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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Oct 20. 2024

나를 키우는 일은 고달프다

육아 난이도 최최최상=나 자신

나는 연초마다 그 해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몇 가지 세우곤 한다. 목표를 너무 크게 잡거나 여러 개 늘어놓다 보면 금방 '패배감'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 그래서 작년엔 목표를 아예 세우지 않았더니 종종 인생의 갈피를 잃고 방황했다.


올해는 선택과 집중을 해보자며 몇 가지만 간추려 세웠었는데, 지금 떠올려보려니 기억도 잘 안 난다. '계획형 인간'이 아닌 '계획 세우기형 인간'인 터라 큰 타격도 없다. (이렇게 고백하고 나니 조금 창피하긴 하다. 흑흑.)


다만 한 가지 분명히 기억나는 목표가 있어 자꾸 내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나 키우기'


자기 계발 등을 통한 '성장'을 은유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아이처럼 나를 보살피고 안아주고 들여다볼 생각이었다. 내가 스스로를 아이라고 생각하고 키운다면 나를 좀 더 소중히 여기지 않을까, 하고 세운 목표였다.


만약 내가 아이를 키운다면, 일찍 일어나서 건강한 아침밥을 먹일 거다. 그리고는 아주 잘 다린 옷을 입히고 머릿결도 단정히 정돈해 주겠지. 밖에서는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면서도 조심스럽게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조언해 줄 테고, 몸에 좋지 않은 간식은 먹지 못하도록 할 거다.


늦지 않게 집에 돌아오게끔 하고 저녁엔 체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함께 운동을 하는 거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속 병은 없는지 들여다보고 깔끔한 내일의 시작을 위해 정리정돈을 하게 할 거다. 모든 일과가 끝나면 책을 보거나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깊이 사유하는 방법과 건강한 휴식 방법을 알려주고, 적당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도록 하겠지.


이런 생각으로 시작한 목표 설정이었다. 하지만 마음 가짐은 고작 하루도 가지 못했다. 건강한 생활 습관도, 똑똑한 처사도, 깊고 성숙한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올해 대부분을 건강하지 못하게 살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정신적인 수양도 생략했다.


나를 키우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게 바로 '절제' 였기 때문이다. 나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합리화하고 포기하면서 매일 쫓기듯 살았다. 그렇게 2024년이 정리된다니 허무하기 짝이 없다. 바쁘고 또 바빴지만, 정작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영화배우 윌 스미스가 한 말이 나의 빈약한 폐부를 훅 찔렀다.


"나는 자기 절제는 자기애의 또 다른 정의라고 생각해. (…) 그건 너한테 이야기하는 거야. 너 피자 먹고 싶은 거 알아. 너무 좋을 거야. 근데 난 너한테 먹으라고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만약에 네가 피자를 먹으면 기분이 더 더러울 테니까. 나는 너를 먹게 내버려 두기엔 너를 너무 사랑해.

(…) 난 절제라는 단어를 장기적인 자존감으로 바꾸기 위한 지금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거라고 말하는 거야. (…) 자기 절제는 자기애야. 만약 네가 행복하기 원한다면 너 스스로를 사랑해야 해. 그건 너의 행동을 절제해야 된다는 걸 의미해. 지속적인 행복으로 가는 길은 너의 행동을 절제하는 거야."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가치관이다. 너무나도 편하고 달콤하지만 나에게 좋지 않은 것들은 미루지 말고 쏙쏙 발라내고, 귀찮고 불편하지만 내게 좋은 것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할수록 나 자신을 끔찍이 아끼는 날이 금방 오지 않을까 싶다.


올해가 겨우 한 계절 남은 느낌이다. 아주 잠깐의 시간일지라도 내가 스스로를 키우며 '셀프 육아' 느낌이라도 내볼까, 하는 마음으로 내일은 반드시 운동을 하러 가기로 마음을 다진다. (내일도 운동 안 하면 사람도 아니다!! 으아아아아!!!!) 

윌 스미스가 어쩐지 나를 아주 혼쭐 내는 듯한 느낌이다... 한 번만 봐줘요.. 흑.

(사진은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영화 <핸콕> 스틸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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