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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Nov 27. 2023

그곳, 참새 방앗간



경기도에 사는 남편 친구 셋이 주말을 맞아 가게로 놀러 왔다. 개업식 때 먹고 갔던 짬뽕 생각이 간절해서 왔다는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숙소 예약했는지부터 묻는다.


"어. 했지. 저번에 거긴 별로라고 해서 오늘은 오른쪽 집에다 예약 잡아놨어."


남편이 주방에서 대답했다.


우리 가게 양 옆, 앞 뒤 모두 모텔이다 보니 모텔 투숙객이 우리 손님이 되기도 하고 우리 손님이 모텔 투숙객이 되기도 하는 실정이다. 지난번에 가족이랑 다 함께 놀러 와서 왼쪽 편 집에 머물렀던 친구분이 그곳이 별로라고 해서 오른쪽 집에 예약을 잡았나 보다.






작정하고 놀러 온 티가 난다.

셋이서 차 한 대로 움직인 것만 봐도 얼마나 부어라 마셔라 할지 가늠이 다.

마흔이 넘어도 저런 개구진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하다. 잔뜩 신난 세 남자는 요리와 술을 고르고 그들과 어울릴 생각에 주방에서 웍질 하는 남편의 어깨도 한껏 신나 보인다.

몇십 년을 회만 뜨다가 어느 날 중식요리를 시작한 친구가 마냥 신기한가 그들은 넋을 놓고 남편의 불쇼를 구경했다.

몇 가지 요리와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짬뽕 세 그릇 차례로 나오 그렇게 가게 한구석에서 네 남자의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부랴부랴 마감을 하고 퇴근할 준비를 하는데 누군가 앙탈을 부리듯 말한다.


"아잇, 제수씨랑 한잔하고 싶어서 놀러 온 건데 그렇게 가면 내가 섭하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 주섬주섬 외투를 챙겨 입으며 배웅하러 나오는 그분의 능청스러움에 한바탕 웃으며 가게를 나섰다.

안 나와도 된다고 극구 사양하는 나와 괜찮다며 한사코 배웅하겠다는 남친구와 함께 잠시 밤거리를 걸었다.


"그나저나 제수씨가 참 힘들겠어요. 매일 가게 나오려면..."


"그쵸. 완전 힘들겠죠? 매일 열두 시간 이상을 가게에 매어있으니 애들이고 살림이고 아주 난리도 아니에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명랑한 척 오버하며 말했다.




이십 대와 삼십 대 그리고 사십 대를 지나며 쭉 지켜본 남편의 친구들, 대부분은 치가 떨리도록 진저리를 치며 손절했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다.

믿고 보증 줬는데 제대로 뒤통수치고 간 인간, 휴대폰 명의를 빌려줬다가 거액의 요금폭탄만 안겨주고 도망간 인간,

술중독으로 일찌감치 저 세상에 간 친구 같잖은 친구...

심지어 얼마 전에도 돈 빌려가서 갚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들을 차례로 겪으며 나는 남편 친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곤 했다.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


남편친구들을 모조리 싸잡아서 그렇게 욕하느라 그중에 아무 문제없는 몇몇 친구들까지 알게 모르게 피해를 본 것 같다.



이 밤, 그저 친구가 좋아서 여기까지 놀러 온 이 사십넘은 남자들괜스레 찡해온다. 그동안 뭘 그리 자주 오냐고 퉁을 줬는데 왠지 모를 미안함이 몰려왔다.

눈앞에 버스정류장이 보이 나는 친구분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만 가볼게요. 신호등만 건너면 버스정류장이거든요. 재미있게 노시고 낼 아침에 봬요."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느지막이 내려온 세 남자 얼굴이 가관이다. 어제의 신났던 표정은 사라지고 괴로움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짬뽕 세 그릇을 시켰지만 한 분은 거의 손도 못 대고 그대로 남기다시피 했다. 보다 못한 남편이 숙취제를 사다가 하나씩 나눠주자 기다렸다는 듯 다들 한 입에 털어 넣는다.


"자기 건 안 샀어?"


남편도 꽤나 아침에 괴로워했던 터라 의아해서 물었더니


"어. 난 살만해." 그런다.


음식 간 하는 사람이라 술 많이 마시게 하지 말라고 했던 내 부탁을 그냥 흘려듣지 않았나 보다.

화장실을 번갈아가며 들락거리던 세 사람은  혼이 반쯤 나간 표정으로 한참을 티브이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요지부동이다.

그렇게 힘든데 왜 마시냐 했더니 그 맛에 마시는 거라고 했다.ㅎㅎ


잠시 뒤 속이 좀 추슬러진 건지 부스럭부스럭 움직이기 시작하는 남자들....

"제수씨, 이거 계산 좀..."

헉--- 그들의 손에는 술 한 병씩 들려있었다.


"아니 무슨... 술을 사가요?"


유명관광지에 와서 기념품 사가 

이건 지역소주라서, 이건 중국 술인데 먹어보니 맛있어서 와이프 먹어보라고,

조그마한 술병이 예쁘기도 해서....

애주가들은 그렇게 술 한 병씩 품에 안고 떠나고 친구 가게 물건 하나라도 팔아주기 위한  마음씀 씀일 거라 나는 지레짐작하며 그들의 등뒤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또 놀러 오세요!"



그들이 머물다 간 자리를 바라보며 새삼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은 친구들을 정리하고도 아직 남편에게는 친구가 남아있고 이렇게 때때로 찾아와 준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뒤늦게야 깨닫는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

남편 옆에 친구가 한 명도 남아있지 않길 바라던 때도 있었는데 말이다.



조만간 이 공간은 그들에게 참새 방앗간이 될 수도 있겠다. 

잠시나마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맛있는 짬뽕이 있는 이곳에  누구든지 편안하게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호들갑스럽진 못해도  언제든 따뜻한 미소로 반겨줄 수 있다. 그 사람이 친구든 손님이든.

이곳에 머물렀던 순간이 그래서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공간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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