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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상구가빨강 Jun 21. 2024

불안장애는 2D를 사랑해

오타쿠, 근데 이제 회피형을 곁들인.

 바야흐로 오타쿠의 시대이다. 개인주의 사상이 개성이라는 이름 아래 '덕질'을 수면으로 끌어올렸다면, 미디어의 발전은 덕질에 날개를 달았다. 이제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근데 왜 애니메이션 덕후는 여전히 씹덕인지....











 필자의 전공은 문화콘텐츠학과이다. 이름에서 보이다시피 콘텐츠의 기반이 되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이를 토대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든다. 영화, 드라마, 연극, 게임, 출판…, 원하는 그 어떤 분야로도 진출할 수 있으니 자연히 덕후들만 모였다. 술자리라도 한 번 가지면 저마다의 전공 분야와 온갖 밈이 뒤섞여 현실로 탈출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는 것만 같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늘 불이 붙는 것은 애니 밈이다.










 놀랍게도 애니 덕후들은... 덕후들 사이에도 진짜 덕후인 것이다. 사실 이유를 모르지는 않는다. 애초에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지나치게 고착화됐을 뿐 아니라 다른 콘텐츠는 어느 정도 학문적인 기반이 다져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한 기반이 없더라도 유입이 쉽고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면 당연히 '덜 덕후'에 속하게 된다.


 다시 말해, 애니메이션이 소위 말하는 '씹덕'에 속하는 것은 즐기는 사람들만 즐기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의 진입 장벽에는 그림체의 영향이 있다. 대개의 애니메이션은 기존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특유의 그림체가 있다. 이를테면 눈이 크고 코가 오뚝한 그런 그림 말이다. 웹툰 역시 애니메이션과 같이 만화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이 둘에는 분명히 차이가 존재한다.


 김지홍(2006)은 애니메이션의 그림체를 '극화체', '명랑만화체', '순정만화체'로 나누어 제시했다. 세 그림체 모두 선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거나 너무 단순하게 써서 현실과는 멀어진 느낌이 난다. 그에 반해 최근에 인기를 끄는 웹소설 기반 웹툰들은 그림이 거의 일러스트에 가깝다. 현실과 멀어진 대신 미적 감각을 챙기며 인기를 끄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문제는 스토리에 있다. '짱구는 못 말려'나 '검정고무신'같은 애니메이션은 성공가도를 걸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애니 덕후들을 진짜 덕후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애니메이션은 그림체로 몰입을 줄 수 없다 보니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에피소드 형식을 주로 이용한다. 만약 이를 장편으로 끌고 가고자 한다면 스토리를 통해 몰입시켜야 한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에 대한 의무감이 강해지며 '오글거리는'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것이다.










 필자는 특히 스포츠 만화에서 그러한 경향이 자주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극한으로 몰리고, 이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감정은 극화된다. 그리고 결국 외치게 되는 것이다.... 머글들이 보기에 당황스러운 말들을.......


 사실 필자는 중학생 때부터 한 캐릭터만을 사랑해 온 덕후이기에 그런 느낌을 잘 받지는 못하지만, 고등학교 친구들이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보자면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머글들은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몰입도 안 되고, 오글거리고, 심지어 '진짜 덕후'라고도 불리는데 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나요?"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끝이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펜을 떼는 순간 이야기는 끝이 나고, 그 이후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몇 주년을 맞아 간단한 스토리나 일러스트를 풀어 준다면 다음 기념일이 찾아올 때까지 떡밥 하나를 곱씹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장점인 이유는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 실망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약 5년 정도 3D 덕질을 했다. 앨범을 사고, 영상을 보고, 콘서트에 가는 일. 그렇게 시간과 돈을 쏟아 사랑을 말해도 결국 어떤 순간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매체 속에서 존재를 보고, 그것이 그 존재의 전부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사람인 이상 알리지 않은, 혹은 못한 모습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작게는 가치관의 차이, 그다음에는 열애설, 어쩌면 범죄까지 그 몸뚱이를 불리기도 한다. 견딜 수 없었다.





 모든 3D 덕후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닐 테다. 나에게는 불안장애가 있다. 장기간 약을 먹었고, 간혹은 공황이 온다.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지만 한 번 신뢰하게 된다면 그 전부를 알아서 불안의 요소를 없애야 했다.

 

 덜어 놓고 생각하면 3D를 사랑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이 존재에 대해 더 알고 싶은데 더 알게 되면 또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 애초에 주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겉모습만 보이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무리였다. 아쉽게도 나의 이상을 너무 늦게 알았고, 사실 나는 여태 다들 이렇게 전전긍긍하며 덕질을 하는 줄 알았다.





 원래 불안장애의 뒤에는 회피형의 증상이 따른다. '사람이 싫어…' 하고 도망치는 삶.


사실 배우들의 필모그래피를 좋아한 적도 있는데, 배우의 본체가 논란이 생기면 또 타격을 입어 견딜 수가 없었다. 애니메이션을 처음 좋아할 때도 한창 성우들이 구설수에 휘말려 자막을 애용하고 있다. 별명이 쭉 개복치였다. 영원히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여간 조심하고 싫어하고 슬퍼하고 또 조심하다 보면 피곤해서 애니메이션을 향할 수밖에 없다. 좀 오글거리면 뭐 어때, 내 정신에 무리만 주지 않는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최애 사진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여전히 애니메이션 덕후는 밈의 중심에 서 있다. 그 밈이 놀림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 빼고 완벽하다.


 간혹 다른 덕후들이 '내 최애는~' 하면서 키를 cm 단위로 측정할 때 나는 픽셀 단위를 써야 하나 고민하지만... 다른 덕후들이 최애의 옆태를 자랑할 때 나는 '등신대로 뽑으면 옆태가 없는데...' 하며 분노하지만.... 어쨌든 나를 힘들게 할 일은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내 견해가 모든 2D 덕후들을 대변할 수 없음을 당부하고 싶다.

 이 무더운 6월의 여름, 영영 따뜻할 나의 최애에게 생일 축하를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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