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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주은 Jan 05. 2019

산에서

  어릴 적 나의 집은 겨울이면 방안에 있어도 눈물이 그렁일만큼 코끝이 시렸다.

 농가의 경제사정이란 다 거기서 거기, 도토리 키재기였다. 누구집 할 것 없이 다들 부뚜막 있는 정지에 연탄보일러, 혹은 군불방이었다. 그래서 우리집은 가난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옆집, 앞집 할 것 없이 동네의 집들은 토마토 하우스며, 피망 하우스를 하여 깨끗하게 입식 부엌으로 개조를 하고, 앞 다투어 기름보일러를 놓았다. 어떤 집은 집을 통째 허물고 붉은 벽돌의 양옥집을 지었다. 순수한 농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우리집밖에 없었다. 갑자기 우리집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 되었다.

 연탄도 아까워 군불방에만 자야만 했던 쌀쌀한 계절, 나는 엄마와 함께 잘 수 있어 좋았다.

 찬바람이 불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산엘 갔다. 예전엔 그것도 경쟁이었는데 개조의 바람 후 산에는 널린 것이 갈비이고 땔감이었다. 

 동네에서 경운기를 타고 20분쯤 가면 ‘통고’라는 으스슥한 산동네가 있다. 동네라고 해봐야 달랑 집 두 채가 다였다. 게다가 한 채는 사람이 산지 오래된 낡은 집이고, 또 한 채는 노부부가 사는 백열등의 집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 간소한 동네를 지나칠 때마다 등이 서늘했다.

 두 채의 집을 지나 경운기로 계속 오르다 심하게 경사가 지기 시작하는 공터에 엄마는 늘 경운기를 세우셨다 그리고는 밭두렁에 앉아 내가 알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리시며 새끼줄을 꼬았다. 엄마의 손놀림은 어찌나 빠른지 금방 긴 새끼줄이 뚝딱 만들어졌다. 나도 한번 해보았지만 볏짚은 내 양 손바닥 사이에서 따로따로 돌기만 했다.

 새끼를 다 꼬고는 엄마는 뒷집을 지시고 산을 오르셨다. 그러면 나도 따라 뒷짐을 지고 엄마의 큼직한 엉덩이를 따랐다.

 자그마한 우리 동네, 그닥 높지 않은 그 산에 오르면 동그란 우리 동네가 보인다. 그 산에서는 우리 동네도, 그 무엇도 다 예쁘게만 보였다.

 엄마의 눈은 산의 중턱쯤부터 바쁘셨다. 갈비가 많고, 긁기 좋은 곳을 찾아 나에게 가꾸리로 긁으라 하신 후 엄마는 좀 더 숲이 우거진 곳으로 가신다. 나는 낮에도 어두침침한, 엄마가 정해준 그곳에서 갈비를 긁어모았다. 처음에는 바삐 그것들을 모으느라 송글송글 땀도 맺히고, 무섭지 않았다. 어느새 내가 지고 갈 양만큼의 갈비를 다 모으고 나면 자꾸만 주위를 살피고, 어두운 소나무 숲을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의 놀이를 생각해냈다.

 첫 번째 단계는 나무껍질 벗기기 놀이다. 단단하고, 우둘투둘한 바깥껍질을 벗기면 맨들한 하얀 껍질이 나온다. 벗기면 벗길수록 부드러워진다. 나는 그것을 질겅질겅 씹어 먹어보기도 했다. 한참이나 그렇게 나무랑 놀면 내 손엔 송진냄새가 났다. 나도 나무가 된 것 같았다.

 두 번째 단계는 암호 새기기 놀이다. 내 나름대로 알파벳이나 숫자를 조합하여 나무에 새겨두고 누군가 그걸 해독하지 못해 쩔쩔매는 모양을 상상했다. 내 머릿속엔 한 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세 번째 단계는 솔방울 따기 놀이다. 가끔은 도토리를 줍기도 했지만 다람쥐 먹으라고 그냥 버렸다. 나는 솔방울이 요정들의 요세 같다고 생각했다. 솔방울을 한참이나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환한 빛과 함께 요정이 툭 올라올 것 같았다. 나는 요정이 나와 소원을 물으면 무어라 대답할 건지도 미리 생각해 두었다. ‘기름보일러는 놓아 주세요.’ 나는 솔방울 요세를 들여다 보고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정도 놀이를 하고 나면 해는 뉘엿뉘엿 지고 엄마는 갈비를 한짐 지고 내게로 오셨다.

 엄마는 소나무 생가지를 꺾어 새끼줄 위에 얼기설기 놓으시고 갈비를 얹고 또 사방에다 생가지를 두른 후 새끼줄을 단단히 묶으셨다. 엄마가 한 큰 갈비짐은 엄마가 이고, 작은 갈비짐은 내가 이고 엄마와 나는 산을 내려온다. 경운기에 그것들을 싣고 엄마와 나는 고소한 미숫가루 물을 한 잔씩 캬아, 하고 마신다. 가끔은 이름도 모르는 남의 밭에서 무뿌리를 하나를 뽑아서 먹기도 했다. 처음에는 알싸해서 먹기가 영 힘들었는데 나중엔 사각거리는 것이 달콤하기까지 했다. 

 해는 서산에 걸려 붉고, 푸른색을 내고 엄마는 경운기를 몰고, 나는 갈비짐 위에 아빠다리로 앉아 내가 아는 노래란 노래는 죄다 불렀다.

 통고의 노부부집 백열등은 어스름 속에서 빛나고, 엄마는 나의 노래에 즐거이 웃으셨다.

 가끔씩 나는 길을 가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른 소나무의 바늘 같은 잎을 보면 엄마와 함께 갈비짐을 하던 어린 날의 기억이 생각난다.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오던 날의 쌀밥냄새 베인 저녁 공기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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