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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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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Nov 15. 2020

다 하는걸 나만 못할때

아니 왜 잠도 못 자?

불면 증상이 찾아온건 21살때쯤이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처음으로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쭉 했다. 대학 시절엔 이것저것 참 많은 활동을 했는데, 유독 여러 상황이 겹치면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시기가 있었다. 처음엔 걱정을 하느라 잠이 안 왔고 나중엔 고민을 하느라 잠을 미뤘고 더 나중엔 우울해져서 잠을 못 잤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난 고3 시험 기간에도 밤을 새 본 적 없을 정도로 적당한 수면 시간이 필요한 스타일이었다. 잠자리가 바뀌면 곧바로 잠들진 못했지만 그래도 시간을 좀 들이면 결국은 잠을 잤다. 그래서 금방 나아지겠지.. 하며 넘겼는데.. 그게 시작이 되어 서른이 된 지금까지도 잠을 잘 못 잔다.

가장 심할 땐 2주일 동안 잠을 못자기도 했다. 전혀 못 잔 건 아니었지만 하루에 1~2시간도 겨우 잤다. 너무 졸려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아무리 편한 자세로 몇 시간이고 눈을 감도 있어도 잠에 들지 못했다. 오래 못 자면 생체 리듬이 금방 망가지고 기억력도 감퇴한다. 그 무렵 나는 1시간 전의 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고 낯빛은 하얗게 뜨거나 거무죽죽해지거나 제멋대로였다.


그때는 정신과에 가는 게 '큰 일'처럼 느껴졌고 어려서 돈도 없었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도움을 받을 생각은 깊이 못했다. 더군다나 한 친구가 심한 불면증으로 줄곧 정신과에서 수면제 처방을 받아왔는데, 그가 극구 나를 말렸다.


"병원가도 별 거 없어. 수면제를 처방해주는데 수면 시간을 맞추려는거야. 정해진 시간에 자는 게 중요하거든."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오후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자겠다 싶으면 취침 시간에 맞춰 수면제를 먹는 식이었다. 그렇게 몸의 수면 리듬을 찾는 거라는데 친구는 오히려 수면제 복용으로 인한 무기력증과 약의 내성으로 부작용이 생겼다며 진지하게 조언했다.


"최대한 네 스스로 자려고 노력해봐. 그래도 정 안 되면 약국에서 수면유도제 사서 시간 정해서 자보고. 그래도 안 되면 병원 가."


스스로.


나는 더 무섭고 더 우울해졌다. 잠을 '스스로' 자기 위해 '노력'까지 해야 된다는게 생경하게 느껴졌고 그게 지금 내 상황이라는 게 서글펐다. 나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뛰어도 보고 자장가도 들어보고 호흡법도 해봤다. 하지만 증상은 몇 주째 지속됐다. 온 몸에 힘이 없고 매사에 짜증이 났다. 불면의 원인이었던 사건마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결국 약국에 수면 유도제를 사러 갔다. 학교 근처에 3군데 약국이 있었는데 2곳은 팔 수 없다고 했고 1곳에선 '왜 필요한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너무..너무 잠이 안 와서요."


약사는 나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고선 정량을 지키고 절대 약에 '의존'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아주 엄하고 진지하게. 그때 내가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지갑도 안 가져와서 말도 한 번 안 나눠본 동기에게 마주치자마자 5천원을 꾸었다. 그리곤 잽싸게 약을 사서 기숙사로 돌아갔다.


하지만 난 결국 수면유도제를 먹지 않았다.


약 겉면에 적혀 있는 복용 주의사항을 읽어보니 괜히 무서웠고, 무엇보다 '그것을 먹느냐 마느냐'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굉장한 결정인 느낌이었다.


결국 나는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옷을 단단히 챙겨입고 운동장을 힘차게 뛰었다. 내 몸을 잔뜩 지치게 할 요랑이었다. 거의 스무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나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계속 감기에 걸리고 헛구역질을 하고 혼자 있으면 엉엉 울었다. 그래도 혹시.. 하는 생각에 땀을 뻘뻘 내고 돌아오는 길, 꽤 친한 언니를 마주쳤다.


서로 안부를 묻다가 그 언니가 내 꼴을 보더니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다.


그 말이 둑을 무너뜨렸다.


나는 그 언니를 붙잡고 거의 2시간을 떠들었다. 내가 뛰게 된 이유를 처음부터 끝까지. 언니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고 내가 졸릴때까지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돌아가서 4시간이나 잤다.


그 뒤로도 불면증은 나를 자주 찾았다. 대학교 졸업을 하고 취업 준비를 할 때도 잠을 못드는 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어김없이 누워서 어두운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친구에게 카톡을 했다.


-자?

-이제 자려고. 넌 오늘 잠 잘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나 계속 이렇게 못 자면 어떡하지..


나는 잠이 오지 않을 때면 걱정이 배가 됐다. 낚시바늘로 물고기를 한 마리 건져올리던 것을 그물을 쳐 수천마리의 고기를 잡아들이는 것 마냥, 걱정은 자꾸 자꾸 불었다. 그중에서 제일 가는 걱정은 '계속 못 자면 어쩌지?'였다.


는 잠이 오지 않으면 일단 눈을 감고 행복한 상상을 한다. 사랑받거나 성취하거나 자유로워지거나. 그런데도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휴대폰도 하고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훌라후프도 하고 조용히 할 수 있는건 다 한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끝없는 불안이 솟구친다. 그 다음으로 찾아오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모두가 단잠에 빠져 있을 때 나만 못잔다는 것. 너무 당연한 걸 나만 못한다는 것. 그리고 그 밤이 너무 길고 내내 혼자라는 것.


그것이 항상 나를 상처받게 했다. 외롭고 서글프고 밉고 고독하고 진절머리가 났다. 그 긴 밤, 긴 새벽이 나를 힘없이 만들었다.


그때 친구의 메시지가 나를 파고 들었다.


-전화할래?


전화보다는 메시지를 선호하는 친구의 제안이 얼떨떨했다. '못 자는 이''잘 수 있는 이'의 잠을 방해하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외로움을 견디는 건 더 어렵기에.. 난 주저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너 자야되는 거 아니야? 전화해도 돼?"
"너 잠 안 온다며. 맨날 그렇게 잘 못 자서 어떡해."
"나야 뭐, 못 자는 시기가 있는거지."
"정말 힘들겠다."


(눈물 장전. 하지만 꾹 참았다.)


"어쩔 수 없지. 근데 너는 졸린데 나 때문에 못 자는거 아니야?"
"괜찮아. 넌 매일 못 자는데.. 난 하루 못자는 것 뿐이야."


(눈물 줄줄. 이를 꽉 깨물고 참았다.)


"그래두.."
"그냥 네가 잠 올 때까지 수다나 떨자!"


(눈물 콸콸.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았다. 따흑)


친구는 내가 미안해할까봐 내내 졸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을 전화를 하다가 마침내 내가 하품을 하자 그제서야 친구는 잠이 오냐고 물었고, 그날 난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이 외에도 내 지인들은 잠이 오는 향초나 향수, 향기나는 안대, 차 등을 선물해주며 나의 잠을 '응원'해 줬다. 하지만 항상 이렇게 응원을 받을 순 없기에 이제 불면의 밤은 조용히 보내고 있지만, 벌써 새벽 3시를 훌쩍 넘긴 시간을 보면서 나는 또 무너진다.


그렇게  많은 응원을 받았지만, 오늘도 난 잠을 못 잔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남들 다 하는 걸 나만 못 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만 '나만' 이라는 예외가 항상 나를 괴롭게 만든다.


나도 잘 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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