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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Jul 24. 2024

시간과 시간사이

5월에 써놓은 글을 뒤늦게 ᆢ

시간과 시간사이의 틈에 끼어 있는 듯하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뒤죽박죽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밤이면 날이 훤해지도록 뒤척이며 잠을 못 자지만 여독에 절은 몸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그러니 제일 손쉬운 핸드폰보게 된다. 또 그 영상들 때문에 활성화된 뇌는 더욱 잠에서 멀어져 버린다. 도무지 떠나기 전 그 단정한 일상으로 돌아오질 못한다.

그야말로 시간과 시간사이의 틈에 빠져 버린 것 같다.

깊은 크레바스에 빠지듯.


그 틈새에서 생전 안 하던 짓을 했다.

며칠밤을 새서 수십 년 전 옛 드라마를 완주한 것이다.

청춘의 덫이라는 드라마. 심은하란 배우의 대표작 같은.

김수현 작가 특유의 뚝뚝 부러지듯 오만 냉정한 말투들을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구사하고 있고, 비현실적으로 설정된 캐릭터들이 있다. 흠없이 완전무결한 캐릭터들.

대사의 장인이라 했던 그 작가나 요즘 몇몇 작가들의 허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완벽한 대사는 그 완벽함 때문에 비현실적이라는 것.

그 드라마를 총체적으로 구성해서 전체를 알고 있는 창조주만이 써낼 수 있는 대사를 막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서 인물들이 천연덕스럽게 읊조리는 것.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탄복하며 듣지만 실은 비현실적이다.


나는 초현실주의 배경의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묘사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김은숙이나 이런 작가들이 빚어내는 말의 향연들을 좀 낯간지러한다.

왜 작가들은 비현실적 캐릭터들을 창조해 내는 걸까. 그들의 워너비일까. 인간으로서 가지고 싶은 캐릭터들을 한꺼번에 담아보는.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도 그런 캐릭터다.

단정하고 군더더기 하나 없이 순수하고 맑다.

슬픔 앞에서도 절제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 나이에 그렇게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평생 지극정성으로 시어머니 봉양하고 첩이 낳은 아들을 키우며 생모에게 잘하라 가르치는 정실부인.

그래 ᆢ어쩌면 그 비현실성 때문에 사람들이 보는 건지도 모른다. 다들 되기를 원하나 될 수 없는 그런 인간상을 보는 것.


어버이날에 어머니를 모시고 구례 천은사를 갔다.

절은 들어가지 않고 호수만 둘러봤다.

천지에 초록이 환장하게 초록이다.


바느질하시는 어머니 너머로 초록나무가 있다.

88세 어머니는 손가방을 만드시는 재미에 푹 빠지셨다.

뭔가를 만든다는 것이 제일 재밌는 놀이가 아닌가 싶다.

옷을 만드시다가 눈이 어두워 한동안 하시다가 백내장 수술을 받으신 후 또 슬슬 틀질을 시작하신다.

내가 입던 오래된 옷들을 수선해서 멀쩡한 옷으로 바꾸어 내시고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젊은 아가씨가 들고 있던 손가방을 유심히 보시고 집에 있던 쪼시래기천으로 만들어 내신다. 주변 할머니들이 예쁘다 하시니 이제 계속 만들어서 여기저기 나누어 주기 바쁘시다.

나도 두 개 얻어 가는 중이다.

뒷 산 산책할 때 핸드폰과 이어폰만 담고 갈만한 조그만 가방을 만들어주셨다. 끈 달아 크로스백으로.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말하면 온갖 궁리와 창조력으로 만들어 내신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어제 말한 그 크로스백이 만들어져 있다.

틀질 하시는 어머니 뒤로 초록나무가 환하다.

어머니 작업실은 멋지다. 손자들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고 실밥과 천조각들이 난무하며 백 년은 모아 두신 듯한 단추들도 간택되기만 바라고 있다.

저 가방에는 어떤 단추들이 달릴지 오직 창조주 어머니만 아신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어머니집 방바닥에 누워 오래된 드라마를 보며 나는 어느 시간대를 헤매는지 모르겠다.


예약할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하며 온 터미널에서 내가 탈 버스는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생각지 못했던 이 한 시간의 틈이 내게 글 쓸 여유를 준다.

이 또한 시간의 틈이다.

순천 터미널 찻집에 앉으니 저만치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창밖을 오래도록 보고 있는 것 자체가 눈길을 끈다. 초록 나무를 보시는 건지.

아마 나처럼 잠시의 시간의 틈에 머물러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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