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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파블로프에게

이제는 적어낼 수 있는 이야기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너를 기다리는 내가 싫었다. 나도 너에게 골칫거리가 되어 그만큼의 존재감으로 피어나고 싶었다. 네가 나 때문에 마음 속 울컥 치솟는 무언가를 느껴봤으면 좋겠다. 너의 인생이 '나'라는 존재로 흔들렸으면 했다. 주먹만큼의 묵직함으로 속이 끓어도 보고 이유 모를 답답함에 가슴도 쳐보고, 그러다가 문득 내가 지금 설마 아파하고 있는건가, 깨달아도 보고.


나는 묵직한 덩어리가 되어 너를 짓눌러보고싶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내가 너의 파블로프가 되어 종소리가 울려도 음식은 내줄 생각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못된 생각의 처마에는 내 서러움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입이 무거운 네가 누구에게도 뱉어내지 못 하고서 혼자 괴로웠으면 좋겠다고. 나 때문에 조금이라도 아팠으면 좋겠다고, 조금보다 많이 아팠던 내가 생각했다.



마음 속에 뜨뜻하게 번지는 이런 부류의 출혈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시시각각 찾아오는 감정의 방문을 난 그저 꾹 참아내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자꾸 꺼내보면 모난 기억들도, 날카로운 감정들도 조금씩 닳아 뭉툭해지겠지.


난 이 책을 사랑했지만 결말이 이렇게 슬플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도입부가 너무 좋아서 중반부의 들뜬 흐름이 너무 즐거워서 마지막 장이 온다는 것도 몰랐나보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결말은 같을 거라는 걸 아는데, 결말이 엉망인 이 책을 왜 못 내려놓고 있는거지. '책 진짜 별로였어, 괜히 읽었어, 시간 아까웠어' 라고 말하고 싶은데. 짜증나게도 난 이 책이 너무 좋았다. 그치만 이 책은 다신 읽지 않을거야. 사실은 다신 읽지 못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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