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아지도 사람처럼 배운 놈이 잘한다.
해안동으로 마장을 이사하고
남편이 부지런하게 마장터에 공사를 하던 시기에
나는 내 단짝 친구와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벌인 일이었다.
지도교수님의 조언을 얻어
망아지를 순치하고 교육하는 사업을 구상하여
(순치란 사람손길에 순종하도록
동물을 길들이는 행동을 말한다.)
마사회주관 창업 경진대회에 출품을 했다.
기대이상으로 결과가 좋았고
생각지도 않게 상금도 탔다.
대회 목적이 창업을 권장하는 것이었으므로
수상팀이 창업 시엔 창업 지원금도 제공됐다.
(가로 열고, 이게 되네! 가로닫고)
기왕 이렇게 된 것,
에라 모르겠다. 하며 사업자 등록을 했다.
이렇게 친구와 나는
팔자에도 없던 망아지 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망아지 유치원 선생님이 된 거다.
말도 사람처럼 어릴 적부터
사람 손길에 순종하도록
잘 교육을 받으면 성품 좋고 차분한 말이 된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주먹구구식으로 망아지를 키우거나 방치를 했다.
환경적.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망아지 순치와 교육 파트는
현장에서 분명 필요한 분야이나
국내에 사업 중인 곳은 없었다.
마사회 심사위원들이 우리 사업 아이템에
관심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우리 사업은 1년간의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망아지가 태어난 날부터
망아지를 바닥에 눕히고
망아지의 예민한 청각과 촉각이
자극에 둔감화되도록 훈련시켰다.
부드럽고 다정한 사람의 손길에 망아지를 적응시켜
망아지의 예민한 귀와 온몸의 감각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일이었다.
1년 동안 망아지가 성장하는 단계에 따라
망아지를 리드로프를 이용하여 이끄는 연습과
다양한 훈련을 통해 사람손길에 순종하도록 만들었다.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말이 있듯이
망아지는 천방지축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생명이었다.
망아지가 덩치만 작았다 뿐이지
큰 말들을 교육시키는 일보다 더 위험했다.
조심성 없는 철없는 망아지들 때문에
언제든지 우리가 다칠 수 있는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한다 말했을 때
남편과 친구 남편은
나와 내 친구가 망아지를 교육시키다 다쳐서
병원에 실려가는 일을 걱정했다.
마장 일이 언제는 위험하지 않았던가.
말들을 훈련시키고 돌볼 때도
0.5톤 무게의 말에 발이 밟히거나
물리거나 말에 밀려서 저만치 나동그라졌다.
갑자기 날뛰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 잡고 있다가
손목이 나가거나 어깨가 다치는 일도
늘 있는 일이었다.
마장일에 단련이 된 우린 그들 걱정과 다르게
망아지 일을 겁내지 않았다.
우리가 자문을 구했던 지도교수님은
수의사출신인 교수님이었다.
우린 전 해에
그 교수님에게 말 질병관리 같은
수의 관련 전공과목과
망아지 순치와 교육에 관련된 전공수업을 들었다.
어쩌다 보니 교수님에게 배운 내용을
당장 사업으로 연결시킨 꼴이 되었는데
우리 사업에 대한 지도교수님의 관심과 응원도 매우 컸다.
일단 일을 저질러 놓으니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지도교수님 연락을 받고 연구실로 가보니
교수님의 소개로 망아지 순치 사업
첫 번째 계약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주마 생산목장의 오너 아들이
호주에서 수의학박사 논문을 준비 중인데
망아지 출생부터 1년 동안
망아지 앞다리 성장 연구를 원했다.
망아지 연구다 보니
태어날 때부터 망아지를 순치하고 교육해 줄
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망아지 앞다리 성장을 관찰하는
연구 데이터가 필요했다.
성장과정에 맞춰서 망아지 앞다리를
엑스레이 찍고
발굽 발달과정마다 성장 사진 자료가
필요하는 것이다.
망아지는 잠시도 가만히 서있지 못한다.
