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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상구가빨강 Jun 19. 2024

망해가는 나라의 레트로

레트로, 뉴트로, 그리고 Y2K

 "에스파 밟으실 수... 수수 수퍼노바"


 민희진 대표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방시혁 의장의 발언은 어느새 하나의 밈으로 자리 잡은 추세이다. 하나 특이한 점은 뒤에 에스파 첫 정규의 선공개곡인 <Supernova>가 함께 붙었다는 점이다. SMP 특유의 사운드와 중독성은 데뷔 초의 '쇠맛'을 다시금 불러오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 5월 27일, <Supernova>를 이은 <Armageddon>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노래 전반에 깔린 신스 베이스는 유행이던 이지 리스닝을 밀어내고 당당히 차트 1위에 올라섰다. 이때 노래만큼 주목을 받았던 것이 있다면 바로 에스파의 콘셉트 포토이다. 세기말의 가수들을 떠올리게 하는 메탈 의상에다가, 어디서 본 듯한 파란색 섀도우까지.



 에스파의 콘셉트를 완성시킨 이 패션은 바로 'y2k'이다.

 y2k란 'year 2000 problem'의 약자이다. 초반에는 새천년을 맞이하며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용되던 단어였다면, 후반에 가서는 'problem'이 빠지며 단순히 세대를 의미하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불안과 흥분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일각에서는 '1900년과 2000년의 뒷자리가 똑같이 00이라 전산 오류가 생길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고, 전 세계적으로 종말론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이뿐이 아니었다. y2k 당시 가장 유행했던 장르는 '사이버펑크'였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과 기술이 엮이게 되며 근시일 내에 벌어질 사건을 이야기하는 이 장르는, 사람들이 새 시대에 대해 부안만큼이나 많은 기대를 가졌다는 사실을 보인다.


 y2k의 핵심은 바로 패션이다. 1980년대 교복 자율화가 시행되며 패션은 10대 학생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한창 공상 과학 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학생들은 메탈릭 한 색상의 의상과 기계를 떠올리는 파란색 화장품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래와 과학 기술이 새롭게 조합된 'y2k 패션'은 시간이 지나며 당시의 다른 유행까지 통칭하게 된다.











 그렇다면 당시로부터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 2024년에 y2k가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레트로토피아'로 꼽는다.  


 레트로토피아(Retrotopia)는 사회학자 지그무트 바우만이 제시한 개념으로, 유토피아의 반대말이다. 유토피아가 미래의 낙원이라면 레트로토피아는 과거의 낙원을 이야기한다. 사실 한국은 이전부터 레트로토피아 열풍이 불고 있던 상태였다.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014년의 무한도전을 잊지 못할 것이다. 타임머신 형태의 리프트가 열리고, 쏟아지는 불빛 사이에서 걸어 나오던 90년대의 가수들. 레트로의 유행을 불러온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프로그램을 말이다.


 9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을 새로운 세대에게 소개하겠다는 프로그램의 목적은 딱 들어맞았다. 어쩌면 넘치도록 들어맞았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학생들 역시 <토.토.가>에 관심을 가졌지만, 프로그램에 가장 열광한 것은 가수들과 함께 청춘을 살았던 어른들이었다. 1부 방영일에 전국 시청률 19.8%, 수도권 시청률은 21.9%를 기록하며 열기를 보여 주었다. 2부의 시청률은 수도권 기준 29.6%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들이 이렇게 과거를 추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극적이게도, 현재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레트로토피아; 실패한 낙원의 귀환>에서는 이런 문구로 레트로토피아 현상을 설명한다.


 '이제 더 나은 사회가 아니라, 타당한 의도와 이유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사회는 가망이 없었으므로, 본질적으로 완전히 구제불능인 사회에서 자기 개인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으로 목표가 변했다.'


 그러한 시도는 결국 실패에 다다르며, 과거로의 회귀까지 가닿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는 현재 웹소설계의 '회귀물 집중 사태'로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절대적인 이유는 아닐지도 모른다. 이어 '뉴트로 문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레트로는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라면, 뉴트로란 당시를 겪어 보지 않은 새로운 세대가 콘텐츠로써 과거를 향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새로운 문화들은 소비자를 지치게 만든다. 하나를 소화하기도 전에 또 다른 하나가 발생하고, 또 발생하고.... 그 과정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다 보면 결국 '새로운 문화' 자체에 질리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물음이 새롭게 등장했다.


 '왜 새로운 문화를 향유해야 하지?'


 지나간 문화 역시 새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그렇게 뉴트로가 이어지고, 그것이 좁혀져 y2k가 파생된 것이다.












 그렇다면 뉴트로와 y2k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필자는 '해석'이 그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뉴트로의 예시를 떠올려 보자. 과거의 음식을 먹고, 과거의 장소에 가고, 과거의 문화를 소비한다. 그야말로 '과거를 그대로 체험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y2k의 경우에는 '재해석'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Armageddon>의 앨범이 그 대표적인 예시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Armageddon>의 CDP 버전은 원가가 145,000원이다. 일반적인 앨범이 20,000원 전후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이런 금액이 책정된 데에는 'CDP(CD player)'의 존재가 크다. 소속사인 SM 엔터테인먼트는 앨범의 구성품인 CD를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 CD 플레이어를 포함시키게 되었다. 해당 제품은 일상에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소형화되었고, 에스파만의 컬러를 입혔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뉴트로가 막 인기를 끌던 2020~2022년과는 부쩍 대비된다. 당시 유행하는 것은 LP판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플레이어가 없다면 듣지 못했지만, 특유의 감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 모으기를 반복했다. '과거를 수용'하던 뉴트로와 '과거를 재해석'하는 y2k의 차이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가?










 레트로부터 y2k까지, 대한민국은 여전히 복고 열풍이다. 누군가는 과거를 추억하고, 누군가는 과거에서 새로움을 찾는다. 그 시작이 '불행한 현실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대도 이제 그렇게만은 볼 수 없다. 레트로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이제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이겨낼 수... 수수 수퍼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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