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이 다람쥐 발톱만큼이라도 누군가에게 여운을 남긴다면.
원데이 클래스 교육 프로그램을 원한다며
마장을 찾아온 여자분은 혼자였다.
15분 승마 기초 레슨을 받고
15분 혼자 직접 고삐를 잡고 말을 조정하며
편안한 걸음으로 천천히 초원을 트레킹했다.
남편은 그녀가 탄 말 곁에서 함께 걸었다.
몇번 타본 실력인듯 고삐 사용이 능숙해서 물으니
육지에서 3개월가량 배운적이 있다고 했다.
체험 수업이 끝나서
말에서 내리는 그녀에게 어땠는지 물으니
그녀는 눈빛을 반짝이며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좋았어요
꼭 여기서 해보고 싶었던 경험이였어요.
몇년 전,
글을 쓰는 내 막내 시누이가
중년에 말에 미쳐서 살고 있는
우리 이야기를 책에 담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내 막내 시누이의 팬이라고 했다.
그녀는 시누이가 쓴 글을 읽으며
남편과 나의 제주 삶을 상상해왔던 모양이다.
그녀가 글을 읽으며 상상했던
남편과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마장에서 만난 지금 우리 모습은 어땠을까?
우릴 만나기전,
그녀가 우리의 어떤 모습을 상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남편과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듯한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듯했다.
그녀는 결제를 끝내고서 가방을 뒤적이더니
미리 준비해온듯한 선물을 내밀었다.
선물이에요.
두분께 드리고 싶어서 준비해온거에요.
갑자기 그녀가 내민 선물에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그 선물을 가슴에 꼭 안으며 말했다.
저희가 감사 선물을 드려야할텐데
이런 선물을 받게 되다니.
제가 받아도 될지 모르겠네요.
근데 감동이에요.
정말 고맙습니다.
우릴 위해 미리 선물을 준비해온
그이의 진심이 마음에 와 닿아
정중하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고개를 들어 그녀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두눈에 눈물을 그렁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내가 왜 울컥하지?
그녀의 갑작스런 울먹임에 당황했다.
그이는 어쩌면 내 시누이가 쓴 글에서 읽은바대로
우리 부부의 이 치열한 삶의 스토리를 알고 있을터였다.
거친 말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 부부의 지난 삶과
우리 부부의 지금과
우리 부부와 마장에서 공유한 그날 그 시간들이
그녀에게 알수없는
울림과 여운이 되었는지도 모를일이다.
갑작스런 그녀의 눈물을 보니
나도 뭔가
순간 마음속에 데엥하니 징이 울렸다.
예기치 않은 순간이었고 낯선 감정이었다.
그녀는 오후에 다시 마장을 찾아와
한시간 추가 레슨을 받고 트레킹을 즐겼으며
아주 오랜 시간동안
내가 회원들 레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연강으로 계속 이어지던
내 수업이 끝나고 돌아보니
그녀는 아직도 떠나지 않고
마장에서 일하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거니 그녀가 말했다.
두 분 이야기를 읽고서
말 타는 느낌이 너무 궁금해서
잠깐이긴 했지만 말을 배웠지요.
두 분 마장에 와서 꼭 해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중 하나를 해낸 기분이에요.
저에게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요.
하루종일 마장에서 일하느라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우리에게
그녀는 함께 사진을 찍을수 있겠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사진이라면 아주 질색인 나.이건만)
음.제가 사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하면서도
나는 흥쾌히 그녀의 점잖은 부탁을 받아들였다.
썬글라스에. 모자를 뒤집어 쓰고.
스포츠 마스크로 얼굴을 감춘 채
흙먼지로 엉망이 된 옷차림과
흙장갑을 낀 모습으로
남편과 나는 그녀와 사진을 찍었다.
짐작컨데,
그녀는 우리를 만난 이야기로
그녀의 감상이 담긴 글을 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블로그 판.이든
인스타든. 네이버 리뷰든. 뭐든 간에.
남편과 나의 하루.
말과 함께 사는 남편과 나의 하루는 치열하다.
날이 좋으나 궂으나
잠시도 쉴틈없이 온몸을 움직여 하루를 살아낸다.
남편이 말이랑 살아볼란다.하며 선언했을 때
애초에 남편이 기대하고 꿈꾸던
장미빛처럼 완벽하게 행복한 삶이란
현실엔 없었다.
인생 2막이 시작되자마자
우리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서
내 말들과 살아남고자 죽을둥 살둥 몸부림을 쳤다.
