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이야기
막 고양이를 데려왔을 때 지인이 말했다. 아마 검은색 옷은 못 입게 될 거라고.
난 내심 걱정했으나 생각보다 털 많이 안 빠지는 거 같아서 괜찮은데?라고 잠시 몇 주 생각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털 빠짐이 시작되자 옷이며 침구며 카펫에 온통 바니 털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적당히 무딘 Lee와 난 청소기만 열심히 돌리면 괜찮겠지 하고 지냈는데 어느 날 밥 먹다 바니 털이 눈앞에 날아다니는 걸 보고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아직 추워서 털을 밀어 버릴 수도 없고 남들은 어떻게 하나 열정적으로 검색해 보니 고양이 털 제거하는 빗이 있다 해서 냉큼 주문했다.
바니를 쓰다듬을 때마다 정전기도 많이 나서 정전기 방지 미스트도 하나 구매하고 빗은 두 종류로 구매했다. 하나는 엉킨 털을 정리하는 콤보 형이고, 하나는 갈고리처럼 생겨서 고양이 털 중 빠져야 되는 죽은 털을 제거하는 빗이다.
써보니 콤보 빗은 바니에겐 딱히 필요가 없고 미스트와 갈고리 형태의 빗이 가장 최적화된 장비다.
청소하다 고양이 털이 많이 보여 안 되겠다 싶어 바니를 불러 앉혔다.
그리고 작업을 시작했다.
이제 눈치가 빨라진 바니는 내가 나지막이 부르면 또 자기 몸에 뭔 일을 하는지 귀신같이 알고 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장난감으로 유혹해서 일단 앉혀두기 성공.
일단 밀리터리 룩을 해체시키고 정전기 방지 미스트를 몸에 골고루 뿌린 뒤 손으로 슥슥 쓰다듬어 흡수시킨다.
미스트가 어느 정도 스며들고 나면 퍼미네이터를 들고 시원하게 빗질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아프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몇 번 해보니 바니도 이젠 즐기는 듯 가만히 잘 있다.
등판은 시원하게 슥슥 빗기 쉬운데 가슴 털과 배 부분은 민감해서 손을 잘 못 대지만 최선을 다해서 빗어본다.
바니는 나를 정말 좋아하지만 자기가 원하지 않을 때 내가 붙잡아 두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털을 빗기는 것도 최대한 빠르게 하려고 한다.
등 부분은 본인도 시원하게 느끼는 것 같은데 배부분을 빗을 때는 싫다고 에옹 에옹 거려서 어르고 달래며 빗는다.
죽은 털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몰랐다.
내가 털을 다 빗고 나면 바니는 자기 혼자만의 그루밍 타임을 갖는다. 평소 춥다고 옷을 입혀 놓는 편이라 오랜만에 몸 전체를 그루밍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그루밍하기가 힘든지 좀 지치면 장난감 공을 한번 툭! 하고 굴린다. 공이 한 바퀴 돌 동안 다시 열심히 몸에 침을 바르며 몸단장을 한다. 이것은 공부하기 싫어 온갖 딴짓하며 겨우 책장 한 장 넘기는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고양이 털 빗긴 후 남은 건 엉망이 된 내 바지였다.
그래도 괜찮다. 한 2-3일간은 털 날림이 좀 줄겠거니 하는 생각이 드니 안심이다.
그리고 바니가 만족한 얼굴이라 난 괜찮다.
내가 헤어볼(고양이 털)을 토할 지경이지만 난 정말 괜찮다 바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