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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아이북스 Dec 12. 2022

[책 미리보기 #3] 아이를 '취조'하지 마세요




할머니의 여름휴가 │ 안녕달 글·그림 │ 창비

 요즘 저희 아이가 완전히 매료되어 매일 읽는 그림책이 있어요. 안녕달 작가의 《할머니의 여름휴가》입니다. 이 책은 할머니와 강아지(메리)가 더운 여름날 방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할머니 앞에는 작은 선풍기가 하나 놓여 있지만, 선풍기 바람은 더위에 비해 너무 약해요.(앞 장에서 강풍 버튼이 고장 나서 약풍만 나오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어요.) 더운 날인데 에어컨도 없고, 창문도 활짝 열려 있습니다. 할머니는 밥상을 차려 놓고도 밥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고, 강아지도 지친 듯 할머니 옆에 앉아 있어요.


  이 책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해당 장면을 펼쳐서 아이와 함께 봐 주세요. 이 장면은 글이 없고 그림만 있어요. 이 책을 예로 들어, 대화가 아니라 부모가 일방적으로 책을 읽어 주고 질문한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펼쳐지리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부모 : (글자가 없는 장면을 보고 ‘여기는 읽을 게 없네’라고 생각한다.) 여기 누가 있지?
아이 : 할머니!
부모 : 할머니가 뭐 해?
아이 : (차려진 밥상을 보고) 밥 먹어. 시금치도 먹어.
부모 : (선풍기를 가리키며) 여기 이건 뭐야?
아이 : 선풍기.
부모 : 할머니가 왜 밥을 안 먹는 것 같아?
아이 : (할머니가 밥을 안 먹는지 몰랐다는 듯 어리둥절해한다.) 응?
부모 : 할머니가 밥을 안 먹고 있잖아. 왜 안 드실까? 잘 모르겠어?
아이 : (부모의 추궁에 도망가고 싶어진다.) 몰라요.



 부모의 질문과 아이의 대답을 보면 모두 한 번 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그림만 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 것들입니다. 부모는 열심히 누가, 언제, 무엇을, 왜 했는지 꼼꼼하게 질문했기 때문에 아이와 충분히 상호 작용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아이의 발달을 크게 돕지 못한 것이지요. 제 강의에서는 이런 대화를 ‘취조’라고 부릅니다. 취조는 범죄 사실을 밝히기 위해 혐의자나 죄인을 조사하는 것을 말하지요. 이렇게 강하게 비유할 정도로 절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방법입니다. 아이의 독서 동기가 이 순간 점점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충격적 어휘를 사용해서라도 알려드리고 싶어요.

  다른 방식의 대화도 한번 살펴볼까요?



부모 : (미리 책을 읽어 봐서 그림의 중요한 부분을 알고 있다.) 할머니가 더워서 선풍기를 바람을 쐬고 있네. 할머니가 뭐 해?
아이 : (차려진 밥상을 보고) 할머니가 밥 먹어. 시금치도 먹어.
부모 : (웃으며) 그러네. 할머니 밥상에 밥도 있고, 시금치도 있구나. 그런데 아직 안 드시는 것 같아. 너무 더워서 먹기 싫은 걸까? 밥을 하나도 안 드셨네.
아이 : (부모의 말이 맞다는 듯이 선풍기를 가리키며) 할머니가 선풍기 틀었어.
부모 : 그러네, 할머니가 더워서 선풍기 틀었네. 그런데 선풍기가 고장 나서(앞부분의 선풍기가 고장 났던 장면을 다시 보여 주고 돌아온다.) 시원하지는 않은가 봐.



 앞의 대화에서 아이가 어떠한 사고를 하고 있는지 보이나요? 그림을 보면서 부모와 함께 할머니의 행동을 꼼꼼하게 읽고, 그 행동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지요. 아이의 말을 보면, 아이가 그림 속 인물의 행동은 잘 읽을 수 있지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어려워합니다. 이때 부모가 아이와 함께 그림 속 단서를 찾아가며 할머니가 왜 밥을 안 먹는지 이유를 알아보고 있지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아이는 다양한 사고(내용 확인, 예상, 추론 등)를 하게 됩니다. 아이는 부모와의 대화, 부모의 읽기 방법(다시 살펴보기)을 통해서 인물의 행동과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문해력을 키우는 책육아의 힘》pp.89~92







유아기, 문해력의 골든타임을 잡아라! 
가장 처음 만나는 책육아 지침서



지은이 권 이 은


리터러시(문해력) 교육 연구자이자 실천가다.
고려대학교에서 독서교육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만나며 문해력 교육이 인권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배웠고,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 이론과 실제 현장을 잇는 다리와 같은 일을 해 왔다. 현재 문해력 강의, 프로그램 개발, 교재 집필, SNS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부모, 교사 및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 땅의 모든 부모와 아이를 함께 키우는 마음으로, 책육아와 문해력 교육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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