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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동별곡 Dec 20. 2018

음악극 '옥수동 이야기' 제작일지*

[공동창작 프로젝트] 옥수책빵 전은정 선생님과 함께 걷는 길


10월 24일 나른한 수요일 오전 10시. 내부는 좁지만 벽마다 시원하게 뚫린 창문으로 도시의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옥수책빵’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생태 전문 출판사 ‘목수책방’과 북카페 ‘옥수책빵’을 운영하고 있는 전은정 선생님의 시선으로 옥수동 골목을 걸어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막히게 맛있는 김밥과 차로 힘을 충전한 뒤, 공동창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또 다른 주민 기획자 장상미 선생님과 옥수동 탐방기를 연극으로 제작해 올릴 한양대학교 박선희 연출을 포함한 공동창작 프로젝트 팀원들이 길을 나섰다.


옥수책빵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작은 계단에는 풀들이 가득했다. 작은 제비꽃들이 앉아있는 정겨운 계단에는 아쉽게도 담배꽁초들이 눈에 띄었다. 계단을 내려가면 보이는 오래된 ‘청수 여관’은 아직도 운영을 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 모습 그대로 있었을 여관에서는 아직도 장기 투숙객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옥수동의 좁은 주택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낡은 건물들보다 훨씬 오래되어 보이는 향나무들이 곳곳에 보인다. 담을 밀어내면서, 또는 건물들 사이로 꼿꼿이 햇빛을 받기 위해 몸을 뻗은 향나무들에게는 거쳐 온 삶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시멘트 골목 사이에서도 푸른 청보리와 부추, 배추, 이름 모를 색색의 꽃들이 스티로폼과 화분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작은 고무대야 속에서도 몇 십 년을 잎을 피우며 자라온 나무도 그만큼 오래된 집 앞을 지키고 있었다.





옥수동 골목에는 헐리고 공사가 진행 중인 집터도 있었다. 지난번에 이 길을 걸었을 때는 없던 새로운 건물이 이미 뒤에 불쑥 솟아있었다. 집 하나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래된 덩굴과 마당 구석을 지키던 나무만이 남았다. 벽이 사라지고 해가 잘 드는 공터에는 누군가가 부지런히 내어 놓은 빨간 고추가 따뜻한 햇살에 마르고 있었다.





골목을 빠져나와 옥수역 고가도로 밑 ‘다락 옥수’에서 열리는 전시를 지나자 천년고찰 ‘미타사’가 보였다. 미타사는 신라 진성여왕 시대에 창건되어 고려 예종 때 옥수동에 자리 잡은 도심 속 전통사찰이다. 옆에는 새로 지어진 아파트들이 하늘 높게 들어서 있었지만, 오랜 세월 보호수들의 수호 아래 고요히 잠겨있는 절에는 햇빛이 가득했다.  



미타사를 나와 옥수역 근처 한강으로 향하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곳곳이 그늘이었다. 넘실거리는 한강을 배경으로 동네 주민들이 운동을 하거나 각종 동호회 사람들이 자전거를 즐기고 있었지만, 차가운 시멘트 빛 너머 또 다른 한강뷰의 아파트들이 보이는 풍경에는 어쩔 수 없는 도시의 삭막함이 있었다.







산책은 ‘두뭇개 나루터 공원’ ‘옥정 초등학교’를 지나 다시 옥수책빵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났다. 작은 나루터가 있었던 옥수동의 옛 이름인 ‘두뭇개(두물개)’를 따서 이름을 지은 공원은 역과 아파트 사이의 무척 작은 공간에 끼어 있었다. 하지만 늙은 느티나무가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는 공원에서는 여전히 많은 주민들이 오가고 만나고 있었다. 길 건너편의 옥정 초등학교는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옆을 둘러싸고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들이 증명하듯, 옥수역의 중심임을 뽐내고 있었다.


옥정 초등학교를 빙 돌아 옥수책빵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길. 모두가 잠시 멈춰 서 옥수역 앞 카페에 모여 앉았다. 옥수동의 좁은 골목과 한강 근처를 돌아본 긴 산책을 마치며 쌀쌀한 날씨에 살짝 굳어버린 몸을 따뜻한 커피와 차로 녹였다. 촬영 스케치와 연극으로 담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늘 사이로 따뜻한 햇볕이 비쳐드는 작은 공간에 서로 먼저 앉으라고 의자를 끌어다 놓았다.






에디터  임규리

편   집  손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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