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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Dec 23. 2018

친구들과의 대화

관계의 이중성

여기 우연히 친구가 된 네 사람이 있다. 시인, 공산주의자, 사진작가, 배우.
시인과 공산주의자는 과거 애인 사이였으나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다.
사진작가와 배우는 부부다. 이들에게서 어떤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다.
나이 차이도 크다. 전자 커플은 20대 초반이며 후자 커플은 30대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만든 관계 속에서 예상했지만 일어나지 않길 바랐던 일이 생겼다.
읽는 동안 불편했다. 시인인 프랜시스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전혀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녀의 전 애인이자 현 친구인 보비에게 더 마음이 쓰였다.
내 안에서 프랜시스와 배우 닉의 관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처지도, 그녀의 마음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모습으로만 보였기에 이들의 관계가 계속 불편했다.
이 불편한 관계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속마음을 숨긴 채 자신은 상처받길 원하지 않지만
타인에게 상처 주는 데는 거침이 없다. 너무 심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상대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이들의 대화를 읽으면서 수동적인 자신들의
삶을 가시 돋친 말로 감추려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성공한 개인이 관계를 형성할 때 생기는 묘한 어긋남, 그 틈에서 오고 가는 날카로운 대화에서
자신을 더욱 꽁꽁 싸매며 방어막을 구축한다.
이들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긋남이 점점 커져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나는 그렇게 이들이 각자의 삶을 살기를 원했다. 부부는 자신들의 가정을 지켜나가고
젊은 두 사람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살아가기를 말이다.
하지만 프랜시스의 마지막 한 마디. 그 말이 내 바람을 깨뜨렸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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