그런 망아지를 몇 분 동안 꼼짝 못 하게 세워놓고
사진도 아닌 엑스레이를 찍겠다니!
멋대로 돌아다닐 때 쓰라고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그 네다리로 망아지는 잘 도망갔고 맘대로 날뛰었다.
엑스레이를 찍는다고
눈치껏 가만히 서있는 망아지는
이세상엔 개코도 없었다.
동물병원에서 말 엑스레이를 찍어야 할 경우엔
보통은 말에게 진정제 주사를 놓았다.
말이 약에 취해 고개를 늘어뜨리고
제정신이 아닐 때
엑스레이판을 받치고
이동식 엑스레이 기계를 이용하여 사진을 찍었다.
망아지에게 주사를 놓는 행위는
연구 윤리에 위배되는 행위라
호주에 있는 연구자는
진정제 주사를 놓지 않고
망아지를 순치하고 잘 길들여서 맨 정신 상태로
엑스레이와 발굽 사진을 찍길 원했다.
그가 그러한 연구 계획을 설명하며
망아지 연구를 위해서
여러 수의사들에게 도움요청을 했으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모두 거절을 한 모양이었다.
수의사들은 말 엑스레이를 찍을 때
진정제를 놓고 찍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진정제 주사도 없이!
(더군다나 천방지축인) 망아지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다니.
그들이 일언지하 거절한 것은 당연했다.
그 일이 돌고 돌아 순진한 우리에게 왔다.
이제 막 태어날 망아지 20마리를 순치하여
진정제 주사를 놓지 않고
망아지를 한자리에 자리에 세워두고
2주에 한번, 한 달에 한 번씩
엑스레이와 발굽사진을 찍어야 했다.
1년 동안 진행될 프로젝트였다.
엑스레이를 찍는 일은 공동 연구자인
우리 지도교수님이 맡았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막막했지만
우리는 판을 벌려보기로 했다.
( 계약금도 받았는데 이러다 망하면 어쩌지?
친구야. 그땐 계약금 토해내고 확. 도망가불자!)
친구와 나는 돈이 욕심났다기보다
막 태어난 귀여운 망아지들을
마음껏 만지고 주무를 수 있는 게 좋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 손으로 망아지를 길들이는 일 자체가
너무나 매력 있게 느껴져서 시작한 일이었다.
내 친구와 나는
이미 말에 미쳐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망아지들의 유치원 선생님이 된다는 마음에
들떠서 유쾌하게 도전해 보기로 했다.
(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친구야. 가즈아.)
망아지가 태어날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가
망아지가 태어났다고 목장에서 연락을 해오면
새벽 6시, 우리는 깜깜한 새벽길을 달려
당장 목장으로 달려갔다.
이제 막 출산을 마친 어미 말은
극도로 예민했다.
우리에겐 망아지를 만지는 일도 중요했지만
예민하고 흥분한 어미 말을 진정시키고 교감하여
이제 막 태어난 망아지를 만질 수 있도록
어미 말의 신뢰를 얻는 일도 매우 중요했다.
목장장님이 어미 말을 붙들었고
우린 막 태어난 망아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망아지를 잡았다.
(망아지들은 도망가는데 선수다. 잘 안 잡힌다)
부드러운 모포를 깔아 둔 바닥에 눕힌다음
망아지의 눈과 코, 귀와 온몸을
부드러운 손길로 마사지했다.
우리는 망아지를 둔감화시키기위해
부스럭 거리는 비닐을 이용해서
망아지 몸을 문지르기도 했고
털 깎는 기계 삭모기 진동을 이용하여 마사지했다.
처음엔 우당탕 일어나려고 몸부림치던 망아지는
점점 우리 손길에 익숙해져서
우리가 마사지를 하는 동안
우리 무릎 위에서 스르륵 잠이 들기도 했다.
이제 막 새끼를 낳은 예민한 어미는
우리가 막 태어난 자기 새끼에게 달라붙어서
하는 짓을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우리가 망아지를 마사지하는 동안
어미는 우리 앞에 가만히 누워있는 새끼를 보며
우리가 새끼를 죽인 건 아닌건지 의심했다.
