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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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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Nov 20. 2020

잠 못드는 밤, 꿈은 계속 내리고

꿈들을 한데 모으면 나라도 세우겠다

내 꿈만 잘 기억해도 소설책 몇 권은 썼겠다!


호언장담한다. 나의 꿈은 매우 다양하고 기상천외하고 기이하고 재밌다. 고민을 하다하다 꿈에서까지 머리를 굴릴 때도 있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나 사건을 겪으면서 색다른 인상을 받을 때도 있고, 맥락없는 꿈들이 이어지며 하나의 플롯이 되기도 한다. 여튼 나의 꿈은 나쁘지만은 않다.


내가 생각하는 '단잠'은 전혀 꿈을 꾸지 않고 잠을 잘 때다. 열에 셋쯤은 그렇다. 나머지 일곱은 드라마틱, 아니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국경을 뛰어넘고 초능력을 발휘하고 세상을 종이접기 하듯 마구잡이로 주무른다. 어떤 꿈은 깨고 나서 영감이 되어 내 소설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하고, 어떤 꿈은 깨어난 것에 안도하여 나를 엉엉 울린다.


억울할 때도 있다. 도통 잠이 오지 않다가 겨우 선잠에 들었을 때 괴팍한 꿈을 꾸곤 한다. 앞서 나의 불면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나는 종종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나는 이런 때를 묶어서 '그런 시기'라고 칭하곤 한다.


요즘도 잠이 안 와?
그런 시기가 있어.
어떤 시기?
걱정이 많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잠이 잘 안 오는데, 그걸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면 한동안은 잠을 잘 못 자. 그냥 그런 시기야. 그런 시기가 지나면 또 잘 자.

철썩 철썩-

지면을 때리며 오고 가는 파도처럼.


 밀물처럼 잠이 밀려들어오다가 썰물처럼 잠이 빠져나간다. 그럼 나는 언젠가 다시 밀물이 밀려들어오겠거나 하면서 기다린다. (물론 이렇게 내려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따흑) 이렇게 생각하면 문제가 단순해진다. 복잡한 수식을 이용해서 답을 찾아나가는 게 아니라 단순하게.


'원래 어려운 수학 문제의 답은 0 아니면 1이랬어!'


그러다보면 잠들지 못하는 시간이 좀 덜 괴로워진다. 내가 나를 어르고 달래서 마음의 여유를 찾다보면 마침내 선잠이 들곤 하는데, 꼭 이럴 때 꿈을 꾼다.


달콤하고 행복한 꿈을 꾼다면 참 좋을텐데..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칼로 무썰듯이 싹 싹 썰어서 냄비에 탈탈 털어넣거나, 폼나게 드리블 하다가 덩크슛도 해보고, 비싼 스포츠카를 타고 긴 머리카락 휘날리며 드넓은 초원을 달려보고, 지루하면 지구 밖도 쓱 나갔다오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만나보고.


하지만 슬프게도 그런 꿈은 (선잠에선) 잘 찾아오지 않는다. 대부분 힘들고 괴로운 꿈을 꾼다. 대형 사고가 나거나, 무언가에 쫓기거나, 사람에게 배신 당하거나 등등등. 그럴 때면 얼마 자지도 못하고 깨곤 하는데 온 몸에 땀을 뻘뻘 흘린 채로 화들짝 놀라 일어난다. 가끔씩은 기억이 선명해 떨쳐버리기 위해 또다른 노력을 해야될 때도 있다.


어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통 잠에 들지 못하다가 새벽 2시쯤 눈을 감았는데 잠에 좀 들라 치니까 천둥 번개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하늘을 쪼개려나 내 집을 부수려나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천둥이었다. 요즘 한참 피곤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한 시간에 한 번씩 잠에서 깼고, 그때마다 고약한 꿈을 꿨다.


이럴때는 가까운데서 파도를 찾으면 된다.


샤워!


나는 결국 도중에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꿈에 시달리면서 어찌나 땀을 흘렸는지 잠옷이 젖어 있었다. 나는 샤워를 하고 보송보송한 새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자리에 누워 빠져나가는 썰물을 배웅했다.




안녕, 나의 질 나쁜 수면.

내일은 잔잔히 밀려들어와 오래 머물다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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