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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임이 Nov 03. 2024

나를 돌본다는 것



퇴근하자마자 눕는 일은 주부에게 있어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제는 그랬다.

집에 도착한 후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서 나는 곧장 잠자리로 향했다.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순간 그냥 그러고 싶었다.

몸이 그러고 싶다고 보내는 신호를 어제는 무시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세탁물을 확인하고 급한 빨래가 있으면 세탁기부터 돌려놓고 거실로 나와서 남편이랑 늦은 저녁식사를 같이 해야 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술상이 펼쳐진 식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습관처럼 남편의 루틴을 따라 했었다. 그 식탁에서 한 시간 가까이 이것저것 뱃속에 뭔가를 집어넣으며 남편이 틀어놓은 TV를 생각 없이 보다가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하고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나면 12시쯤, 그렇다고 바로 잠드는 것도 아니었다. 핸드폰으로 한 시간 가까이 뭔가를 보고 나서야 잠이 들었었다.

그렇게 생각 없이 밤늦게 음식을 먹으며 불편한 속사정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더니 갑자기 컨디션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없던 두통이 생기면서 말을 조금만 많이 해도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가게에서 일을 할 때도 몸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감각이 둔해지고 자꾸만 뒤뚱거리는 느낌...

주방에 들어가면 미끄러져 넘어질 것 같은 둔해진 몸의 감각과는 반대로 신경만 예민해져 가는 불쾌한 기분.

그러더니 몸살처럼 온몸으로 통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머리로부터 시작한 통증이 등, 허리 골반을 거쳐 고관절까지...

날씨가 꾸무룩해서 인지 며칠 내내 몸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별로 달라질 것 없던 퇴근 후 내 습관이 어제는 무슨 영문이었는지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한 것이다.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불을 끄고 이불속에 몸을 뉘어본지가 언제인지..

늦은 저녁을 먹느라 시끌벅적한 거실의 소음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불편한 뱃속을 무시하고 늘 그 자리에 앉아있던 내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늘은 혼자 고요히 누워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이들은 번갈아가며 방문을 열고 저녁 안 먹을 거냐고 묻고, 나는 엄마 꺼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고 했다. 그렇게 핸드폰도 보지 않고 잠에 빠져들었다. 열시도 안된 시간에 말이다.





새벽 5시 50분 늘 울리던 알림이 울리고 조금은 개운해진 몸을 느끼며 아들을 깨우러 일어났다.

어젯밤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거실을 지나 아들을 깨우고 주방정리를 시작했다.

먹다 남은 음식물들이 너저분하게 펼쳐져있는 식탁 위를 빠르게 치워나갔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해치우며 이제부터는 밤에 음식을 먹지 않기로 다짐다.

한바탕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세탁물을 분류해 빨래를 돌리고 건조대 위 빨래를 개키고 나니 시장끼가 몰려왔다.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어제저녁을 굶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싶다.


늦잠 자는 둘째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아침을 먹으려고 냉장고를 뒤적여본다.

해 먹을게 마땅치 않다. 제대로 된 장을 본지가 꽤 됐다. 그나마 애호박에 양파, 당근이 보이고 계란이라도 넉넉하게 있으니 다행이다.

기름을 두르지 않고 프라이를 하고 채소들은 적당히 썰어서 소금만 뿌려서 살짝 볶았다.

10분도 안 걸린 너무나 간단한 식사준비였지만 오랜만 나를 위한 아침상이 꽤 맘에 들어 오래오래 꼭꼭 씹어서 천천히 음미해 본다.

날 위한 밥상, 하루 한 끼라도 제대로 챙겨주고 싶다는 마음이 슬며시 들지만 다짐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한다.

어떤 다짐을 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 인간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늘의 이 충만한 느낌만 오래오래 간직하기로 한다.







#삶 #질서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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