어미는 연신 새끼 냄새를 맡으며
망아지가 살아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럴 때마다 친구와 나는
어미 말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해하여
지금 우리가 새끼에게 하는 일을
어미에게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걱정하지 마.
지금은 애기를 마사지해주는 거야.
이것 봐. 애기도 편안하니까 잠이 들었잖아.
괜찮지? 별일 아니야.
처음에는 낯선 우리를 경계하며
까칠한 행동을 하던 어미들도
차츰 우리에게 적응을 했고 우릴 신뢰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니
우리에게 새끼를 내맡기고서
어미는 구석으로 가서 여유롭게 건초를 씹었다.
그런 어미의 행동의 변화도 우릴 기쁘게 했다.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1년 동안
우리는 깜깜한 새벽에
망아지들이 있는 생산목장으로 가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마친후에,
날이 밝고 아침이 되면
학교 실습마장으로 달려가 수업을 들었다.
프로젝트가 진행된 첫날,
현장 실무 경력 40년 베테랑 목장장은
우리가 망아지를 순치하는 모습을 곁에 서서 구경을 했다.
평소 멋대로 날뛰는 망아지들과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게 일상이던 목장장은
망아지가 나 죽었소. 하며
우리에게 몸을 내맡기는 걸 보니
신기해 죽겠다는 말을 했다.
현장 실무 베테랑인 그 양반은
망아지들의 그런 모습에 감동하여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망아지 순치 때마다 마방에 들어와서
선생님들을 도와드리면서 저도 배우겠습니다.
그가 겸손하게 그렇게 말하긴 했으나
현장에서 뼈가 굵은 40년 베테랑 그의 실력은
오히려 우리에게 큰 배움 거리가 되었다.
망아지들도 사람처럼
각자 성격이 달라서
얌전하게 우릴 잘 따르는 망아지가 있는가 하면
기질적으로 지랄맞고 성깔 있는
고집 센 망아지들도 있었다.
그런 망아지들을 교육시킬 땐
목장장은 우리 곁에서 우릴 거들며
지랄 맞은 망아지를 향해 거친 욕을 내뱉었다.
40년간 현장에서 다져진,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걸쭉한 육두문자였다.
망아지가 네다리로 딱 버티고 서서
한치의 움직임 없이 엑스레이 사진을 찍을 때,
앞다리 하날 접고
세 다리로 얌전히 버티고 서 발굽사진을 찍을 때,
뒷다리를 접고 세 다리로 버티고 서
발굽사진을 찍을 때,
비닐과 삭모기로 온몸을 문질러대도
망아지가 우리 품 안에서 조용히 자고 있을 때,
현장에서 허구한 날
망아지들과 싸우는 게 일이던 목장장은
연신 감탄하며 말했다.
살다 살다 망아지가 이러는 건 첨 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철없는 어린 망아지를
부드럽게 제어하여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과정은
더디고 기나긴 과정이었다.
사람이나 망아지나
가르침은 인내를 요하고 결과는 더뎠다.
사랑으로 망아지들의 신뢰를 얻고
그 신뢰 형성을 바탕으로
아주 천천히 모든 과정이 진행되었다.
사람이나 망아지나
교육을 하는 방식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망아지들은 태어나서 5-6개월쯤 자라면
엄마 젖을 떼고
엄마와 떨어져서 독립을 했다.
이러한 과정을 이유. 한다라고 말한다.
태어나 처음 엄마와 떨어진 망아지들은
엄마를 찾아 며칠을 끊임없이 울었다.
이건 엄마 말도 마찬가지였다.
애기와 완전히 분리되는 이 시기에
엄마말과 망아지들은
서로를 찾으며 일주일정도 구슬프게 울다가
이내 각자의 생활에 적응하며 지냈다.
ㅡ엄마를 잊고, 애기를 잊고ㅡ
막 엄마랑 분리된 망아지들은
같은 처지 망아지들과
둘씩 짝지어서 마방에서 한 달여간 함께 지냈다.