거친 마장 일에 익숙해지며
거친 승마판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그들을 온몸으로 겪어냈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만만치 않은 현실에 압도되어
혹여나 우리 자신이 불행하다 느끼게될까 두려워
엄청난 집중력으로 하루를 살았다.
그렇게 하루 하루 집중해서 살다보면
고통스러운 순간에 허덕이다가도
나도 모르게
말들 덕분에 웃었고
말들을 지켜보며
가장 평화로운 순간을 경험하며 위로받곤 했다.
그것은 아주 원초적인 행복이었다.
우리가 행복을 찾아 구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속에서 자연스럽게
내 몸속 세포들과
나의 가장 예민한 동물적인 감각이 느끼는
소박하고 은밀한 행복감이었다.
그러한 행복은 찰라에 왔다가는 것이어서
우리가 예민하게 행복감지 레이다를 켜두지 않으면
그 행복은 우리에게 다가와도 머물지 못했고
바람처럼 우릴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세상이 주는 행복과는 달랐다.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선으로
우리 삶을 바라볼수 있을 때 느껴지는 행복이었다.
그 때가 바로 행복한 순간임을
깨우칠수 있는 인생관으로
우리를 단속하며 무장을 해야만
겨우 느껴지는 행복이었다.
어쩌면 우린 그러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
이 삶을 시작했던 건지도 모른다.
애초에 우리가 머리속으로 상상하며
바라고 예상했던 행복과는
전혀 결이 다르고 깊이가 다른 행복이었다.
행복한 순간이
매일 우리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잠깐씩이라도
남편과 나는 그것이 행복한 순간임을
깨닫고 느낄수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원하던 삶에
근접한 삶을 살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그 날 우리를 찾아온
그녀의 눈물과 행복한 미소는
우리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다.
우리의 집중된 삶이
다람쥐 발톱만큼이라도
누군가에게 삶의 여운을 남기는 무엇이 된다면
우린 잘 살고 있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똥치우는 중년은 상상도 못했어]
브런치 연재를 마치며.
남편과 나의 말 인생에 대해
글을 쓰리라 작정했을 때
나는 제일 먼저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다.
우리 스토리가 즐겁고 명랑한 스토리가 아니라
중년에 죽어라 고생한 이야기였기에
막상 판이 벌어지면
내가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나도 몰랐다.
이가 갈리도록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넘어왔으니
글을 쓸 때 그 감정들이 되살아나
글 어느곳에서
그동안 쌓아둔 울분과 화가 치밀어 오를지
나도 모르니 말이다.
어. 그럼.당연하지. 그렇게 해.
당신 쓰고 싶은대로 아쉬움없이 써봐.
그가 그렇게 말했고 나는 연재를 시작했다.
그렇게 쓴 프롤로그 제목은
마눌, 니 인생은 이제 X됐다.였다.
남편은 첫 글 제목에 적잖이 당황했으나
나는 직관적이고 명확한 제목이
아주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학교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학교에서 내가 겪었던 불쾌한 경험들이 다시 생생했다.
어금니에 힘주며 억눌렀던
지난 감정들과 트라우마가 되살아났다.
학교에서 겪은(된통당한) 얘기를 꺼내려
노트북앞에 앉으니
공황증세가 다시 도졌다.
도무지 진정되지가 않았다.
글을 쓰려던 노트북 앞에서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공황증세가 올 때마다
내가 나를 진정시키는 방법이었는데
왠일인지 증상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학교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때마다 그랬다.
쯧쯧.나약한 인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지난 감정에 휘둘리는거니?
나는 여전히 그 때 감정을 털어내지 못한
못난 나를 비웃었다.
노트북앞에서 몇일간 불안정한 나를 보더니
남편이 말했다.
아쉬움없이 당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써.
이 글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쓰는 글이 될꺼야.
다 쓰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질껄?
말을 아끼지 말고
감정도 억누르지 말고
쓰고 싶은대로 솔직하게 써봐.
나는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내 감정에 귀를 기울이며
솔직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편 말대로 그러고나니
다음 편 그리고 그 다음 편 글을 쓸 땐
조금씩 편안했고 묵은 감정들은
활자화된 글속에서 자유로워졌다.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의 이야기들도
덤덤하게 훌륭한 글로 담아내시는
작가님들을 떠올렸다.
나는 아직
내 경험을 덤덤하게 글로 풀어낼수있는
마음의 근육이 여물지 못했구나 느꼈다.
글은 참 요상하다.
