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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동별곡 Dec 18. 2018

성수동 탐사단 작업일지**

[마을탐사 프로젝트] 성수동의 가장 뜨거운 진심



9월의 이야기
나의 예술, 우리의 예술





첫 기획안을 쓰다


9월 초. 첫 기획안 발표가 있었다. 각자 해왔던 작업을 기반으로 4명의 예술가들은 각자의 개성과 목표가 뚜렷한 마을 문화 예술 프로그램 기획안을 소개했다. 아직 1차 발표인 만큼, 앞으로의 수정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현대 무용가 밝넝쿨은 ‘성수로운 춤’이라는 ‘춤 선물’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성수동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춤을 만들어 선물한다는 것이다. 진행 계획에 대해서는 성수동을 대표할 만한 직업군을 선정하고 종사자들을 인터뷰하겠다고 밝혔지만, 몸이 아닌 말로 해야 하는 인터뷰는 아직 낯설다며 웃었다. 


로코리기는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 놀며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발달 장애 아이들과 가족들의 깊은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접근하겠다는 따뜻한 마음이 돋보였다.


권경준 건축가는 성수동 탐사단과 기획 단계부터 함께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어가고자 했다. 가로등이 없는 골목길처럼 우범 지역이 될 우려가 있는 공간을 리폼하고, 성수동 탐사단의 전시나 공연을 바로 그 공간에서 진행하자는 기획안이었다. 문화기획자를 꿈꾸는 건축가답게 공간 기획부터 설치, 활용, 철거까지 성수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정소원 극작가는 2개의 기획안을 들고 왔다. 성수동 주민의 사연을 즉흥극(실내극)으로 만드는 ‘보이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성수동의 역사적 가치를 알릴 수 있는 퓨전 판소리극 ‘성동별곡’을 만드는 것이었다. 두 기획안에는 모두 연극을 통해 성수동의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극작가의 노력이 묻어났다. 이후 정소원 극작가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판소리극을 만들기로 마음을 정했다. 

성수동 탐사단_첫 기획안 발표 현장



한 발자국 더, 우리 모두의 예술을 향해


9월 중순이 되자 성수동 탐사단의 목표는 더욱 뚜렷해졌다. 10월 9일에 있을 쇼케이스에서 선보일 기획안과 같은 날 주민들과 함께할 워크숍을 모두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자신의 계획을 말할 때만큼은 모두 눈빛이 반짝였다. 결과에 상관없이 모두가 각자의 기획에는 자신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해 왔던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튼튼한 기반이 되었고, 그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기획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소원 극작가는 ‘재미’와 ‘의미’ 중 어느 것에 비중을 두고 작업을 할지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성수동 주민들의 사연을 즉흥극으로 풀어내면 재밌겠지만, 성수동의 숨어있는 역사를 찾아내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 카페 거리 등 현재의 문화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 벗어나, 살곶이 다리나 경복궁에서 뚝섬까지의 변천 과정 등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성수동의 역사를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퓨전 판소리극 ‘미스터 성동’의 기획이 탄생했다. 판소리극 ‘미스터 성동’은 주민들과 성수동 거리를 걷는 여행을 기획하던 사회적 기업 청년 대표가 성수동에서 30년 넘게 거주한 나이든 독립 운동가를 만나 성수동 곳곳의 숨겨진 역사 이야기를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정소원 극작가는 쇼케이스에서 약 50분 정도 공연을 실제로 보여준 후, 1시간 동안 주민들과 함께 연습한 뒤 주민들이 배우가 되어 직접 공연을 해보는 워크숍을 준비했다. 큰 토대에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녹여내는 방법은 여전히 숙제로 남았지만, 성수동의 숨은 역사를 주민들과 나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


밝넝쿨 무용가는 ‘성수로운 춤’ 기획을 더욱 발전시켰다. 한 인간이 하나의 직업을 자신의 업으로 삼아 평생을 살아가는 행위, ‘천직’의 숭고함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성수동의 장인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을 표현한 오직 단 한 명만을 위한 하나의 안무를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서 낡은 취급을 받기도 하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장인의 모습은 밝넝쿨 무용가가 생각하는 진정한 예술이기도 했다. ‘성수로운 춤’은 삶과 예술을 하나로 이어지는 숭고한 여정으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을 함께 축복하고자 하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는 기획이었다.


권경준 기획자는 첫 기획안을 더 구체적으로 다듬어 ‘성수동 골목 예찬’을 만들었다. ‘성수동 골목 예찬’은 서울숲역에서 뚝섬역 사이의 골목길과 성수 아트홀 뒷골목길의 벽면을 리폼하고, 어두컴컴한 골목을 밝히면서도 근처 주민들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을 조명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다. 더 나아가 리모델링된 골목에는 물과 햇빛에 의해 변형이 잘 되지 않는 부조 전시를 하고, 무용이나 이동식 거리극, 관객 참여형 스트릿 아트 공연 등 상시로 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권경준 기획자는 골목 리폼 후 운영될 모든 프로그램은 성수동 탐사단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역시 실용성과 예술을 모두 아우르는 능력을 갖춘 문화기획자다운 커다란 프로젝트였다.


로코리기 역시 기존의 기획을 발전시킨 ‘달팽이의 탐험’ 기획안을 마련했다. ‘달팽이의 탐험’은 발달장애를 가진 6세 이하의 그룹과 예비 장애(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이다)를 가진 6세 이하의 10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을 만들어 문화 놀이에 주기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기획이다. 성수동에 위치한 공방들이 문화 예술 놀이 학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놀이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을 판매하여 장애 가족의 경제적 자립을 도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예정이다. 문화 예술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 관계망이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문화 안전망으로 확장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기획이었다.



성수동 탐사단 회의 현장 스케치





10월의 이야기
주민들에게 묻다



10월 9일. 맑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마을기획 쇼케이스가 열렸다. 성수동 탐사단이 만든 마을 기획이 처음으로 주민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주민들은 성수동 탐사단과 옥수동 탐사단이 준비한 8가지 마을 기획을 듣고, 마을별로 가장 이루어졌으면 하는 기획에 투표했다. 주민들의 소중한 의견은 ‘주민 선정 마을 기획’이 되어 시범 운영되고, 수정을 거쳐 곧 주민들을 찾아가게 된다.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마을 기획이 어느 순간 우리의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같은 날에는 주민 앙케이트뿐 아니라 마을 탐사단들의 창의 워크숍도 열렸다. 밝넝쿨 무용가는 ‘저마다의 무용’ 워크숍을 준비하여 개인의 사주명리에 맞는 춤을 주민들에게 선물했고, 정소원 극작가는 퓨전 판소리극 ‘미스터 성동’을 통해 ‘살곶이’ 지명의 유래를 유쾌하게 소개했다.


‘나의 예술’에서 ‘우리의 예술’로 나아가는 길에는 어쩌면 많은 시행착오가 기다릴지도 모른다. 아무리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고 해도 언제나 ‘나’의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차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마음의 문을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 줄 경험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성수동 탐사단들이 보여 준 진심은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가장 뜨거운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들의 진심을 우리 동네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밝넝쿨 무용가의 '저마다의 무용' 워크숍 현장_개인의 사주명리에 맞는 춤을 주민들에게 선물한다.



처방받은 춤을 밝넝쿨 무용가에게 직접 배우며 완성되는 '저마다의 무용' 워크숍




-끝



에디터 임규리

편   집 손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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