이때 망아지들은 서로에게 의지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이내 온전히 독립해서 자기 마방에서 지냈다.
날이 좋을 때
이렇게 이유한 망아지들끼리
따로 모아 초지에서 놀게 한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유치원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 같았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6개월 차에
새벽 6시, 2주 만에 목장을 갔더니
망아지들이 초지 운동장에 모여있었다.
내가 울타리를 넘어 망아지들이 모여있는
초지로 들어서자 한 놈씩 다가왔다.
녀석들이 나에게 아는 체를 하며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제일 처음 다가온 놈은
그중 가장 형인 쿨모닝이라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은 다른 녀석들에 비해
첫 순치를 늦게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손길을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망아지들중 가장 겁이 많아서
틈만 나면 날뛰던 쿨모닝은
순치 첫날, 우릴 피해 우탕탕 도망가다
점프해 마방 벽 창살 울타리까지 튀어올랐다.
녀석은 그날 우리에게 뒷발 날라차기를 선물했다.
그랬던 놈들이
6개월간 순치하며 친밀해진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냄새를 맡고 입으로 장난을 걸어왔다.
내가 걷는 방향으로 졸졸 따라왔는데
나는 그 모습에 너무 신나서 한참을 웃었다.
말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망아지들의 모습이
얼마나 놀라운 모습인지 알 거다.
국내 망아지들의 99.9프로는
제대로 된 순치교육을 받지 않는다.
한마디로 절로 크게 내버려둔다는 뜻이다.
그런 망아지들은 사람 손길을 피해 다닌다.
쉬이 잡히지도 않는다.
그러다
망아지들은 일 년쯤 성장한 후에
경주마 데뷔를 위해 첫 훈련을 시작한다.
이때 조련사들은
사람손길에 익숙하지 않은 쌩말을 훈련시키느라
낙마나 부상은 그냥 늘 달고 살았다.
애기 때부터 순치된 망아지들은
이미 사람손에 익숙하므로
데뷔를 위한 훈련도 수월하고 효과적이었다.
경주마로서 데뷔 때도
좋은 성적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것이 순치의 순기능인 것이다.
순치가 전혀 되지 않은 망아지들을 만져보겠다고
사람이 덥석 다가간다면
ㅡ아니, 다가가는 낌새라도 보일라치면ㅡ
그 망아지는 백이면 백,
겁나 잘 달릴 수 있는 네 다리로
시속 50으로 저 멀리 내뺀다.
나 잡아봐라아 하듯이.
만약에 누군가가
망아지 목에 로프라도 걸겠다고 시도했다간
망아지는 로프를 잡은 그를 매달고 질질 끌며
시속 80으로 초지 울타리를 넘어갈 수도 있다.
(뻥 좀 보태서.)
그러나
태어난 날부터 순치교육을 받은 우리 망아지들,
얘네는 그냥 강아지다.
형아 망아지들이 나를 알아보고 졸졸 쫒아오니
영문도 모르고
동생 망아지들도 덩달아 줄줄이 따라왔다.
나는
유치원 샘들처럼
망아지 행렬에 앞장서서 외쳤다.
말린이 여러분.
이리 모이세요오.
한 줄로 서세요오.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나를 따라오는 망아지 무리를 이끌며
앞장서서 걸었다.
그렇게 자란 망아지들은
우리 계획대로
1년 동안 앞다리 연구 프로젝트에 필요한
엑스레이와 발굽사진 찍는 일에
훌륭하게 잘 협조해 주었다.
호주 연구팀은 우리가 보낸
1년간의 엑스레이 사진과 발굽사진 데이터를 받고는 무척 흡족해했다.
진정제 주사 없이 순치만으로
이러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우리를 놀라워했다.
1년 동안 친구와 내 손길에
순치되고 교육된 망아지들은 잘 성장해서
육지로 올라가 경주마 데뷔 훈련을 받았다.
현재 그 망아지들은 경주마로 데뷔하여
경주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잘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