29화 어줍잖은 글로 내 마음속 이야기들을
토해내듯이 뱉고 보니
체한기가 가신듯 잠잠하고 고요하다.
남편 말대로다.
새해가 되고
꼬박 한달동안 끊임없이 눈이 내렸다.
중산간에 있는 마장에도
중산간에 있는 우리 집 마당에도
발목이 잠길만큼 눈이 쌓였다.
눈은 쌓인 눈위로 끊임없이 내려앉았다.
새해가 되어 서로에게 축복을 빌며
희망을 이야기 할 때,
남편과 나는
말과 함께 사는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우리의 인생 2막은 끝이 났다.
오랜 시간 고민을 거듭한 후에
남편과 나는 우리 인생 2막은
이쯤에서 막을 내려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생 2막 말 인생을 살아오면서
우리가 60대가 되고 70대가 되어도
이 삶을 이어가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마무리 지을 일이었다.
이러한 결정을 한 후에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이 살아보고 싶었던 말 인생,
살아보니 어땠어?
남편은 그렇게 말했다.
원없이 해보고 싶은 것도 해봤고
최선도 다해봤고
원없이 고생도 해봤으니
아쉬움도 미련도 없네.
정말 없어?
응.없어.
그 말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말인지 모른다.
살아보고 싶었던 삶을 살아본 후에
아쉬움없고 미련도 없다.라고 말할수 있다니.
정말 멋진 일 아닌가?
나는 한편으론 남편 말에 안도했다.
남편이 70대 80대가 된 인생말미에
나 이런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는데
그걸 못해봐서 아쉽다.말하진 않겠지.
다행이야.
그래. 이만하면 됐다.
지나온 시간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이루었고(혹은 무얼 이루지 못했고)
무엇을 잃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말과 함께 살았던 우리 인생은
남편과 내 삶의 1/5에 가까운 시간들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끝맺을 때를 알아 끝맺음을 할수 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우린 그렇게 우리의 인생 2막의 삶을 마무리했다.
허무하거나 무기력해지진 않았다.
내 새끼같은 말들을
우리처럼 사랑으로 돌봐줄 사람들에게로 떠나보내고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날,
이제 막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아직
마장에서 쓰던 짐들을 풀지도 못한채
당장 그날 밤부터 거짓말처럼 앓아누웠다.
둘다 약속이나 한듯이
한달 가까이 끙끙 앓았다.
남편과 내가 앓아 누워있는 동안
마당위로 눈이 쌓여갔다.
아쉬움없는 마무리라 스스로 위안삼았지만
남편과 내 마음은
내 새끼같은 말들을 떠나보내서인지
아주 심하게 몸살을 했다.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몸살이었다.
폭설에 고립된 채
중산간 우리 집 거실에서 한번씩 마당을 내다봤다.
저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
마당으로 나가서 슥슥 눈을 헤치며 걸어가
대문옆 목련 나무 앞에 서서 나무를 올려다 보았다.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목련나무에도
단단한 꽃 봉우리가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매화나무도 동그랗게 꽃 봉우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 눈이 그치면
수선화가 선발대처럼 꽃을 피울테지.
그 다음은 목련나무가,다음은 매화가,
이젠 내 차례야 하면서 꽃을 피울꺼야.
그러다보면 거짓말처럼
봄볕을 타고 노랑 나비가 날아들겠지.
매년 봄마다 늘 그랬으니까.
나는 나무들을 올려다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흐르는 강물처럼.책에서 파울로 코엘료가 그랬다.
나는 언제나 강이 흐르는 쪽으로 갑니다.
우리는 그동안
강물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살아왔다.
이제 강물은 우리를 데리고
또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우리는 인생의 강물이 흐르는 대로
온 몸의 힘을 뺀 채
또 다시 우릴 내어 맡겨볼 생각이다.
말과 지내는 이야기는 재미도 없고
상상하기 어려운 낯선 이야기였음이 분명한데
많은 분들이 글을 읽고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셨다.
그것은 글에 대한 격려를 넘어
남편과 나의 인생에 대한
격려와 응원으로 느껴졌다.
특히 마장에서 유달리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잠못 이루는 깊은 밤이 되었을 때,
여러 작가님들이 남겨주신
한 문장 한 문장
마음이 담긴 응원 댓글을 읽으며 큰 위로를 느꼈다.
연재 글을 마무리 하며
내가 사랑하는 글벗들과
브런치에서 글로 마음을 나눠주는 분들께
깊은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