하나의 사실이 흘러가지만 각자의 시선과, 그 사실을 보게 된 시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대해 모든 것이 모호해진다. 확실하게 안다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어떤 일들에 대한 판단은 지극히 개인적 시야에 갇힌 결론일 뿐이다. 그 누구도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인생이 누군가가 쓴 하나의 대본이라면 그 원작자만이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설명할 수 있다. 그 외에는 그저 자기 소견대로 볼뿐이다.

 주인공 아이들 둘만이 재밌게 하는 놀이인 <괴물은 누구게....>도 중의적 울림으로 계속 영화를 관통한다. 아이들 놀이 장면에서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같은 후렴일 뿐인데, 표정 없는 교장선생의 얼굴과 뭔가 억눌린듯한 호리선생의 엉거주춤한 행동, 학급 아이들의 집단행동 속에서는 <누가 괴물인지>를 끊임없이 찾게 된다.

 누가 괴물인가.... 각자의 괴물일 뿐이다.



모차르트를 치다가 외우지 않고서는 제대로 못 치겠구나 싶었다. 다음 부분을 알고 있어야 바로 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하지 않는데도 잠시 악보로 눈이 가면 그 사이에 손이 갈 길을 잃는다. 보통은 연습을 많이 하다 보면 저절로 외워진다. 임윤찬이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연주했을 때, 그 테크닉과 표현에도 놀랐지만 어찌 저 복잡한 곡을 다 외웠을까 하는 생각에 경외감이 들었다. 절로 외워질 정도로 연습을 많이 했다는 소리다. 이런 암기를 머슬 메모리라 한다. 그냥 단순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근육이 외워버린 것을 말한다. 하지만 머슬메모리는 어느 순간에 멈추면 다시 이어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인지적인 메모리도 반드시 필요하다. 혼자서 이런저런 스토리를 만들며 곡의 멜로디를 외운다. 모차르트 악보를 외우다 보니 모차르트의 플롯에 또 혼자 감탄한다. 비슷한 듯한데 사소한 붙임새가 달라지며 곡을 다른 장면으로 전개해 나간다. 몇백 년이 지났는데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많은 작곡가들은 물론 다 천재들이다. 이견없이.

그 많은 작곡가들 중 유난히 천재라고 공인된 작곡가가 모차르트다. 오죽하면 그 스스럼없는 천재성 앞에 무너져가는 한 인간의 영혼에 대한 영화까지 나왔을까. 유려하게 이어지는 모차르트의 선율들 속 많은 플롯들에 나는 감탄하며 친다. 살리에르라면 그 플롯들을 보며 절망했겠지만 나는 자주 미스터치가 나오는 도약들 때문에 성가셔할 뿐이다.

치면서 느낀다. 참 아름답다.

1ㆍ2ㆍ3악장이 모두 다 아름답다


이런 음악적 플롯들이 떠다니던 모차르트 머리는 얼마나 정신없이 풍성했을까.


인간의 역사 속엔 고레에다 히로카즈나 모차르트 같은 플롯의 괴물들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고도를 기다리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